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고통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인정해주는 게 중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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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베스트 닥터]<18> 문지연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꾀병’ 핀잔 땐 우울감까지 더해져
환자 편에 서서 원인 찾아내 치료
약물 용량 스스로 조절하도록 교육

문지연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세계통증연맹이 시행 중인 2개의 전문가 자격증을 획득했다. 문 교수는 만성 통증 환자에 대해 질병을 인정해 주고 심리적으로 지지해 주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문지연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세계통증연맹이 시행 중인 2개의 전문가 자격증을 획득했다. 문 교수는 만성 통증 환자에 대해 질병을 인정해 주고 심리적으로 지지해 주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상처가 났을 때 통증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통증은 “나, 다쳤어”라고 알리는 생체 신호다. 이 신호가 있기에 우리는 상처를 인지하고 치료한다. 통증은 인체를 보호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회복 메커니즘’이다. 상처가 완전히 아물었는데도 통증이 지속되면 질병으로 여긴다. 3개월 이상 지속된 만성 통증의 치료는 쉽지 않다. 신경에서 비롯된 통증인지, 근육이나 뼈의 문제인지, 내장 기관이 원인인지, 다른 질병의 합병증인지 원인을 명확하게 밝혀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성 통증 환자 10명 중 3명은 원인을 못 찾고 있다. 이 때문에 원인을 빨리 찾아내 치료하는 게 통증 분야에서 베스트 닥터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 기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의사 중 한 명이 문지연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42)다.》

문 교수는 현재 서울대병원 암통합케어센터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암으로 인한 통증 환자가 환자의 30%다. 희귀난치성 통증이 30%, 신경증적 통증 환자가 30% 정도를 차지한다. 나머지 10%는 여기에서 제외된 만성 통증 환자다.

문 교수는 2015년 세계 최대의 통증 전문 학술단체인 세계통증연맹(WIP)이 시행 중인 국제통증인증의(FIPP)와 초음파 통증인증의(CIPS) 자격심사에 국내 처음으로 동시 합격하기도 했다. 통증 분야에서 이 두 인증은 통과하기 어려운 심사로 알려져 있다.

○ “환자 편이 되는 게 최선의 통증 치료”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이 지속될 때의 고통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꾀병을 부린다거나 예민하게 군다는 식으로 주변에서 수군대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폭력’이 환자들을 더 괴롭게 만든다. 통증과 우울감 등이 겹쳐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20대 초반의 여성 A 씨도 비슷했다. 허리 쪽에서 시작된 통증은 온 몸으로 번졌다. 온갖 검사를 다 했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마약성 진통제를 먹으며 통증을 견뎌냈지만 너무 힘들었다. 자살 충동이 생길 정도였다.

A 씨가 3년 전 문 교수를 찾았다. 통증의 강도에 따라 보통 1∼10점의 점수를 매긴다. 점수가 높을수록 통증이 심한데, A 씨는 9점이라 했다. 문 교수에 따르면 7점은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의 통증과 흡사하며 9점이면 2t 트럭이 짓누르는 정도의 통증이라고 한다.

문 교수는 통증 완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했다. 척수 신경을 자극하는 시술을 했다. 신경 다발이 나오는 부위에 얇은 관을 붙여 통증이 생길 때마다 작동하도록 했다. 이후 A 씨의 통증 점수가 1점으로 떨어졌다.

문 교수는 “통증은 환자의 주관적인 감각이다. 원인을 밝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단 통증을 느낀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A 씨가 문 교수에게 가장 고마웠던 게 주변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지지해줬다는 점이었다.

○ 통증, 정확히 찾아내 치료해야
통증을 완전히 없애겠다며 강한 약을 달라는 환자가 많다. 하지만 이 경우 약물 의존도만 높아질 뿐이며 치료 효과는 떨어진다. 환자의 상태에 맞춰 약물을 투입하거나 시술을 해야 한다.

지난해 75세의 B 할머니가 문 교수를 찾아왔다. B 할머니는 3년 전 대상포진까지 겹치는 바람에 몇 년 동안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지방 병원을 여러 곳 다녔지만 통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문 교수가 통증 강도를 물었더니 8점과 9점 사이라고 했다. 산모가 분만할 때 느끼는 고통 이상의 통증을 매일 느끼며 살아온 셈이다. 문 교수는 B 할머니가 당장 완치되는 게 힘들 것이라 설명했다. 따라서 일상생활을 누릴 수 있을 정도로 통증을 완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처음에는 2주마다 신경병증 통증 치료제와 진통제를 투입했다. 대상포진이 생겼던 부위에는 국소마취제와 스테로이드를 혼합해 투입했다. 고주파 시술도 병행했다.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자 2개월 후부터는 치료 주기를 2주에서 한 달로 늦췄다. 약의 용량을 조절하고 환자가 스스로 통증을 조절할 수 있도록 교육을 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자 B 할머니의 통증 점수가 3점으로 떨어졌다. 끙끙거리며 잠을 설치던 B 할머니가 잠을 잘 수 있게 됐고, 쇼핑도 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되니 우울증도 사라졌다.

○ 만성 통증 환자, 약물 오남용은 문제
문 교수는 지금까지 국제 학술지에 50편 이상의 논문을 게재했다. 국내 만성 통증 환자들의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 문제를 지적한 2018년 논문은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문 교수는 서울대병원을 비롯해 국내 6개 병원 환자 258명의 진통제 복용 상황을 분석했다. 그 결과 21%에 해당하는 55명이 처방전 외에 따로 약을 구해 복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환자일수록 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의존성이 강했다. 다른 환자들보다 2배 이상 응급실을 찾았고, 더 많은 약을 요구했다. 실제로 30% 정도 더 많은 용량을 하루에 투입했다.

이 연구 결과가 발표된 이후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그 결과 약 처방 과정에서 사실상의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약물 의존성이 강한 환자에게는 마약성이 적은 약을 처방하도록 한 것이다.

특별한 원인이 없는데 마치 칼로 살을 에는 듯한 통증에 시달리는 병이 있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라는 난치성 질환이다. 아직까지 치료제가 없어 진통제나 항우울제 등을 처방하거나 주사 치료를 한다.

문 교수는 2013년부터 현재까지 CRPS의 원인을 찾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환자 250명을 대상으로 10년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미세 신경이 손상돼 있고, 자율신경계가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 연구 결과는 3편의 논문으로 공개됐다.

■ 알아 둘 만한 통증 상식
남성보다 여성이 취약
바른 자세 유지 바람직… 요가-필라테스 큰 도움


통증이 나타날 때 ‘저절로 낫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때론 위험할 수도 있다. 통증을 내버려두면 뇌가 통증에 무감해진다. 아파도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이 경우 큰 부상이 생겨도 뇌가 인지하지 못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지연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통증에 대한 기본 상식을 알아둘 것을 권했다.

첫째, 대체로 남성보다는 여성이 통증에 더 취약하다. 그 이유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여성 호르몬 때문에 통증에 더 민감하다는 가설, 통각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 수용체가 여성이 더 많다는 가설 등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둘째, 진통제 복용은 신중해야 한다. 통증의 강도가 약하면 ‘아세트아미노펜’ 계열의 해열진통제를 먹는 게 좋다. 이 성분의 대표적인 약은 타이레놀이다. 통증 강도가 조금 더 올라가면 비(非)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가 추천된다. 아스피린이 대표적이다. 다만 이런 소염진통제는 위장 장애를 유발할 수도 있다. 카페인 성분이 들어간 ‘복합진통제’는 장기 복용할 경우 내성이 생길 수 있으므로 의사의 처방을 따르는 게 좋다.

셋째, 평소 올바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나쁜 생활습관이 통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의자에 앉을 때 다리를 꼬거나 책상다리를 오래 하는 자세, 쪼그려 앉는 자세는 피하는 게 좋다. 누워서 TV를 보는 자세, 엎드려 자거나 옆으로 자는 자세도 모두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너무 높은 베개도 좋지 않다.

넷째, 운동은 통증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스트레칭과 근육 강화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요가, 필라테스 등이 권장된다. 이런 운동을 지속적으로 하면 항염증제를 먹거나 물리치료를 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다만 지나친 운동은 되레 몸을 상하게 한다. 운동 중 통증이 나타난다면 의사와 상의하는 게 좋다.

다섯째, 정신 건강을 챙겨야 한다. 문 교수는 “우울함이 통증을 악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며 “긍정적 마인드가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엔도르핀이 통증을 완화한다는 동물 실험 결과도 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문지연 서울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만성 통증 환자#약물 오남용#통증 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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