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에게도 쉴 ‘겨를’이 필요합니다[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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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전문가 조언에 죄책감이 느껴질 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방송, 책, 유튜브, 블로그, 오디오 클립 그리고 이런 칼럼까지…. 문득 부모들에게 참 많은 말들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뿐만이 아니다. 정말 많은 전문가들이 제각기 부모를 돕는다며 많은 잔소리(?)를 한다. 이런 말들이 부모들에게 언제나 도움이 될까. 힘들고 지친 부모들에게 열심히 하라고 채찍질을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육아는 너무나 힘들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도 많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도 잘 안 되는 때도 많다. 그럴 때는 좌절감이나 죄책감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엄마인데, 왜 이렇게 못할까?’ ‘나는 아빠가 돼서 왜 이것밖에 안 될까?’ ‘나 같은 사람이 무슨 부모라고.’ 육아에 대한 자신감은 점점 약해지고, 약해진 마음에 우울감이 깊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그런 부모의 아픈 곳을 콕콕 찌른다. 오늘 잘못한 것뿐 아니라 어제 잘못한 것, 1년 전에 잘못한 것, 심지어 임신 기간에 잘못한 것까지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전문가들의 조언을 들으면 오히려 마음이 더 힘들어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런 날이면, 잠시 듣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가 육아에 필요한 조언을 읽거나 보거나 듣는 것은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서이다. 또한 힘든 상황 속에서 자신이 살기 위함이다. 살려고 듣는 것이지, 죽으려고 듣는 것은 아니다. 너무 힘든데, 육아 조언들이 자신을 더 힘들게 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약’이 아니라 ‘독’일 수도 있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조금 이기적이라는 소리를 듣더라도 주변의 모든 자원을 활용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단 좀 쉬라고 말하고 싶다. 육아와 관련 없는 것으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그림을 그리고, 수다를 떨고…. 2시간이라도 좋다. 뭐든 당신이 좋을 대로 쉴 궁리를 했으면 한다. 그래서 마음이 좀 편안해지고, 몸에 힘이 좀 생기면 그때 다시 전문가의 조언을 찾으면 된다.

막 여덟 살이 된 남자아이가 있었다.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원장님, 왜 자꾸 나 보자 해요?”라고 투덜거렸다. 내가 “야, 그래도 좀 보자. 원장님은 너 보고 싶었어”라고 했다. 아이는 조금 더 투덜대더니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작은 팽이들과 자동차들을 꺼내 놓았다. 나와 놀려고 가져온 것이었다. 아이와 한참을 놀다가 부모와 이야기할 시간이 되었다. “○○아, 원장님이 오늘 너를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너무 좋았는데…”라고 말을 꺼냈다. 아이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엄마 아빠 만난다고요. 알았어요”라고 하면서 다시 장난감을 챙겨 일어섰다. 그러면서 “원장님 손 다치셨어요?”라고 물었다. “맞아. 종이에 베였어”라고 했더니, 아이는 “아, 아팠겠다” 하면서 너무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이거 알아봐 주는 사람 너밖에 없다. 고마워” 하고 인사를 했다.

그때 나는 아이가 너무 예뻐서 코끝이 찡해질 정도였다. 처음 찾아왔을 때, 누가 말만 걸어도 소리소리 지르고, 의자를 들고 어린이집 친구들을 위협하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랬던 아이가 이렇게 상냥하고 자상해진 것이다. 아직도 만나자마자는 좀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긴 한다. 이 아이는 좀 불안해지면, 부정적인 태도로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완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럴 때 편안하게 조금만 기다려주면, 불안이 완화되면서 아이에게 ‘겨를’이 생긴다. ‘겨를’이 생기니 그 부정적이던 아이가 주변을 돌아보고 심지어 다른 사람을 챙기기까지 한 것이다.

부모들에게 이런 ‘겨를’이 필요하다. 너무 힘들면 아무리 옳은 소리라도 적용하기가 어렵다. 아이의 이것저것을 살피기도 버겁다. 너무 힘들면 그냥 쉬는 것이 낫다. 그러다 ‘겨를’이 생기면 그때 좀 필요한 조언을 찾아서 읽으면 된다.

전문가들의 말을 듣다 보면, 순간순간 ‘내가 아이에게 참 많은 잘못을 했구나’라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죄책감이 생길 수도 있다. 후회와 죄책감은 우리를 발전하게 한다. 그러나 너무 오래 지속되면 오히려 해롭다. 육아를 너무 비장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를 이렇게 대하면 이렇게 될 수 있다’라는 말은 가장 극단적인 경과를 예측해서 조심할 것을 강조하는 말이지, 한 번의 육아 실수가 아이를 망가뜨린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것이든지 육아 실수는 언제나 회복할 수 있다. 만약 가르쳐야 할 것을 안 가르쳐서 아이의 행동에 걱정스러운 점이 보인다면, 지금 하면 된다. 전문가들이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해서 후회했다면, 이제부터 안 하려고 하면 된다.

언제나 문제를 깨달은 오늘 이 시간부터가 가장 중요한 시기다. 언제나 우리에게는 나아갈 방향이 있을 뿐이다. 그 방향을 좀 길게 보면서 육아를 좀 편안하게 해나갔으면 좋겠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오은영#부모#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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