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서러움 자체, 극복은 내몫”…‘젊은’ 할머니에 반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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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신드롬]“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살면 돼”


“닮고 싶은 찐어른”…솔직담백 롤모델, 윤여정에 빠졌다
“노년에 저렇게 멋진 사람이 될 수 있구나”, “고통을 통해 경지에 오른 푸르른 감각”, “또박또박 성실하게 살아온 삶에 경의를 표한다”….

‘윤여정 신드롬’이 뜨겁다. 한국인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윤여정(74·사진)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는 글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달구고 있다.

윤여정의 매력은 솔직하고 매사 최선을 다하며 남을 배려하는 ‘찐어른’의 모습에서 나온다. 남을 속이거나, 자기의 일을 떠넘기거나, 내로남불에 젖은 ‘무늬만 어른’이 많은 시대에 윤여정은 솔직하다 못해 투명하다. 2018년 SBS ‘집사부일체’에서 “나도 맨날 실수하고 화도 낸다. 인품이 훌륭하지도 않다”며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살면 된다. 어른이라고 해서 꼭 배울 게 있느냐?”고 한 게 대표적이다.

윤여정은 한발 물러서며 다른 이를 빛내기도 한다. 올해 tvN에서 방영한 ‘윤스테이’에서 외국인 손님들이 음식을 칭찬하자 “(요리를 한) 친구들이 최선을 다했다. 셰프와 훈련을 했고, 집에서도 연습을 많이 했다”며 후배들에게 공을 돌렸다. ‘진짜 어른’의 면모를 발산하는 그를 보며 젊은이들은 힘을 얻고, 자신도 멋진 어른이 되는 길을 그려보기도 한다.

윤여정은 젊은이들도 어려워하는 도전과 소통에도 거침없이 뛰어든다. 남녀, 세대, 국적을 뛰어넘어 그에게 빠져드는 이유다.

사람들이 윤여정을 보며 마음을 열고 열광하는 지점은 가장 중요하지만 실상 지켜지기 어려운 기본 가치에 대한 것들이다. 약속대로 행동하고 권위주의에 물들지 않는 그를 보며 많은 이들이 존중받는다고 느낀다. 전에 없던 롤모델을 찾아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사람들은 인간사 여러 풍파를 온몸으로 겪어낸 한 여성의 모습에 때론 동질감을, 노력과 품격을 잃지 않는 프로의 모습에 때론 동경을 품는다. 윤여정이라는 인간 자체가 가진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평가다.

그는 영화 ‘화녀’로 충무로 최고의 배우로 떠올랐지만 홀연히 결혼해 미국으로 떠났고, 이혼 뒤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제로 상태였다. 배우로서 경력이 단절됐던 그가 다시 바닥부터 시작해 아카데미 트로피를 들고 자신을 일하게 만든 자녀들에게 감사를 전한 것은 다양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의 감정선을 건드렸다. 위로를 받았다는 워킹맘과 경력단절여성들, 감사를 느꼈다는 누군가의 아들딸들이 많았다.

원로 배우이기에 편안하게 많은 걸 누릴 수 있지만 낮은 자세로 연기에 임하는 윤여정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돌아보기도 한다. 그는 ‘미나리’ 촬영에 참여하기로 한 후 제작비가 빠듯하다는 얘기를 듣고는 미국행 비행기표를 직접 구입했다. 윤여정은 올해 SBS 웹예능 ‘문명특급’에서 미나리 촬영 당시에 대해 “미국 애들한테 ‘왓(What)?’ 소리 들으면서 난 여기서 진짜 노바디(Nobody)구나, 연기를 잘해서 얘네한테 보여주는 길밖엔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작품을 해야 도전이지”라고 했다. 이어 “감독들한테 ‘이렇게 오래 찍으면 나 간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면 발전을 못 한다”고 말했다.

tvN 꽃보다 누나 캡처
tvN 꽃보다 누나 캡처


2013년 예능 ‘꽃보다 누나’에서는 “똥 밟았다 생각할 수 있는 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원치 않는 경험에서도 얻는 것이 있다”고 했다. 움츠러든 이들은 낯설고 거친 상황도 피하지 않는 그를 보며 나아가 보라는 용기를 얻는다. “세상은 서러움 그 자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다. 그런데 그 서러움은 내가 극복해야 한다. 나는 극복했다”(2017년 tvN ‘택시’)는 말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윤여정은 나이를 막론하고 격의 없이 어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통하고 관계 맺는 것을 어려워하는 젊은층이 특히 닮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 꼽는다. tvN ‘윤식당’에서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너희들이 뭘 알아?’라고 하면 안 된다. 남북통일도 중요하지만 세대 간 소통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고 한 말은 큰 호응을 얻었다.

인생의 숱한 굴곡을 헤쳐 온 그이기에 한마디 한마디에서 진심을 느낀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내 인생만 아쉬운 것 같지만 다 아프고 다 아쉽다”(tvN ‘꽃보다 누나’), “젊을 때는 아름다운 것만 보이겠지만 아름다움과 슬픔이 같이 간다”(tvN ‘택시’)는 말이 공감을 자아내는 이유다.

특히나 젊은이들이 윤여정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이런 굴곡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윤여정은 늘 1등 자리에 머물며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배우가 아니라 지나칠 정도의 굴곡이 있었던 사람”이라며 “최근 박탈감이나 좌절감을 많이 느끼는 젊은 세대들이 꾸준히 노력해 자기 분야에서 끝내 성공하는 윤여정의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얻고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틀을 거부하는 행보도 신선함을 선사한다. 2005년 일일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그는 주인공 금순(한혜진)의 할머니 역을 맡았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결혼을 반대하는 시어머니 역에 머무르지 않겠다. 뻔한 역을 할 거면 어머니 역을 건너뛰고 할머니 역을 해도 괜찮다”고 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윤여정은 자신의 생각대로 선택하되 이를 강요하지 않고 각자 판단하게 한다”며 “젊은층이 기성세대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깨게 돼 즐거워하고 환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며들다.’ 사람들이 윤여정에게 스며드는 현상을 의미하는 말이다.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온 그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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