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아무나 하나[오늘과 내일/이진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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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격 부모들에 학대당하는 아이들
출산 장려만 말고 부모 교육도 하자

이진영 논설위원
이진영 논설위원
정부가 ‘정인이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을 늘리고 아동학대 신고가 두 번 접수되면 즉시 아이를 부모에게서 떼어놓겠다고 한다. 부모의 매질을 피해 건물 지붕으로 탈출하고, 소풍 보내 달라 조르다 맞아 숨지고, 여행용 가방에 갇혀 있다 죽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분노하며 대책을 내놓지만 아동학대는 멈추지 않는다. 정인이 대책이 발표되던 날엔 생후 3개월 된 딸의 온몸에 골절상을 입힌 20대 엄마가 구속됐다.

미국에선 1963년부터 아동학대 관련법을 제정하고 관심을 기울였는데도 학대 신고가 줄지 않자 1980년 부모면허제를 도입하자는 학계의 급진적 제안까지 나왔다. 운전면허나 의사면허처럼 자격을 갖춘 이들만 부모 노릇을 하도록 규제하자는 주장이었다. 무면허 운전이나 돌팔이 의사만큼 무자격 부모가 초래할 잠재적 피해가 크다는 논리였다. 결국 부모가 자녀를 갖는 건 신앙의 자유처럼 타고난 권리이고, 부모의 자격을 판단할 객관적 기준 마련이 어렵다는 반론에 부닥쳐 실현되진 않았지만 아동학대 예방책으로 부모에게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아이에게 부모는 절대적 존재다. 특히 핵가족 시대가 된 후로는 지켜보는 눈도 없이 아이는 오로지 부모에게 맡겨진다. 학대당한 아이를 부모와 분리해 시설에 보낸다고 하지만 국가의 품이 부모의 품만 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대개는 준비 없이 부모가 된다. 형편이 딱한 집만 그런 것이 아니다. 2017년 괌을 여행하던 판사와 변호사 부부가 돌배기 딸과 여섯 살 아들을 차 안에 두고 쇼핑 갔다가 체포돼 벌금형을 받은 적이 있다. 방치가 학대인 줄 몰랐다고 한다. 남매를 전교 1등으로 키운 초등학교 교장은 얌전히 자라주던 남매가 갑자기 고교 자퇴 선언을 하고서야 정서적 학대로 일관했던 무지한 부모였음을 깨닫고 ‘엄마 반성문’이란 책을 썼다.

따로 배우지 못한 부모 노릇은 부모를 보고 배운다. 지난해 9월 학술지 ‘한국사회복지질적연구’에 실린 논문에는 아동학대 전문기관의 부모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한 엄마 6명의 생생한 육성이 담겨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녀를 끔찍이 아낀다는 것, 그럼에도 정서적 신체적 학대를 일삼았다는 것, 알고 보니 어린 시절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는 점이다. 한 엄마는 아이에게 퍼붓는 폭언을 아이가 녹음해 들려주자 그제야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부모와 똑같이 제 아이에게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아동학대는 고리를 끊지 않으면 대물림되는 무서운 병이다.

미국의 부모면허제 논쟁이 학계 공방에서 그친 것은 아니다. 아동 보호를 위해 국가는 부모 노릇 제대로 하도록 교육적 지원을 할 의무가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혀 부모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실행이 활성화됐다. 우리도 부모교육을 하는 민간단체들이 있지만 입시 설명회는 가도 그런 곳은 잘 안 간다. 울주 아동학대 사망사건을 계기로 2014년 나온 ‘이서현 보고서’는 부모가 공권력에 접촉할 때 부모교육을 의무화하자는 제안을 했다. 혼인신고나 출생신고를 할 때, 자녀를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에 보낼 때 국가가 지원하는 만큼 부모에게도 교육받을 의무를 지우자는 제안이다.

인구절벽 걱정에 속이 타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노름판 판돈 걸듯 출산장려금을 부르고 있다. 이쪽에서 “아이 셋 낳으면 3000만 원” 하면 저쪽에선 영화 ‘타짜’의 대사 “묻고 더블로 가”처럼 장려금 액수를 올린다. 정부는 내년부터 매월 30만∼50만 원의 영아수당을 생후 24개월까지 주고, 육아휴직 땐 최대 1500만 원을 휴직급여로 주기로 했다. ‘부모 되라’고 등 떠밀지만 말고 ‘부모답게’ 살도록 지원하고 의무도 지워야 한다. 아무나 부모 하도록 내버려둘 순 없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부모#정인이#아동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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