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 영부인[횡설수설/서영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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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역대 대통령 부인들의 직업은 영부인이었다. 잘나가는 변호사였던 힐러리 클린턴 여사도, 미셸 오바마 여사도 백악관 입성과 함께 본업을 내려놨다. 하지만 이런 전통은 내년 1월 20일 취임하는 조 바이든 당선인의 부인 질 여사(69)에서 끝나게 된다. 평생 고교와 대학에서 가르쳐온 그는 영부인이 된 뒤에도 강의를 계속하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백악관에서 출퇴근하는 ‘투잡(two job)’ 영부인이다.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에서 이제는 선출직 국가원수의 부인, 즉 퍼스트레이디를 일컫는 말이 된 영부인은 사실 직업이라 하기에는 좀 특별하다. 보수는 없지만 대통령을 보좌하고 여러 행사에 참석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사실상 사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남편이 대통령에 선출되면 아내는 자신의 직업을 포기하고 내조에 적극 나서는 게 당연시됐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영부인은 엘리너 루스벨트(1884∼1962)라는 데 별 이견이 없다. 그는 불행을 기회로 만드는 ‘행복의 연금술사’라고 불렸는데, 적극적인 내조로 장애인이 된 남편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는가 하면, 4번이나 연임에 성공시켰다. 1945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재임 중 사망할 때까지 남편의 손과 발, 눈이 되어 그림자처럼 도우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남편 사망 후에도 유엔 등을 무대로 ‘인권의 대모’라 불리며 영부인의 새로운 영역을 구축했다.

▷미 언론들은 질 여사를 바이든 당선인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 ‘바이든의 최종 병기’라 표현한다. 질 여사는 카멀라 해리스를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선택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등 이번 선거 기간을 통해 ‘내조형’인 동시에 ‘참모형’ 아내의 면모를 두루 보여줬다. 이런 그가 “나만의 정체성과 직업을 갖길 원한다”고 했다. 26세 나이에 두 아들이 딸린 35세 바이든과 결혼해 세 아이를 키우며 석박사 학위 3개를 따낸 감투정신이라면 무엇이건 못하랴. 질 여사는 바이든이 부통령으로 일한 2009∼2017년 ‘에어포스투’ 안에서 시험지 채점을 한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미국의 한 연구자는 “과거 영부인들의 경우 일과 가정의 양립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질 여사는) 21세기에 맞는 영부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바이든 당선인은 평소 질을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이라고 말해왔고 지난해 4월 첫 유세에서 자신을 ‘질의 남편’이라고 소개했을 정도로 그녀를 밀어준다. 비록 78세, 69세 고령인 당선인 부부지만 사고방식은 그 누구보다 젊은 커플이 아닐까 싶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바이든 시대#질 여사#투잡 영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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