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까짓 것 때문에 마임 멈춰서야 되겠어요”

김기윤 기자 입력 2020-09-22 03:00수정 2020-09-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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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미스트 유진규, 24일까지 춘천서 ‘요선시장 코로나땡…’ 공연
절반쯤 문닫은 시장건물서 공연
관객들 3분 간격 거리두고 입장
시장 돌며 공연 보고 막걸리 한잔
방호복을 입은 마이미스트 유진규가 강원 춘천시 요선시장의 거리 한복판에 서 있다. 그는 “어떠한 역병, 역경이 닥쳐도 결코 빛을 놓치거나 잃어버리지 않는 예술가의 소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스테이지 식스 제공
남들이 “네가 하는 건 마임이 아냐”라고 할 때도 꿋꿋하게 온몸을 꿈틀댔다. 교통사고와 뇌종양으로 “재기가 힘들 것”이라는 우려에도 보란 듯이 돌아왔다. 무대에서 몸을 움직인 지 약 50년. “이 시국에 무슨 마임이냐”는 볼멘소리에 아랑곳없이 공연을 들고 나타났다. 또다시 ‘춤’을 추기로 했다.

‘마임의 대가’ ‘천재 마이미스트’ ‘춘천 마임축제의 주역’…. 1세대 마이미스트 유진규(68·사진)가 21일 강원 춘천시 요선시장에서 관객 참여형 마임 공연 ‘요선시장 코로나땡 동그랑땡’을 열었다. 앞서 그는 1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렇다고 쪽팔리게 이까짓 것 때문에 마임을 멈출 순 없다”고 말했다.

공연은 독특한 것 투성이다. 공연장은 한때 음식점으로 가득했지만 지금은 찾는 사람이 적어 반쯤 문을 닫은 시장 건물이다. 관객은 방역수칙에 따라 3분에 한 명씩 입장해 1층(현실) 2층(팬데믹) 옥상(미래)을 걷는다. 곳곳에서 마임, 영상, 미술작품, 시 등을 관람한다. “극장에 모인 다수의 관객이 원하는 공연만 보여주는 건 시국에 맞지 않다. 관객이 능동적으로 공연을 찾아나서야 한다.”

공연자들은 방호복을 입고 시장을 돌아다닌다. 공연 막바지에는 시장 끄트머리의 식당 주인도 방호복을 입고 등장해 동그랑땡을 부치다가 관객에게 막걸리 한 잔 내주기도 한다. 시장에서는 왁자지껄했던 옛 저잣거리 음향이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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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코로나19가 확산될 때 그는 이 공연을 떠올렸다. 시장 단골집에서 얼근하게 취해 화장실을 찾다 불현듯 ‘어? 이건데!’ 했다.

“정겨웠던 시장이 죽음 직전 공간이었어요. 바이러스로 사회가 무너지기 직전인 데다 일흔을 앞둔 제가 맞물리며 이전과 완전히 다른 걸 해야겠다, 생각했죠.”

원로 예술인으로서 소명의식도 공연을 부채질했다. 그는 “원로로 불리는 사람으로서 후배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늘 새로운 길을 뚫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1968년, ‘무언(無言)의 세계’를 선보인 독일 마이미스트 롤프 샤레의 공연을 보고 사춘기 고교생 유진규는 전율했다. “웬 검은 타이츠를 입은 사람이 두 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몸으로만 세계를 그려낸 모습”에 넋을 잃었다. 건국대 수의학과에 입학했지만 연극 동아리에 빠져 중퇴하고 전위 극단 ‘에저또’에 들어갔다.

1972년 국내 최초의 무언극 ‘첫 야행’을 선보인 그는 평생 마임에만 천착했다. 몸의 움직임 자체에 집중해 ‘공연장을 돌아다니며 대화하는 것도 마임’이라는 그의 독창성, 혹은 파격에 “그게 무슨 마임이냐”는 지적이 나올수록 그는 “마임이 아닌 마임을 하는 유진규”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가 주축이 돼 1989년부터 25년간 이끈 춘천마임축제는 세계 3대 마임축제가 됐다.

이번 공연에도 몸에 대한 철학을 담았다. “극장이라는 인위적 공간에서 몸을 보여주는 건 허위 같다. 내 몸이 실제 생활하는 곳과 마임이 한데 어우러져야 자연스럽다.” 20년 넘은 빡빡머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 그는 “밀어보면 알지만 뭔가 기존의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며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분, 코로나19로 앞이 캄캄한 모두가 공연을 즐기길 바란다”고 했다. 24일까지, 무료.

 
김기윤 기자 pep@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마이미스트 유진규#요선시장 코로나땡 동그랑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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