[특파원칼럼/박형준]‘재일 동포의 고향’ 민단의 부끄러운 집안싸움

박형준 도쿄 특파원 입력 2021-05-11 03:00수정 2021-05-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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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는 재일 동포 지키려 탄생한 민단
단장 선거 파행, 그로 인한 내분으로 갈등
박형준 도쿄 특파원
일본 도쿄 아자부주반의 한국중앙회관 별관에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이 있다. 재일 동포들로부터 과거 사진, 옷, 책 등을 기증받아 100년의 역사를 전시해 놨다. 전시실 문을 열면 허름한 판잣집 사진부터 눈에 들어온다. ‘도쿄의 재일 한인 집단 거주지’라는 짧은 설명만 붙어 있다. 1905년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연락선이 취항했고, 그 뱃길로 조선인들이 매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제에 토지를 빼앗겨 먹고살기 위해, 태평양전쟁 때 군수공장 노동력으로 동원돼, 일본군 위안부가 될 운명인지도 모른 채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속아서…. 그런 조선인들이 도쿄에 판잣집을 짓고 힘겨운 삶을 살았을 것이다.

자료관 내 ‘자이니치(在日)’ 설명에 특히 눈길이 갔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전했을 때 일본에 있던 조선인 수는 약 236만 명. 대부분이 해방된 조국으로 떠났지만 귀국해도 먹고살 길이 막막했던 약 60만 명의 조선인은 일본에 남았다. 그들이 바로 ‘자이니치’다. 자이니치는 일본에 사는 외국인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특히 한국이나 조선 국적자를 자이니치로 인식하며 고유명사처럼 사용한다.

일본에 남은 이들의 삶도 역시 힘들었다. 패전으로 일본 군수산업이 멈췄고, 해외 일본인들이 귀국하자 조선인들은 대거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은 참정권을 얻지 못했다. 조선인 미성년자가 죄를 저지르면 언론에 실명으로 보도될 정도로 차별을 당했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고 힘을 모으기 위해 1946년 10월 재일본조선거류민단(현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결성됐다.

현재 민단에 소속된 동포 수는 약 30만 명이다. 이들을 미국, 유럽 등지의 해외 동포들과 똑같이 여기면 곤란하다. 다른 해외 동포들은 기회를 찾아 스스로 해외로 떠났지만, 민단 동포들은 역사의 굴곡 속에 일본으로 흘러왔고 광복 후에도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해 한(恨)을 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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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민단에 최근 부끄러운 집안싸움이 일어났다. 임기 3년의 민단 중앙본부 단장 선거에서 단장인 여건이 후보(72)와 부단장인 임태수 후보(59)가 맞붙었다. 2월 26일로 예정됐던 개표는 두 차례나 연기됐고, 지난달 6일 개표도 하지 않은 채 여 후보가 당선자로 발표됐다. 투표함 속 491표는 분쇄기로 파기됐다. 선거관리위원회가 임 후보의 범죄 혐의 전력을 이유로 후보 자격을 박탈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반발한 민단 간부 20명은 즉각 정상화위원회를 꾸려 임시중앙대회 개최를 주장하며 선관위와 여 단장의 책임을 추궁했다. 반면 여 단장 측은 선거에 문제를 제기한 민단 임직원을 해직하거나 회의 멤버에서 제외하며 맞섰다.

민단 홈페이지에 소개된 대로 민단은 ‘재일 동포의 고향’이고, ‘1세대의 피와 땀과 눈물의 결정체’다. 한국 정부도 일본 내 유일한 재일 동포 공인단체로 보고 연간 약 8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한다. 선거 문제는 양측 합의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임 후보의 후보 자격이 없는 게 맞는지, 2018년 임 후보가 부단장으로 임명될 때는 동일한 문제가 없었는지, 이에 따라 선관위의 판단이 적절했는지 따져보면 된다.

여 단장은 올해 신년회 축사 때 한일 정치 갈등을 언급하며 “상식에 기초하고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경을 가지면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 민단에도 똑같은 게 필요하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재일 동포의 고향#민단#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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