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아닌 것[내가 만난 名문장]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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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윤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 교수·조경가
김정윤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 교수·조경가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 더 하기 힘든 것은 없다”

―제니 오델 ‘아무것도 안 하는 방법’ 중

작가이자 아티스트, 교수로 바쁘게 살아온 저자가 갑자기 ‘아무것도 안 하기’, 즉 ‘유의미 해 보이는 무언가를 안 하기’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은 2016년 미국 대선 직후부터였다. 본인이 옳다고 믿었던 가치에 혼란을 느끼면서 열심히 살 의욕을 잃어 멍하게 걷거나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다 평소 눈에 안 띄었고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하고 상상하게 된다.

올해 3월 이전에 내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면 아마 펴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다 수업이 전면 온라인으로 전환되고 격리 수준의 몇 달을 보냈다.

‘대체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거야?’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여기저기 펴서 읽다 보니, 내가 가장 창의적이 되는 순간은 아무 생각 없이 조깅할 때, 혹은 멍하게 자연을 바라보고 있을 때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효율과 생산이라는 것이 반드시 한 방향의 직선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믿는 삶의 태도는 모두가 모두로부터 격리된 이 시점에 그다지 효율적이거나 생산적이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아무것도 아닌 것’의 목록에 있던 많은 것들이 ‘유의미할지도 모르는 것’들로 격상됐다.

시간과 돈만 허락한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세계 어디든 갈 수 있었던 때는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그러나 이 답답한 시기가 우리의 동네, 도시의 이모저모를 다시 둘러보게 하고 조금이라도 돌아서 갈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해 준다면 이 불편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수업이 끝나면 강아지 마리를 데리고 집을 나선다. 마치 퇴근하듯이, 다리의 움직임에 머리를 맡기고 집 근처를 30분 정도 걷는다.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가면 그때는 오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기로 마음먹으며.

김정윤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 교수·조경가
#작가#아티스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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