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도 버텼는데…’ 뉴욕 레스토랑의 비명[광화문에서/유재동]

유재동 뉴욕 특파원 입력 2021-01-19 03:00수정 2021-01-19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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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뉴욕 특파원
집 앞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은 인도를 향한 시원한 통유리가 인상적이다. 옆을 지나다 보면 그 안에서 셰프들이 음식 재료를 손질하는 모습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걸 넋 놓고 구경하다가 그들과 눈빛이 마주쳐 어색한 눈인사를 나눈 일도 잦았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그 소소한 일상의 재미가 사라지고 말았다. 레스토랑의 겉면이 처음 보는 구조물들로 가로막혔기 때문이다. 팬데믹으로 실내 영업이 금지되자 이 식당은 추운 겨울에도 손님을 받기 위해 길가에 작은 비닐하우스를 여러 개 설치했다. 성인이 고개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비좁은 공간엔 서너 명이 앉을 만한 크기의 테이블과 의자들이 놓였다. 여전히 좀 춥긴 하지만 안에 히터까지 틀어놓으면 그럭저럭 버티며 식사를 할 수 있다.

요즘 뉴욕 식당들 앞에는 이처럼 때 아닌 비닐하우스와 천막, 가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식당 내부는 감염 우려로 영업을 할 수 없으니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손님을 맞기 위해 외부에 전용 실내 공간을 만든 것이다. 비닐로 이글루 모양의 독채를 꾸미거나 아예 유목민들이 쓰는 전통 천막을 세운 곳도 있다. 이런 구조물은 한 개에 최소 수십만 원씩 할 정도로 설치비가 만만치 않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식당들에는 절박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미국에선 작년 초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 레스토랑이 6개 중 1개꼴로 문을 닫았다. 이로 인해 200만 개의 일자리도 함께 증발했다. 폐업한 11만 개 식당 중엔 영업한 지 30년이 넘는 노포(老鋪)도 16%나 됐다. 제아무리 온갖 불황을 이겨낸 곳도 바이러스의 대유행 앞에는 장사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임차료가 비싼 뉴욕은 충격이 더 컸다. 맨해튼에선 1930년에 개업한 이후 전직 대통령들의 단골집이었던 ‘21클럽’이 지난달 장사를 완전히 접었다. 대공황을 견뎌내고도 팬데믹은 버티지 못한 것이다. 며칠 전 가본 이곳엔 이 식당의 ‘시그니처’인 발코니 자키(경마기수 인형)들은 모두 사라지고 폐업 안내문만 쓸쓸히 나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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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이 줄줄이 쓰러지는 게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업주와 종업원은 물론이고, 배달기사와 식자재 납품업자 등 관련 직군에 연쇄 타격을 준다. 지역 사회가 받는 충격도 무시할 수 없다. 도시 재생과 문화 교류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음식점의 불이 꺼지면서 주요 거리가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뉴욕의 이민자들은 고국 음식의 향수를 달래주던 수많은 식당과 작별해야 했다. 한 음식비평가는 뉴욕타임스에 “레스토랑은 세상을 향한 관문”이라며 “나에게 문을 열어줬던 식당들과 이 도시가 그립다”고 적었다.

어릴 적 자주 찾던 식당이 늘 있던 자리에서 사라진 걸 발견하고 가슴이 먹먹해진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정든 식당은 단지 밥 한 끼, 커피 한잔 이상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불과 몇 개월 만에 수많은 단골집을 떠나보내야 했던 뉴요커들의 충격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비닐하우스 버티기’에 들어간 이곳 식당들을 짠한 마음으로 응원하면서, 동시에 벼랑 끝에 몰린 한국 자영업자들에게도 더 많은 지원과 배려가 있기를 소망해본다.

유재동 뉴욕 특파원 jarrett@donga.com
#코로나19#팬데믹#뉴욕레스토랑#뉴욕 식당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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