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상담중 홧김에?… ‘36주 아기 20만원’ 글 올린 20대 미혼모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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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물품 거래 앱 ‘당근마켓’에 아기 사진 2장과 8분간 게시
산모, 실제로는 출산 3일 지나 “키우기 어려워… 잘못 알고 삭제”
경찰 수사… 제주도 지원방안 모색
업체, 불법 게시물 못걸러내

16일 오후 6시 36분경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에 올라온 게시글. 36주 된 신생아 사진 2장과 20만 원에 입양시키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근마켓은 이용자들의 신고를 받고 비공개 처리했다. 뉴시스
16일 오후 6시 36분경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에 올라온 게시글. 36주 된 신생아 사진 2장과 20만 원에 입양시키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근마켓은 이용자들의 신고를 받고 비공개 처리했다. 뉴시스
제주에 사는 한 20대 미혼모가 중고 물건을 직거래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에 자신이 낳은 지 사흘 된 신생아를 돈을 받고 넘기겠다는 글을 올려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운영 업체가 불법 거래 글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관계기관의 미혼모 관리 체계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 아이 낳고 사흘 만에 거래 글 올려

제주지방경찰청은 “중고 직거래 앱 ‘당근마켓’에 아이 사진 2장을 올린 뒤 희망금액 20만 원을 받고 입양 보내겠다는 글을 올린 A 씨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18일 밝혔다.

경찰 등에 따르면 A 씨는 제주 서귀포에서 16일 오후 6시 36분경 ‘아이 입양합니다. 36주 됐어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약 4분 뒤 이 글을 발견한 이용자들이 당근마켓에 신고하자 업체 측은 A 씨에게 삭제 요청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글이 내려가질 않자 6시 44분경 외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아이의 사진과 글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급속도로 퍼진 상태였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인터넷주소(IP) 추적 등을 통해 A 씨의 신상 파악에 나섰다. 17일 신원이 특정된 A 씨는 13일 제주에 있는 한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한 뒤 산후조리원에 있다가 게시물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출산일이 임박해 임신 사실을 알았고 아이 아빠가 곁에 없어 키우기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며 “미혼모센터로부터 입양 절차를 상담하던 중 홧김에 글을 올렸다가 잘못된 행동인 것을 깨닫고 삭제했다”고 말했다. 현재 A 씨와 아이의 건강 상태는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A 씨는 13일 혼자 병원을 찾아가 아이를 낳았다. 그는 병원에 출산 직후부터 입양 의사를 보였다고 한다. 병원 측은 A 씨의 부탁으로 입양기관에 지원을 요청했고, 당일 상담도 받았다. 미혼모 지원 단체 등은 “입양 보내려면 숙려기간 7일이 필요하다”고 알려줬으나, A 씨는 “하루라도 빨리 보내고 싶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 해당 업체·기관, 재발 방지책 마련해야

사건이 일파만파로 퍼지며 해당 글이 게시됐던 업체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도 크게 일고 있다. 엽기적인 글이 올라왔는데도 약 8분 동안이나 정상적으로 표시된 채 이를 걸러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중고거래 관련 앱은 문제 소지가 있는 글들이 자주 올라와 모니터링이 매우 중요하다. B업체는 모니터 요원 20여 명이 24시간 대응해 삭제 및 탈퇴 조치를 시행한다. 당근마켓 역시 자체 운영하는 고객센터를 포함해 약 30명 규모의 대응팀이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근마켓은 서비스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된 매뉴얼이 없고 대응이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당근마켓 측은 “문제의 심각성이 높은 만큼 해당 이용자의 재가입 방지 등 강력한 이용 제재 조치를 취했다”며 “더 정교하고 강화된 기술을 추가 개발해 빠른 시간 내에 대응 강도를 높이겠다”고 해명했다.

미혼모 관련 기관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단 의견도 나온다. 한 지원 단체 측은 “A 씨가 불안한 심리 상태였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이를 팔겠다는 글을 올리는 돌발행동을 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18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홀로 아이를 키우기 막막하고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은 두려움에서 이런 행위를 한 것 같다. 미혼모 보호와 지원 실태를 다시 점검해 제도 개선 방안까지 살피겠다”고 했다.

제주도와 입양기관, 지원 단체 등은 이달 말 A 씨가 산후조리원에서 나와 미혼모 지원 시설로 가게 되면 아이의 입양 여부를 명확히 확인해 행정 절차를 안내하기로 했다. 경찰 역시 이때쯤부터 A 씨에 대한 추가 조사가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민구 warum@donga.com·신무경 / 제주=임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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