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옆 사진관]사진으로 보는 5·18

김재명 기자 입력 2020-05-17 16:00수정 2020-05-17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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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민주화운동>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매장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발생한지 40년을 맞았다. 당시 광주에서 일어난 일은 외부로 잘 알려지지 못했다. 계엄당국의 보도검열 때문에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소식이 전해질 수 없었다.

당시 신군부의 계엄사령부는 1980년 5월 31일 ‘광주폭동사태’로 규정 ‘무장폭도에 의한 살상파괴 방화 약탈과…’로 발표했다. 발표직후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군은 유혈사태를 유발하여 놓고 그 책임을 광주시민에게 전가…’ 와 같은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6공화국이 들어선 1988년 2월 정부는 ‘폭동’이 아닌 ‘민주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규정했다.

1980 년 5월 당시 본보기자(황종건, 김녕만)들이 기록한 광주 모습을 통해 그때의 실상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자 한다.

<5·18광주민주화운동> 광주시내 탱크
<5·18광주민주화운동> 전남도청 앞 탱크.
<5·18광주민주화운동> 깨진 건물 유리창 너머의 계엄군
<5·18광주민주화운동>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들이 트럭에 탄채 대기하고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교련복을 입은 시민(학생)이 계엄군에 의해 제압되어 압송되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전남도청 마지막 진압
<5·18광주민주화운동> 포박당한 채 머리를 땅에 박은 시민들
<5·18광주민주화운동> 고등학생을 향해 총을 겨눈 계엄군
<5·18광주민주화운동> 27일, 광주를 시찰한 군 고위간부들을 태운 헬리콥터기가 이륙하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망월동 묘역에서 치뤄지는 장례
<광주민주화운동> 1980년 5월 16일 밤 광주시내에서 횃불데모를 벌이는 대학생들.
<5.18 광주민주화운동> 광주. 1980.5.21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 후> 시내 곳곳에는 그간의 격렬함을 말해주는 흔적이 남아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都心의 데모 각목 쇠파이프 투석…. 데모 제일선에 나서 나름대로 무장하고 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전남도청 마지막 저항 시민들이 체포되어 나오는 모습
<5·18광주민주화운동> 시민들 진압을 위해 준비 중인 계엄군의 총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의 관을 안고 오열하는 유족. 망월동 묘역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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