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쓰는 법]‘즐거운 수다’ 같은 글을 쓰고 싶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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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드엔딩은 없다’ 강이슬 작가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학교 뒷동산에 나타난 바바리맨을 오히려 놀려주고, 반지하방 하수가 역류해 화장실 오물로 이불까지 흠뻑 젖고, 술 취한 뒤끝에 일어나 보니 앞니 4개가 반 토막이 나 있다. 한날 동시에 연애를 시작한 친구가 한 달 되도록 키스를 못했다고 하자 “뭔 개소리야, (난) 섹스를 몇십 번 했는데” 하고 핀잔을 놓는다.

막내 시절은 벗어난 방송작가 강이슬(29·사진)의 에세이집 ‘새드엔딩은 없다’(웨일북)는 웃긴데 짠하다. 어렸을 적 아버지와의 등굣길. 영세민 아파트 13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외로워도 슬퍼도 울긴 왜 울어’(‘캔디’ 주제가)를 불렀다는 강 작가의 글에는 우울도, 슬픔도 아닌데 눈물이 자글자글하다.

9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만난 그는 “의도하지 않고 밝게 쓴 건데, 웃어넘길 수 있고 웃어넘긴 채로 쓴 건데, ‘웃프다(웃긴데 슬프다)’고 하네요. 제가 좀 짠한가 봐요”라며 웃어넘겼다.

넉넉지 않은 집 맏딸로 서울 생활 10년, 방송작가 생활 7년에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를 거쳤고, 첫 봉급 34만8000원을 받고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 이름 적으며 욕하는 데 일기를 활용하기도 했지만 그와 그의 글에는 긍정의 에너지가 물씬하다.

“대학 4년간 산 고시원이 작은 줄 몰랐어요. 고교 때 기숙사 한 방에서 10명이 2층 침대 5개 놓고 잤는데, 고시원은 침대도 책상도 혼자였으니 ‘꿀’이었죠. 반지하에서는 옆집 소리 안 들리니 좋고, 옥탑방으로 갔는데 빛이 들어오더라고요.”

2년쯤 전 기획하던 프로그램이 엎어지며 전기 끊기고 월세는커녕 수도요금도 밀렸을 때 ‘나만 빼고 다 잘사는데, 이러려고 대학 나왔나’ 하는 생각에 ‘딱 한 번’ 슬럼프가 왔지만 채 일주일을 안 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회사 도서관에서 빌려온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가 말도 안 되게 재미있어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지만 아직 글쓰기를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취미다’라고 명심해요. 지구력도 끈기도 없는 제가 재미있게 오랫동안 하고 있는 유일한 거거든요. 지칠 때까지 하지 않아도 되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부담감만 갖자고 해요. 이걸로 성공해야 한다, 그런 거 말고요.”

그의 글은 시트콤 같고 콩트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문단 하나하나를 각각의 신(scene)으로 생각하고 글을 써서일지도 모르고, 이제 우리 나이로 갓 서른인 그의 삶에 ‘나만 알고 죽기 아까운 에피소드가 너무 많이 생겨서’일지도 모른다.

멋져 보이려 하지 않는 글을 쓰는 데 온 신경을 쓰고 있다는 강 작가는 ‘아, 친구랑 수다 떠는 기분’이라는 독후감이 가장 듣기 좋단다.

“킬링타임용으로 보다가 저절로 집중되는 미드 같은 글, ‘나는 왜 이렇게 못 살지, 내일부터 달라져야지’ 말고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정도의 글,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강이슬 작가#새드엔딩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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