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주인공 안죽었다면”… 팬심 채워주는 ‘팬비드’

김태언 기자 , 김기윤 기자 입력 2021-01-21 03:00수정 2021-01-21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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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이 원작에 상상력 더하고 대사와 순서 재편집해 만든 영상
맘대로 배역-줄거리 바꾸는 재미
1020세대 새로운 놀이로 떠올라… 실제 작품제작에 영향 주기도
드라마 ‘펜트하우스’의 천서진(김소연)과 ‘스카이캐슬’의 한서진(염정아)이 기싸움을 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한 팬비드 영상(위 사진). 아래 사진은 ‘펜트하우스’에서 천서진이 분노하며 피아노를 치는 장면. 유튜브 캡처·SBS 제공
지난해 방영한 tvN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마지막 회에 구승준(김정현)이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자 많은 시청자가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곧 이런 상상에 빠졌다. ‘만약 구승준이 죽지 않았다면?’

팬들의 상상은 현실(?)이 됐다. 드라마 종영 후 유튜브에는 ‘구승준×서단 커플이 해피엔딩이라면?’과 같은 제목으로 팬들이 맘껏 상상한 내용이 영상으로 올라왔다. 구승준과 서단(서지혜)이 드라이브하는 장면을 편집해 둘이 연인이 되는 결말로 재탄생시킨 것.

드라마나 영화 혹은 배우의 팬들이 다양한 영상을 각색하고 조합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팬비드(Fanvid·Fan+Video)’가 1020세대의 놀이가 되고 있다. 이들은 여러 작품의 캐릭터를 가져다가 새로운 조합(케미)을 창조한다. 드라마 ‘호텔 델루나’의 장만월(이지은)과 ‘도깨비’의 김신(공유)이 친구라거나, ‘스카이캐슬’ 한서진(염정아)과 ‘펜트하우스’ 천서진(김소연)이 싸우는 영상이 그 예다. 기존 영상의 순서나 대사를 편집해 아예 다른 줄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이는 ‘상상플레이’나 ‘페이크드라마’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팬비드 크리에이터들은 원작 드라마나 영화의 전개가 ‘고구마’처럼 답답하거나 줄거리에 아쉬운 점이 있으면 더 흥미로운 버전을 만들어 제시한다. ‘지선우의 딸이 강예서였다면?’이라는 영상이 대표적이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지선우(김희애)의 아들 캐릭터가 답답하다는 평이 나오자 드라마 ‘SKY캐슬’에서 직설적인 캐릭터인 강예서(김혜윤)를 대입한 것. 해당 영상에는 “진짜 사이다다” “속이 다 시원하다” “대리만족하고 간다”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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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5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한 팬비드 전문 채널의 운영자 이모 씨(28)도 줄거리에 변화를 주는 걸 즐긴다. 이 씨는 2006년에 방영한 드라마 ‘궁’을 보고 팬비드에 빠졌다. 이 씨는 “내가 경험하지 못한 시대나 배경을 접하고 ‘내가 이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 이런 로맨스가 나에게도 일어날까?’ 상상하는 게 재밌었다”며 “좋아하는 드라마로 희소성 있는 나만의 영상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팬비드 영상이 팬들의 일방적 판타지로 끝나지 않고 실제 작품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팬비드로 먼저 탄생했던 지창욱, 김지원 배우 커플은 카카오TV의 새 드라마 ‘도시남녀의 사랑법’에서 만났다. 팬비드가 작품 제작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팬비드는 콘텐츠 제작사에서도 활용하고 있다. 자사의 작품을 짜깁기 영상에 포함시켜 홍보하는 것이다. 넷플릭스는 10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오리지널 시리즈인 ‘스위트홈’과 ‘좋아하면 울리는’을 조합한 영상을 올렸다. tvN의 유튜브 계정인 ‘Diggle’에서는 ‘디글페이크스튜디오’ 채널을 따로 운영하며 tvN 드라마를 홍보한다.

전문가들은 팬비드가 소비자 주권이 발현되는 콘텐츠의 대표작이라고 설명한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편집물로써 작품에 대한 자신의 해석과 느낌을 세상에 표출하는 것이 현 시대의 언어가 됐다”며 “노래 ‘강남스타일’ ‘깡’의 성공도 ‘원본 콘텐츠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노느냐’가 관건이라는 걸 파악한 제작사들이 이를 활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언 beborn@donga.com·김기윤 기자
#펜트하우스#사랑의 불시착#팬비드#팬비드 크리에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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