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에포크[내가 만난 名문장]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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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태 형 조향사
김 태 형 조향사
“아름답지 않아요? 전 그때가 가장 좋아요. 모든 게 완벽했던 때.”―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중에서

아드리아나는 벨 에포크 시절 만들어진 회전목마를 바라보며 과거를 꿈꾼다. 어쩌면 2019년이 그녀가 말하는 세기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이들이 되돌아가고 싶어 하는 황금시대의 마지막. 오늘날 우리는 모두 아드리아나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은가.

모든 인간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 존재하고 있다. 과거가 될 현재를 만들어가는 주체 또한 지난날로부터 남은 흔적들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과거를 동경하는 일은 매우 보편적이고, 또 필연적이다. 최근 1990년대풍 혼성그룹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그리움과 호기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1990년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나를 이끌었던 것은 그때의 감성이지 그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현재 우리를 자극하는 것은 그리움이나 호기심이 아닌 시간 그 자체다. 마스크를 벗고 길거리를 누비고, 거리낌 없이 반가움으로 포옹하던 시절로 돌아가길 간절하게 바란다. 우리를 여기까지 내몬 것은 바로 두려움일 것이다. 현재의 고통과 미래의 불확실성에서 오는 두려움, 하루에도 몇 번씩 블루와 레드의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극 중 헤밍웨이는 진정한 사랑은 죽음에서 오는 두려움도 잊게 해준다고 말했다. 우리가 절망적인 시간 속을 헤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과거가 현실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두려움을 잊기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 그것이 마음을 다독여 주는 향기가 되었든, 사랑하는 이의 따뜻한 품 안이 되었든 말이다. 우리가 꿈꾸는 것이 미련이 아닌 다가올 미래의 희망이기를 바란다. 주인공 길이 과거의 무상함을 깨닫고 현실 속에서 진정한 인연을 만난 것처럼.

김태형 조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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