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이여, 일방적 사랑이나 우정에 괴롭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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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계의 아카데미상’ 아이스너상 받은 ‘이별과 이별하는 법’

스마트폰 메신저 소통을 대면 대화보다 편안하게 여기는 세대의 연애 이야기를 그린 ‘이별과 이별하는 법’. 사랑을 가장한 이기적 관계의 늪에서 헤쳐 나오는 주인공의 짤막한 성장담을 담아냈다. 에프 제공


여럿이 모이는 시상식 개최는 어려워졌지만 인터넷을 통해 각 장르 주요 상의 수상작이 발표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우려로 인해 지난달 24일 온라인으로 올해 수상작을 발표한 미국 만화상 아이스너상은 캐나다 작가 마리코 타마키(45)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그래픽노블의 선구자인 윌 아이스너(1917∼2005)를 기리는 이 상은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린다. 타마키가 지난해 그림작가 로즈메리 발레로오코널과 함께 발표한 그래픽노블 ‘이별과 이별하는 법(원제 Laura Dean Keeps Breaking Up with Me·사진)’은 최고의 작가상, 10대 독자를 위한 최고의 출판물상, 최고의 연필 잉크 작화상을 받았다. 40대 중반의 남성 독자에게는 낯설게 여겨질 수 있는 내용이다. 만화 담당 기자가 아닌 독자로 서점에서 봤다면 몽글몽글한 이미지의 분홍색 표지를 한번 들춰보지도 않았을 거다. 4쪽에서 주인공 프레디가 “작년부터 저는 로라라는 여자애를 좋아하고 있어요”라고 말할 때부터 혼란에 빠졌다. 20여 쪽을 더 넘기고 나서야 이 책이 10대 후반 여학생들 사이의 밀고 당기는 동성 간 연애 이야기를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프레디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버클리에 사는 열일곱 살 소녀다. 그는 연애 상담 칼럼니스트인 애너 바이스에게 e메일을 보내 “로라는 자꾸 나랑 헤어져요. 그래서 그 애를 좋아하는 게 저에겐 인생에서 제일 힘든 일이에요”라며 고민을 토로한다.

“로라는 학교에서 제일 인기 많은 애예요. 모두 다 걔를 알아요. 학교 체육시간에 포크댄스를 추고 나서 걔가 저에게 ‘딸기 향기가 난다’고 속삭였어요. 심장마비가 오는 것 같았죠. 그 후로 걔와 사귀었어요.”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즐기며 살아가는 로라는 프레디를 ‘몇 번이든 편리하게 헤어졌다가 다시 만날 수 있는 대상’으로 취급한다. 한가하고 따분할 때만 프레디를 만나고, 프레디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라치면 “너, 나랑 헤어지고 싶어?”라고 뻔뻔한 표정으로 따져 묻는다.

“프레디 너도 알지? 우리는 헤어져도 결국 다시 사귀게 되는 거. 우리는 이런 거잖아. 너는 날 알아. 나는 널 알고.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항상 서로에게 다시 돌아올 거야.”

프레디의 곁에는 이기적인 로라에게 휘둘리는 그를 진심으로 염려하는 친구들이 있다. 로라로 인한 괴로움만 부여잡고 있는 프레디는 로라가 자신에게 하듯 무성의하게 친구들을 대한다. 늘 곁에 머물러준 단짝 두들의 괴로운 속사정을 프레디가 뒤늦게 깨달았을 때, 칼럼니스트 바이스의 e메일 답장이 도착한다.

“당신과 계속 헤어지면서 또 매번 당신에게 돌아오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건, 어떤 느낌이죠? 그 사람을 사랑하면 당신에게 어떤 좋은 점이 생기죠? 행복해지나요? 스스로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드나요? 사랑이 당신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가게 해서는 안 돼요.”

일본계와 유대계의 혼혈인 마리코 타마키는 마블의 ‘스파이더맨’과 DC의 ‘할리퀸’ 등 슈퍼히어로 만화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사진 출처 marikotamaki.com
일본계와 유대계의 혼혈인 마리코 타마키는 마블의 ‘스파이더맨’과 DC의 ‘할리퀸’ 등 슈퍼히어로 만화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사진 출처 marikotamaki.com


모든 독자가 재미있게 볼 책은 아니다.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라는 옛 노래 가사에 공감하는 중년 독자에게는 특히 그렇다. 하지만 프레디가 로라에게 날리는 마지막 대사는, 사랑이든 우정이든 편향적으로 기울어진 관계로 인해 괴로워하는 청춘들에게 꼭 한번 써먹어 보라고 권하고 싶어진다.

“넌, 거지 같은 애인이야. 너랑 있으면 나도 내 친구들에게 거지 같은 친구가 돼. 그래서 나는, 너랑 헤어질 거야.”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캐나다 작가#마리코 타마키#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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