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문답법으로 보는 영화 ‘반도’[이승재의 무비홀릭]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입력 2020-07-31 03:00수정 2020-07-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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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도’의 한 장면. 이 영화엔 사연이 부족하다. 절실하지 못하다. ㈜NEW 제공
코로나19로 겨울잠에 빠진 극장가를 좀비가 부활시켰어요. 아파트 이웃이 좀비로 변하는 내용의 ‘#살아있다’(6월 24일 개봉)가 190만 관객으로 포문을 연 뒤 ‘부산행’의 속편인 ‘반도’가 15일 개봉해 최근 300만 관객을 넘었지요. 오랜만의 대작인 데다 강동원 주연이라 관객이 몰렸지만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반도에 아주 실망했어요. 자, 그럼 지금부터 소크라테스 스타일의 짜증나는 문답법을 통해 반도와 강동원이 왜 실망스러운지 조목조목 씹어 보겠어요.

Q. 부산행에선 뭔가 애틋한 정서가 느껴졌는데, 반도는 그냥 좀비를 퇴치하는 컴퓨터 게임을 보는 것만 같았어요.

A. 이 영화는 ‘왜 좀비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답하질 못해요. 우리가 ‘전설의 고향’ 속 구미호와 ‘링’의 사다코,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과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의 레더 페이스 같은 살인마들에게 식겁하는 이유는 단지 그들이 잔인무도해서가 아니에요. 그런 미친 짓을 하게 된 치명적인 사연이 그들에겐 있기 때문이지요. 사연은 영화의 처음이자 끝이에요.

Q. 사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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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가구 2주택’이란 말을 떠올려 볼까요? 듣는 순간부터 적폐 냄새를 풍기지요? 하지만 다주택자인 고위 공직자는 “90세 노모를 모시는 집이다. 내게 불효자가 되란 말인가”라며 호소합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죠. 이렇듯 사연은 힘이 세요. 아하! 다주택자 가족이 여러 집에 흩어져 살면 좀비 확산을 늦추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좀비로 변한 아빠와 딸은 잠실 아파트에, 목숨을 부지한 엄마와 아들은 도곡동 아파트에 살면 되니까요. 다주택자는 좀비가 창궐해도 영원한 위너이겠어요.

Q. 헛소리 찍찍 하지 말고 영화 얘길 하세요.

A. 부산행에 우리가 마음을 빼앗긴 건 사회적 성취만을 위해 살아온 아빠가 초고속열차라는 폐쇄 공간에서 좀비 떼와 맞닥뜨리며 가족애를 절감해 가는 과정에 있었어요. 초고속열차는 성공을 향해 일로 매진해온 아빠의 태도에 대한 은유인 동시에 헌신과 희생과 사랑이라는 휴머니즘이 피의 고통 속에서 싹트는 골고다 언덕이죠. 아아, 좀비가 되어 가는 자신을 딸에게서 분리하기 위해 스스로 열차에서 몸을 던지는 아빠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애달파요. 그런데 반도엔 이런 절실한 사연이 취약해요. 좀비에 점령된 한반도를 탈출해 홍콩에서 난민으로 천대받던 강동원이, 달러와 금괴를 손에 넣으려고 위험천만한 서울로 되돌아가려는 매형을 곁에서 지키기 위해 좀비 떼와 대결한다는 내용은 이렇게 글로만 읽어도 재미가 더럽게 없잖아요? 좀비가 사다코 혹은 제이슨과 다른 지점은 내 주위 가족, 친구, 연인, 이웃 누구라도 좀비로 변할 수 있다는 ‘인지부조화’ 공포에 있어요. 좀비에게 물리면 좀비가 된다는 전염 공포도 상당하고요. 한데 반도의 좀비는 그저 바퀴벌레처럼 박멸의 대상으로 타자(他者)화될 뿐이지요. 모든 종류의 갈등과 모든 종류의 사랑이 모자라요.

Q. 오히려 반대의 해석이 가능하진 않을까요? 반도는 좀비 떼를 콜로세움 같은 경기장에 가둬놓고 살육과 사냥을 즐기는 잔혹한 인간들의 모습을 통해 ‘좀비보다 더 좀비 같은 인간’을 비판하려 한 것 같은데….

A. 좀비보다 더 좀비 같은 인간이라니, 무슨 말장난에 개똥철학이람? 아, 이제야 그 깊은 뜻을 알겠네요. ‘쌀떡보다 더 쌀떡 같은 밀떡’ ‘윤석열보다 더 윤석열 같은 한동훈’ ‘조국보다 더 조국 같은 김남국’으로 치환해보니 말이에요. 하지만 이런 종류의 철학적 관점은 영화적으론 구태의연해요. 이미 미국 영화 ‘블레이드 러너’(1993년)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조인간’을, ‘혹성탈출’ 시리즈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유인원’을 통해 인간의 비인간성을 거울처럼 비춘 바 있다고요.

Q. 이 영화의 액션은 스케일과 속도감이 압도적인데도 기시감이 느껴집니다. 남편을 좀비에게 잃은 이정현이 두 딸과 함께 여전사로 성장해 대형트럭을 미친 듯이 몰면서 히피 같은 악당들의 추격을 피해 나가는 장면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를 베낀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A. 베꼈다니요? 모욕적인 표현은 삼가주세요. 그럴 땐 ‘영감을 받았다’라고 표현하는 거예요. 다른 영화를 참고해 진일보한다면 모방이 아닌 창조이지요. 다만 반도의 카 체이싱이 진부하게 다가오는 건, 영화의 메시지와 맞물려 어떤 질감의 액션을 일관되게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예술적 비전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여요. 기술적으론 매끈하지만 마치 가상세계나 게임 속 폭력을 보는 것처럼 덜 체감적으로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죠.

Q. 강동원이 실망스럽습니다. 왜 이런 뻔한 영화에 출연한 걸까요?


A. 저는 말해주지 않을래요.

Q. 좀비만큼 잔인하군요. 왜죠?

A. 다음 칼럼에서 말할 거니까요.

이승재 영화 칼럼니스트·동아이지에듀 상무 sjda@donga.com

#반도#좀비#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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