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이 美 비판한 포럼서… 文대통령 “亞 신기술 협력 강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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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中보아오포럼 첫 참석
“아시아 힘 합쳐 미래 준비” 메시지… 美中 반도체 패권 경쟁속 묘한 파장
中 서방 간섭 비판때 쓰는 ‘구동존이’… 文 “포용과 상생의 길”로 언급 논란
習, 美 겨냥 “신냉전-내정간섭 반대”

문재인 대통령(왼쪽 사진)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중국 보아오포럼 연차총회 개막식에서 영상을 통해 발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최근 반도체 패권 다툼 등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 대해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다”며 “결국에는 세계 경제의 회복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내정에 간섭하는 것은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할 것”이라며 미국을 향해 각을 세웠다. 청와대사진기자단·베이징=신화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왼쪽 사진)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일 중국 보아오포럼 연차총회 개막식에서 영상을 통해 발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최근 반도체 패권 다툼 등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 대해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다”며 “결국에는 세계 경제의 회복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내정에 간섭하는 것은 누구의 지지도 받지 못할 것”이라며 미국을 향해 각을 세웠다. 청와대사진기자단·베이징=신화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중국 하이난성 보아오(博鰲)에서 열린 ‘보아오포럼’ 개막식 영상 메시지에서 중국과 신기술 분야 협력 강화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지원 활동을 높게 평가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 포럼 개막식 연설에서 “신냉전과 내정간섭을 반대한다”며 미국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중 간 반도체 패권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미국을 비난한 포럼에 참석해 중국과 신기술 협력을 강조하자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보아오포럼은 중국이 주도하는 ‘아시아판 다보스포럼’으로 문 대통령이 영상으로나마 이 포럼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포럼에 미국 동맹국 중에서는 한국이 유일하게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다음 달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논의할 예정이다.

○ 文, “구동존이가 포용과 상생의 길”
문 대통령은 이날 반도체 등 신기술 분야에 대해 “신기술과 혁신 거버넌스 협력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신기술 분야에서) 아시아 국가 간 협력이 강화된다면 미래를 선도하고 위기에 대응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중국 등 아시아 국가 간 기술 협력을 강조했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백신 기부와 같은 다양한 코로나19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국 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구동존이(求同存異)는 포용과 상생의 길이며 인류 공동의 위기인 코로나를 극복하는 데에도 중요한 가치이자 원칙”이라고 했다. 구동존이는 시 주석이 강조해온 외교 기조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세계는 어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아시아의 포용 정신에 주목해왔다”며 포용을 6차례 강조했다.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다”며 “당장에는 자국 경제를 지키는 담이 될 수 있지만 결국에는 세계 경제의 회복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안보·경제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가운데 다자주의 협력을 강조한 것. 중국은 미국 일본 호주 인도의 협력체인 ‘쿼드’가 중국을 배제하는 ‘편먹기’라며 강하게 비판해왔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체결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통해 역내 경제 협력의 속도를 높이고 다자주의에 대한 신뢰 회복과 자유무역 발전이 이뤄지길 바란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중국이 주도해 온 RCEP에 가입 서명을 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포럼 참석 사실을 개막식 한 시간 전에야 공지했다. 다음 달 열릴 한미 정상회담을 의식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청와대는 22일 미국이 주최하는 화상 기후정상회의와 다음 달 하순 열리는 첫 한미 정상회담 일정은 미리 공지했다. 강준영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구동존이’는 중국이 왜 남의 나라 가치에 대해 문제 제기하느냐고 따질 때 쓰는 표현”이라며 “중국이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표현을 대통령이 인용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은 중국 입장에 동조한다는 메시지를 미국에 줄 수 있다”고 했다.

○ 시진핑, 美 겨냥 “신냉전, 내정간섭 말라”
시 주석은 문 대통령의 영상 메시지에 앞서 개막 연설을 통해 “나라와 나라가 공존하려면 평등하게 대하고 서로 존중하며 신뢰를 우선해야 한다”며 “걸핏하면 턱으로 지시하면서 다른 나라를 멋대로 부리거나(이지기사·이指氣使), 내정에 간섭한다면 마음을 얻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일은 모두 함께 상의해 처리해야 한다”며 “한 나라나 몇몇 나라가 제정한 규칙을 다른 나라에 강요해서는 안 된다”며 “개별 국가가 전 세계를 일방주의로 몰고 가서도 안 된다”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세계 모든 나라가 분명하게 신냉전과 이데올로기 충돌을 버려야 함을 깨달았다”고도 했다. 미국을 거론하지 않았지만 미국이 동맹국들을 규합해 중국을 압박하는 데 강하게 반발한 것이다.

박효목 기자 tree624@donga.com /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 권오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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