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 찍듯 툭툭 던진 붓… 화폭 가득 넘치는 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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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황창배 19주기 맞아
‘1979년 이후 그림’ 전시회 열려
국전 수상후 확 달라진 스타일
“만족” 인장 찍은 작품들 선보여

캠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황창배의 ‘무제’, 종이에 간결한 선의 수묵화에 통기타와 램프가 보인 수묵담채, 60×69.5㎝, 1983년. 황창배미술관 제공
캠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황창배의 ‘무제’, 종이에 간결한 선의 수묵화에 통기타와 램프가 보인 수묵담채, 60×69.5㎝, 1983년. 황창배미술관 제공
간결한 선의 수묵화에 통기타와 램프가 보인다. 캠핑하는 사람들 그림이다. 또 다른 그림에서는 배경을 칠하고 흰 옷은 그대로 둔 채 다양한 붓 터치로 음악과 춤의 역동성을 표현했다. 1980년대 한국화에서 보기 힘든 일상의 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이 그림들에는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1979년 이후 그림’이라고 날인돼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황창배미술관은 황창배 작가(1947∼2001) 19주기를 맞아 6일부터 ‘1979년 이후 그림’전을 연다. 황창배가 1979년부터 1983년까지 제작한 회화 17점과 전각(篆刻)작품 10여 점을 소개한다. 전시 작품에는 그가 직접 ‘1979년 이후 그림’이라고 전각으로 새긴 인장이 찍혀 있다. 1979년은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

그 1년 전인 1978년 황창배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비(秘)’를 출품해 대통령상을 받는다. 이는 작가로 주목받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같은 해 12월, 42일간 이탈리아 스위스 영국 이집트를 여행한다. 당시 기억을 황창배는 이렇게 썼다.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아무것도 그리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품의 지역성’ 문제가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각국 예술품, 지역 주민과 직접 대해보는 길밖에 돌파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낭만에 가득 찬 자아도취적 외국 등불 스케치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때부터 그는 동양화적 관습에서 벗어나려 시도한다. 계획을 하고 그리면 습관이 튀어나와 아무것도 전제하지 않고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점부터 찍으며 그림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실패한 그림도 많았다. 이재온 황창배미술관장은 “1983년까지의 그림 중 작가가 스스로 만족한 그림에만 ‘1979년 이후 그림’이라고 인장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소규모 전시지만 작가 고유의 조형 언어가 형성되는 초기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 기간 작가는 첫 번째 개인전(1981년)을 동산방화랑에서 열었고, 1987년 두 번째 개인전에서 ‘숨은그림찾기’ 시리즈를 통해 화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팀장(한국화 박사)은 “그의 초기 작품은 화선지에 수묵이라는 단조로운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급격한 경제 개발에 따른 사회의 화려하면서도 어두운 일면, 인간 욕망의 단면을 자유로운 선묘와 경쾌한 색감으로 표현했다”며 “수묵화가 죽은 언어가 아닌 시대를 표현하고 호흡하는 시각언어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무료. 11월 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화가 황창배 19주기#수묵화#황창배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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