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특별지위 박탈’[횡설수설/서영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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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중국 반환 직전의 홍콩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다. 금융가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체로 반환 이후 홍콩을 낙관하고 있었다. 첨단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회주의 중국의 품으로 돌아가는 운명의 지역…. 세계의 우려 섞인 시선과 달리, 반환 이후 홍콩은 국제금융 허브로 한 단계 부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5년 전인 1992년 미국은 ‘홍콩정책법’을 만들어 홍콩에 중국과 다른 특별지위를 부여했다. 고도의 자치 보장을 조건으로 비자 발급이나 관세, 금융, 민감한 기술제품의 수출 등에서 특별대우를 하기로 했다. 그 덕분에 홍콩은 중국 반환 후에도 글로벌 무역·금융 허브로 기능했고 미국과 중국, 홍콩 모두 ‘윈윈’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환율도 한몫했다. 홍콩달러(HKD)는 1983년부터 미화 1달러당 7.75∼7.85홍콩달러 범위 내에서 움직였다. 금융 당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해 고정환율을 유지시키는 ‘홍콩달러 페그(peg·고정용 못, 말뚝)제’다. 홍콩 당국은 페그제 유지를 위해 전체 통화량의 2배에 달하는 달러를 비축해 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초에 홍콩 특별대우를 종식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중국이 홍콩 국가보안법을 제정한 것에 대해 ‘홍콩이 중국 땅이라고 주장한다면 정말 그렇게 대접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한동안 만지작거리던 홍콩달러 페그제 폐지 카드는 일단 보류했다. 이미 각계에서 “글로벌 금융전쟁 선전포고나 다름없다”며 경계하는 메시지들이 쏟아져 나온 터다.

▷벌써부터 홍콩에서 돈과 인재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헥시트’(Hexit·Hongkong+Exit)가 시작됐다. 자금 유출은 지난해 2월부터 늘어나기 시작해 홍콩 보안법이 시행된 이달 들어 3배까지 급증했다. 100원이 들어오면 300원이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사태가 악화돼 만에 하나 홍콩 정부가 외화보유액을 소진한다면 최악의 경우 페그제가 깨질 수도 있다. 중국 정부가 미국의 달러화 패권에 맞서기 위해 위안화 국제화에 박차를 가하지만 현실은 초라하다.

▷전문가들은 홍콩발 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거론한다. 홍콩은 한국의 네 번째 수출국이고 홍콩을 통한 자금 조달 규모도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많다. 우리나라 전체 ELS(주가연계증권) 가운데 홍콩H지수에 근거한 잔액이 28조 원으로 전체 ELS 잔액의 60%를 넘는다. 독일 국채금리연계상품(DLS, DLF)이 많은 개인투자자들의 눈물을 흘리게 했듯이 홍콩 사태는 한국의 개인투자자들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홍콩의 민주주의 위기가 미칠 숱한 파장이 우려스럽고 안타깝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홍콩보안법#홍콩 특별지위 박탈#헥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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