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에 가려진 ‘예비’ 실업자, 현장은 “148만 추가 실직될라” 공포

  • 주간동아
  • 입력 2020년 5월 16일 10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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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일자리 쇼크
●주40시간 근로 따져보면 이미 ‘IMF급’ 일자리 절벽
●‘수출 타격’ 제조업도 “순환 휴직으로 버텨보자”
●내년 연차까지 당겨쓰고 휴직, 택배 알바 현장에 휴직 동료들 몰려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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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상여금이 안 나왔어요. 이달 월급 역시 제때 못 준다고 하고요.”

경기지역 운수회사에서 시외버스기사로 일하는 이모(47) 씨는 3월 중순부터 한 달간 휴직한 뒤 4월 중순 다시 출근했다. 하지만 요즘 같은 때 ‘일자리를 지켰다’는 안도감도 잠시뿐. 대구 신천지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감한 승객이 좀체 늘지 않아 근로시간이 줄었고, 그만큼 월급도 쪼그라들었다. 4월 말부터는 이마저도 연체되고 있다.

이씨는 “예전에는 월 20일 근무하고 세후 월급으로 300만 원 넘게 받았는데, 요즘은 16일만 일하고 240만 원을 받는다. 회사는 4월 급여를 일주일 늦게 주더니, 5월 월급도 제때 지급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통보했다. 분기마다 한 번씩 나오는 상여금 140만 원도 회사 경영이 정상화된 후에 준다고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씨는 연로한 부모의 생활비를 거르지 않으려 매달 30만 원씩 붓던 적금을 해약했다. 전세살이를 하는 그가 내 집 마련을 위해 모으던 돈이었다. 이씨는 “그래도 나는 나은 편”이라고 위안했다. 마트 계산원으로 일하는 아내와 맞벌이하고 있고, 자녀도 1명뿐이며, 빚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주변에서 소득이 줄어 대출이자를 감당하기 버겁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휴직 중에 집에서 술만 마시며 속상해하는 동료도 적잖다”고 전했다.

통계는 취업자 수 늘었다지만, 현실은 근로시간 감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일자리 쇼크’가 빠른 속도로 가시화하고 있다. 3월 전년 동기 대비 19만5000명이 감소한 취업자 수가 4월에는 47만6000명이나 줄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2월 이후 최대 감소폭이다.

하지만 통계청이 집계하는 ‘취업자 수’는 현실을 일부 오해하게 한다. 휴직자도, 단축근무를 하는 근로자도 취업자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4월 기준 직무를 중단한 일시휴직자만 148만5000명으로, 전년 대비 113만 명 늘었다. 이들은 취업자로 분류되지만 향후 고용 상황이 악화될 경우 해고될 수 있는 ‘예비’ 실업자다.

취업자가 전일(全日) 근무하면서 제대로 소득을 올리고 있는지 따져보려면 전일제 환산(Full Time Equivalent·FTE) 취업자 수를 파악해야 한다. 이 방식에서는 주40시간 일하는 취업자는 1명, 주20시간 일하는 취업자는 0.5명으로 계산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러한 FTE 방식의 고용통계를 머릿수 계산(Head Count) 방식의 고용지표를 보완하는 보조지표로 사용하고 있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가 FTE 방식으로 취업자 규모를 구한 결과 3월 FTE 취업자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7.6%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통계청의 머릿수 계산으로 나온 0.7% 하락 대비 10배나 높은 수치로, 외환위기 당시(-7.0%)와 비슷한 수준이다. 박 교수는 “통계청이 취업자로 분류한 휴직자를 0명으로 계산하고, 근로시간이 단축된 취업자 현실도 반영했기 때문”이라며 “노동시장 현실을 정확히 진단하려면 취업시간을 감안한 고용지표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별로 살펴보면 통계청 고용지표가 현실과 괴리돼 있다는 점이 더 뚜렷하게 드러난다. 일례로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취업자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운수 및 창고업’ 취업자는 증가하는 추세다. 3월 5.0%(7만1000명), 4월 2.4%(3만4000명) 증가했다(그래프1 참조). 하지만 FTE 방식으로 계산한 결과 3월 운수 및 창고업 취업자는 5.4%(8만9000명) 감소했다. 머릿수만 세자면 늘었을지 몰라도, 이들의 총 근로시간은 줄어든 것이다.

운수업계는 통계청보다 FTE 방식의 고용지표가 현실을 더 잘 반영한다고 본다. 위성수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정책본부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승객이 크게 감소해 전국적으로 시내버스는 20~30%, 시외버스는 70~80% 운행 횟수가 줄어들었다”며 “순환 휴직을 실시하거나 근무 일자를 줄인 회사가 많다. 버스기사는 일당제로 급여를 받기 때문에 다들 소득이 상당히 줄었다”고 전했다. 대전과 충남 천안을 오가는 시외버스기사 이씨는 “승객 상당수가 대학생인데, 5월 들어서도 대학생 승객이 드물다. 회사에서 6월에 한 번 더 휴직하라고 권하는 걸 보면 사태가 금방 끝날 것 같지 않다. 그나마 승객이 덜 감소한 시내버스 쪽으로 이직해야 하나 싶다”고 털어놓았다.

월급 반 토막에 ‘정규직 전환’ 포기 속출

코로나19 사태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여행업계 근로자는 그야말로 벼랑 끝에서 ‘버티는’ 중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지상조업사 소속 항공기 정비사로 일하는 강모(30) 씨는 “상당수 정비사가 3월 말부터 올해 연차를 소진하면서 쉬었고, 4월 중순부터는 내년 연차를 앞당겨 쉬었다. 현재는 정부 고용유지지원금으로 기본급만 받는 유급휴직을 돌아가면서 하고 있다. 9월부터는 무급휴직으로 바뀐다고 해 다들 불안감이 크다. 1년 근무한 뒤 정규직으로 채용되는 100여 명의 인턴사원은 정규직 전환을 포기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여행사에서 항공권 발권 업무를 맡고 있는 유모(30·여) 씨도 휴직한 상태다. 3월 20명의 부서원 가운데 16명이 회사로부터 ‘휴직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월급은 70%만 나온다. 휴직 기간은 한 달씩 연장돼 6월 중순까지로 늘어났다. 유씨는 “회사는 6월부터 정상근무를 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리라 본다. 무급휴직으로 전환돼도, 해고돼도, 회사가 망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서울 집세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고향 집으로 내려간 동료도 적잖다”고 전했다.

공항 면세점 매장관리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에 1월 입사한 박모(25·여) 씨는 4월부터 주3일만 출근하고 있다. 세후 185만 원이던 월급은 130만 원으로 삭감됐다. 박씨는 “풀타임으로 일하는 최저임금 근로자보다 못한 급여”라며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회사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 9월부터는 무급휴직을 실시할 예정이니 감당하기 어려운 직원은 그만두라’고 통보한 상태. 그는 “차라리 퇴사하고 실업급여를 받고 싶지만, 고용보험에 가입한 지 180일이 되지 않아 수급 자격이 안 된다.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지만 당최 사람을 뽑는 데가 없다”고 토로했다.

인천국제공항 면세구역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김모(34·여) 씨도 단축근무에 들어가 가계를 꾸려가기가 버거워졌다. 매달 24일을 일하고 200만 원가량을 받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13일만 일하게 돼 월급이 100만 원으로 반 토막 났기 때문이다. 김씨는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피해도 막대하다”고 전했다. 면세구역 내 입주사가 발주한 물건을 새벽에 배송하는 ‘헬퍼’가 5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취업자 감소는 코로나19 사태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숙박 및 음식점업(-9.2%???·??21만2000명 감소), 교육 서비스업(-6.9%?·??13만 명 감소), 도매 및 소매업(-3.4%?·??12만3000명)에서 두드러졌다. 하지만 ‘예비’ 실업자는 업종을 가리지 않고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특히 가장 많은 일자리를 보유한 제조업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동차 부품회사, “6월부터는 못 버틴다”

매출 감소로 고용 조정이 불가피한 사업주가 휴업/휴직 등을 통해 고용 유지를 할 경우 정부는 인건비를 보조할 목적으로 고용유지지원금을 제공한다. 3월부터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하는 기업이 크게 증가한 가운데 제조업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3월 10일 누적 신청 기업(1만218개)의 10%(1054개)에 그쳤던 제조업 비중이 두 달 새(5월 8일 기준) 23%(6만3296개 중 1만4448개)로 늘었다(그래프2 참조).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수출 타격으로 공장 가동을 줄여 직원 일부를 휴직하게 하거나 근로시간을 줄이는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전북 군산에서 자동차 프레임과 시트를 생산해 한국지엠과 타타대우상용차에 납품하는 한 자동차 부품업체의 사장 신모 씨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라며 “공장 가동률이 코로나19 사태로 40%가량 떨어졌다”고 밝혔다. 4월까지는 이미 주문받은 물량을 소화하느라 직원 70여 명이 정상 근무하며 공장을 가동했지만, 완성차 수출 급감으로 신규 주문이 들어오지 않아 5월부터 ‘노는 날’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신씨는 “이대로라면 5월 마지막 주부터는 생산 물량이 없을 것 같다”며 “6월부터 휴직을 실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에 있는 차량용 안전벨트 제조업체 관계자도 “중국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진 설 연휴부터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했다”며 “공장 직원이 1000명인데, 기존 주5일 근무에서 3일 또는 4일 근무체제로 바꿨다. 급여가 절반 가까이 줄었으니 직원들이 생활하기 어려워진 것은 뻔한 일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미국, 유럽 등에 식료품을 수출하는 A사 관계자는 “우리 업계는 3~10월이 성수기인데, 3월 이후 해외 바이어와 연락조차 닿기 어려워 주문이 크게 줄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하반기에도 이어진다면 원료 수입이 힘들어 제품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때는 우리도 휴업을 검토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실업의 두려움은 고소득자와 저소득자도 가리지 않는다. 서울 마포구의 한 약국에서 ‘페이(pay)약사’로 일하는 오모(30) 씨는 3월 중순부터 주3일만 출근한다. 이비인후과를 찾은 어린이 환자 처방이 확 줄어 약국 매출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480만 원이던 급여는 300만 원으로 내려앉았다. 오씨는 “우리 약국의 페이약사가 나를 포함해 3명인데, 약국장이 아무도 내보내지 않는 대신 번갈아 근무하자고 했다”며 “상황이 계속 안 좋으면 누군가를 내보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용 불안을 느낀다”고 말했다.

경기 광명시에서 학습지 교사 일을 하는 최모(43·여) 씨는 “3월부터 회원 탈퇴를 하는 학생이 크게 늘어 관리하는 과목 수가 150개에서 120개로 줄었다. 월수입은 200만 원에서 140만 원으로 감소했다”며 “학습지 교사 중에는 혼자 자녀를 키우는 한부모 가정의 엄마가 많아 특히 생계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전했다.

학습지 교사의 평균 연령은 50대 전후. 하지만 최근 들어 20, 30대 ‘신입’이 크게 늘었다. 최씨는 “청년 취업이 워낙 어렵다 보니 학습지 교사라도 하겠다고 젊은 여성들이 들어온다”며 “가뜩이나 적은 수입이 더 줄까 봐 이들을 반길 수도 없다”고 말했다.

줄어든 소득을 보전하고자 아르바이트에 나서지만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휴직자나 근로시간이 단축된 이들을 괴롭힌다. 시급 3만 원을 받고 토요일 근무 아르바이트를 하는 약사 오씨는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며 “아르바이트는 물론, 정식 채용되는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약사가 많다”고 전했다. 항공기 정비사 강씨는 “인천 서구 청라동 인근에 쿠팡물류센터가 있는데, 휴직 중인 직원들이 사원, 과장 등 직급을 가리지 않고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러 쿠팡물류센터로 몰려가 거기서 서로 마주친다고 한다. 공항 계류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물류센터에서도 다시 만나고 있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동료들이 프랜차이즈 빵집의 새벽배달일, 주유소 세차장 아르바이트에도 나서고 있다”고도 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휴일에는 오토바이로 음식배달을 하는 정모(45) 씨는 “요즘 도보나 자전거로 음식배달을 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코로나19 사태로 휴직을 ‘당해’ 조금이라도 벌어보고자 나왔다는 이들이 적잖다”고 전했다. 그는 “아무리 음식배달 주문량이 늘었다 해도 이들 때문에 배달 콜 잡기 경쟁이 치열해졌다. 최근에는 콜을 한 건도 못 잡고 허탕 친 채 집에 간 적도 있다”고 덧붙였다.

방역과 경제활동 조화가 관건

정부는 고용 취약계층 지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영세 자영업자, 특수형태근로 종사자, 프리랜서 등에게 매달 50만 원씩 3개월간 지급하려던 것을 첫 달 100만 원, 다음 달 50만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일자리 쇼크에 시급하게 대응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중위소득 150% 이하 중소기업 무급휴직자에게도 같은 지원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지원금은 생계에 일시적으로만 도움이 될 뿐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에서 코로나19 현장지원단을 이끌고 있는 유정엽 정책실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거의 모든 업종이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특히 제조업계 피해는 시작 단계를 지나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며 “정부가 좀 더 장기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허재준 한국노동연구원 고용정책연구본부장은 “코로나19 사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어디까지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정부 지원에만 기대서는 일자리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결국 방역과 경제활동이 조화를 이루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이현준 기자 mrfair30@donga.com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이 기사는 주간동아 2020년 1239 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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