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 무과 급제해 덕수 장씨 시조가 된다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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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부전’ 40여종 중 가장 오래된 ‘흥보만보록’ 번역한 김동욱 교수

김동욱 계명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초기 흥부전은 흥부 개인의 성공 이야기에 초점을 뒀으나, 점차 권선징악과 조선시대 사회 부조리를 강조하는 내용으로 각색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동욱 교수 제공
김동욱 계명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초기 흥부전은 흥부 개인의 성공 이야기에 초점을 뒀으나, 점차 권선징악과 조선시대 사회 부조리를 강조하는 내용으로 각색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동욱 교수 제공
집안이 가난했던 흥부와 놀부는 부유한 처가에 데릴사위로 장가든다. 흥부는 하루에 밥을 스물아홉 공기씩 먹는 엄청난 먹성을 가진 부모를 봉양하려다 처가 재산까지 탕진하고 만다. 반면 놀부는 부모의 가난을 모른 척하며 부를 누리고 산다. 그러던 어느 날 흥부는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고쳐주게 되고, 제비가 물어다준 박씨를 심자 박에서 금은보화가 나온다. 흥부는 무과에도 급제해 황해도의 양반 가문인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된다. 놀부는 흥부처럼 부자가 되고 싶어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박씨를 얻지만, 금은보화 대신 박에서 놀이패가 튀어나와 재산을 빼앗아 간다.

우리가 알고 있는 흥부전과는 조금 다른 내용의 ‘흥보만보록’이 책으로 나왔다. 1833년 책력(책 형태로 된 달력) 뒷장에 필사된 흥보만보록은 지금까지 발견된 40여 종의 흥부전 이본(異本) 가운데 최고본(最古本)이다. 우암 송시열의 후손인 송준호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가 대대로 소장해오던 것을 2017년 공개했다. 이를 현대어로 해석해 처음 책으로 낸 김동욱 계명대 국어국문학과 교수(41)는 6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흥보만보록은 권선징악, 조선 후기 사회 부조리 고발에 집중한 기존 흥부전과는 다르다. 가난하지만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던 흥부가 신분 상승하는 성공 스토리에 중점을 뒀다”고 했다.

흥보만보록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흥부를 통해 당시 하층민들의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 흥부는 먹을 것이 없어 기진맥진해 흙바닥에 드러누울 정도로 가난했지만, 신분 상승에 성공한다. 김 교수는 “부자가 된 흥부는 ‘빠진 것 없는 밥상’을 차려 놓고 먹는다. 훗날 무과에 급제하는 것은 굶주림으로부터 탈피한 뒤 신분 상승을 하고 싶은 하층민의 꿈이 담긴 것”이라고 했다.

흥보만보록은 판소리로 각색되기 전 초기 흥부전의 특징을 보여준다. 놀부는 가난한 부모를 외면하기는 하지만, 익숙한 흥부전 내용처럼 흥부 몫의 부모 유산을 가로챌 정도로 나쁜 인물은 아니다. 김 교수는 “흥보만보록에는 놀부 마누라가 주걱으로 흥부 뺨을 때리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놀부가 흥부에게 심술을 부리는 장면도 없다”고 했다.

다만 놀부는 음식을 구하러 온 흥부에게 “처부모님 덕분에 재산과 논밭을 풍족하게 두고 먹는데, 부모님은 무슨 낯으로 내 것을 달라 하며 너는 무슨 염치로 나를 보채느냐”라고 묻는다. 김 교수는 “가난한 집에서 부잣집 데릴사위가 된 놀부가 처부모 재산을 함부로 나눠줄 수 없다고 거절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논리”라며 “후대에 흥부전이 각색될수록 권선징악 교훈이 강조되면서 놀부가 악한 캐릭터로 변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장소 배경이 보통 알려진 전북 남원이 아닌 평양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김 교수는 “흥보만보록은 평양 서촌, 지금의 평안도 평원군 순안면 일대를 배경으로 한다. 원래 흥부전은 평양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었을 수 있다”며 “흥부전이 판소리로 향유되기 시작하면서 판소리의 본고장인 호남의 남원으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흥보만보록#흥부전#김동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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