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가 된 북한 축구 최고 스타[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사이]

주성하 기자 입력 2021-01-21 03:00수정 2021-01-2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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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에서 10번 홍영조 선수가 두 명의 투르크메니스탄 수비수들을 뚫고 드리블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김정은 집권 10년이 돼 가는 지금까지 한국에 알려지지 않은 것 중 하나가 김여정의 남편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다양한 설(說)이 있지만 증명된 것은 없다.

재작년에 누군가가 “김여정의 남편이 축구선수 홍영조라는 말이 있는데 사실이냐”고 기자에게 물었다. 그 말을 듣자 갑자기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북한 축구대표팀 주장이던 홍영조는 21세기 북한에서 가장 유명했던 축구선수다. 실력만 따지면 턱도 없는 비유지만 인기를 따지면 홍영조는 북한에선 한국의 박지성이나 손흥민만큼 유명하다. 홍영조는 1960년대 북한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던 박두익 선수 이후 최고 기량을 가졌다는 평가도 받았고 외모도 괜찮아서 과거 한국 언론에서 ‘인민 베컴’이란 별명을 붙여 주기도 했다.

홍영조는 2011년 카타르 아시안컵에 북한 대표팀 주장으로 출전한 것을 끝으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불과 29세 전성기의 나이에 공교롭게도 김정은 시대가 시작되던 시기와 겹쳐 사라진 것이다. ‘김여정이 북한 체육계 최고 스타인 홍영조의 팬이었다면 충분히 결혼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양에 여러 선을 대 취재해 봤다. 워낙 유명한 선수였던지라 그의 근황을 아는 것이 크게 어렵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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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말하면 홍영조는 김여정의 남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현재 직업이 황당해 깜짝 놀랐다. 축구선수 홍영조가 현재 평양시 검찰소 검사로 있는 것이다.

북한 축구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5년 동안 이례적으로 외국 리그에서도 뛰었던 선수가 검사가 됐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북한이 아무리 특이한 나라라 해도 세계의 보편적 상식대로 체육계 스타는 은퇴 뒤에도 감독 등을 하면서 체육계에 종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검사가 됐다니…. 이런 생뚱맞은 일이 있나 싶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북한 사람들에겐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북한은 권력을 잡은 자가 최고인 세상이다. 아무리 체육계 스타라 해도 국가에서 주는 공급만 갖고는 살 수가 없다. 북한에선 꾸준히 뇌물을 받아먹고 살 수 있는 검사가 배급을 받는 왕년의 스타보다 훨씬 나을 수 있는 것이다.

홍영조는 그래도 해외 리그에서 5년 동안 뛰었기 때문에 북한에만 있었던 선수들에 비해선 돈 벌 기회가 있었다. 그는 2007년부터 2시즌 동안 세르비아 프로팀에서 뛰었고, 2008년 러시아로 이적해 FK로스토프팀에서 2011년까지 3년간 공격수를 맡았다.

세르비아나 러시아의 가난한 프로팀에서 뛰긴 했지만 1만 달러도 큰돈인 북한인지라 연봉만 모아도 부자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북한은 해외 진출한 선수의 월급이나 이적료는 거의 다 당국이 뺏어 간다. 그래서 홍영조는 북한 선수로는 거의 유일하게 5년 동안 해외 생활을 했어도 큰돈을 모으기 힘들었을 것이다.

홍영조가 축구계를 은퇴한 계기는 경기 중 팀 동료를 폭행한 사건 때문이라고 한다. 그 동료 역시 한국에 잘 알려진 유명한 선수인지라 놀랐는데 찾아보니 그도 홍영조가 사라진 시점과 거의 비슷한 때에 북한 대표팀에서 하차했다.

2011년 1월 카타르 아시안컵을 전후로 북한 축구대표팀을 이끌었던 김정훈 감독이 가족과 함께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고, 대표팀을 이끌던 두 스타마저 사라진 뒤 북한 축구는 침체됐다.

축구계를 떠난 홍영조는 대학에서 공부를 한 뒤 검사가 됐다. 북한은 법조인의 90% 이상이 김일성대 법학대학을 졸업한다. 법조인 자격을 얻기 위해 엄격한 시험을 쳐야 하는 한국과 달리 북한은 낙제만 면하고 얼렁뚱땅 법대만 졸업하면 당국에서 검사로 임명해준다.

유명 축구선수 출신은 김일성대 모든 학부가 탐을 낸다. 김일성대는 교내 체육대회에서 축구경기가 매우 격렬한 편인데, 유명 선수는 인기 학부에서 경쟁적으로 데려가는 전통이 있다. 홍영조 정도면 대학 다닐 때 공부는 별로 하지 않아도 체육특기생으로 학부 축구팀을 이끈 공로로 무난히 졸업하고 평양시 검사로 배치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어찌됐든 한때 북한 최고의 축구스타가 ‘범죄자’를 앞에 앉혀 놓고 책상을 치며 “똑바로 자백하라”고 호통 치는 모습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축구#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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