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트럼프 겨냥 “일방주의-압력행사, 죽음의 길 이어질 것”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입력 2020-10-24 03:00수정 2020-10-24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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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참전 70주년 연설 전국 생중계
경고성 발언으로 결집 다지고 美中 갈등 정면돌파 의지 과시
시진핑, 스스로 약자로 표현하며 “미군 불패의 신화 깼다” 강조
일각 “中도 주변국 압박” 비판
23일 오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항미원조 전쟁 참전 70주년 기념식장에 입장하고 있다. 이날 시 주석은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20년 만에 6·25전쟁 기념식 연설에 나섰다. 베이징=AP 뉴시스

23일 시진핑(習近平·사진) 중국 국가주석이 6·25전쟁 참전 70주년 기념식에서 직접 연설을 하면서 미국을 염두에 둔 강경한 경고성 발언을 쏟아낸 것은 대내 단합을 통해 미중 갈등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선 주변국들에 힘을 앞세운 외교를 펼치고 있는 중국이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약자로서의 피해만 강조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대중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화웨이, 틱톡 등 중국의 대표적인 기업들을 제재하고, 대만에 최신 무기를 수출하는 등 분야도 다양하다. ‘신냉전’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미중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 전쟁 참전 70주년 기념일은 시 주석의 입장에서는 반미 여론을 결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으로 보인다. 국력 차이가 현저했던 70년 전에도 미국에 맞서 승리를 거뒀다는 점을 강조해 국민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실제 이날 연설에서 ‘위대한 승리’라는 말이 10회 이상 등장했다.

시 주석은 연설에서 6·25전쟁이 남긴 의미를 설명하면서 “약자를 괴롭히고 침략을 확대하면 반드시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게 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頭破血流)”고 말했다. 과거 얘기를 꺼낸 듯하지만 사실상 현재 미국을 겨냥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최근 중국 정부는 미중 갈등을 논평할 때마다 “미국이 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면서 스스로를 약자로 표현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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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트럼프 미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비판하면서 “일방주의, 보호주의, 극단적 이기주의나 협박, 봉쇄, 극한의 압력 행사 같은 방법은 통하지 않을뿐더러 반드시 죽음의 길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게 될 것’ ‘죽음의 길로 이어질 것’ 등의 강한 표현은 극단적 애국주의를 추구하는 환추시보 등 일부 중국 매체에서 비슷하게 사용하긴 했지만 시 주석이 직접 사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는 중국군의 참전 의의를 설명하면서 6·25전쟁이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 전쟁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시 주석은 “당시 중국과 미국의 국력은 큰 차이가 났지만 중국군이 북한군과 힘을 합쳐 ‘미군 불패의 신화’를 깼다”면서 “이를 통해 지난 수백 년 동안 동양의 해안에 대포 몇 발만 쏘면 한 나라를 점령할 수 있다는 서방 침략주의자들의 생각을 무너뜨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작 중국이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만만찮다. 중국은 인도와 베트남을 비롯한 주변국들과의 국경·해상 영유권 분쟁 등에서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밀어붙이기식 태도를 숨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해서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를 놓고 강하게 압박한 전례가 있다.

또 시 주석이 직접 미국에 대한 비난 강도를 높이면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이나 교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중국 내 반미 여론은 대부분 중국인들의 애국심을 기반으로 형성되는데, 애국심이 과도하게 부각될 경우 불똥이 한국으로 튈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실제로 최근 방탄소년단(BTS)의 6·25전쟁 관련 수상 소감도 극단적 중국 애국심의 타깃이 됐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시진핑#6·25참전 70주년 연설#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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