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는 1017조-韓은 1173억… 성장 더딘 로보 어드바이저,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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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김모 씨(53)는 3월 ‘로보 어드바이저’의 투자 자문을 이용해 5000만 원을 펀드 등에 나눠 투자했다. 조금씩 수익이 불어나자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포트폴리오를 늘려갔다. 10월 말까지 김 씨는 약 5%의 수익을 거뒀다. 김 씨는 “혼자 투자할 때는 매일같이 주가에 신경을 써야 했는데 이젠 마음 놓고 맡겨놓을 수 있어서 편하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로보 어드바이저 서비스가 상용화되면서 로봇이 운용하는 상품에 투자하려는 소액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빅데이터와 자체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사람 대신 로봇이 자산 배분을 해주는 서비스다. 기존에 고액 자산가에게 한정됐던 자산관리 서비스의 문턱을 소액 투자자에게도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당초 기대보다 성장세는 더딘 편이다. 31일 더불어민주당 민병두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8월 기준으로 8개 자산운용사가 운용 중인 24개 공모펀드 가입자는 3만2896명, 가입금액은 약 1173억 원으로 나타났다. 이 중 12개는 수익률이 마이너스였다. 로봇이 자산관리를 도맡는 일임형 서비스 이용자는 260명에 그쳤다.

고수익을 기대하고 로봇에게 돈을 맡겼다가 실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 로보 어드바이저 투자자는 “친구들이 해외 펀드로 10% 이상 수익을 냈다는 얘길 들으면 2∼3% 수준인 현재 수익률이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로보 어드바이저를 미래를 예측하는 ‘알파고’ 수준으로 오해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로보 어드바이저는 손실 위험을 줄여 안전한 자산 관리를 도와주는 수단으로 여겨야 한다는 의미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운용사들이 로보 어드바이저로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것처럼 홍보했지만, 정작 고객의 투자 성향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역량은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운용사들은 로봇의 투자 기법인 알고리즘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완규 미래에셋자산운용 상무는 “과거의 빅데이터에 의존하는 로보 어드바이저는 북핵 리스크처럼 투자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갑작스러운 이벤트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소셜미디어나 뉴스 데이터의 활용을 늘리는 등 인공지능 딥러닝 기술이 발전하면 수익률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 선진국에선 로보 어드바이저를 활용한 투자가 보편화돼 있다. 글로벌 회계·자문기업 KPMG에 따르면 미국에서 로보 어드바이저가 운용하는 자산은 내년 9000억 달러(약 1017조 원), 2020년엔 2조20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최근엔 전문 재무설계사의 조언까지 받을 수 있는 ‘하이브리드’ 서비스로 진화하는 추세다.

업계에서는 국내 로보 어드바이저 시장 활성화를 위해선 규제 완화를 통해 비대면 투자일임 계약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직 성장 단계인 만큼 투자자 보호가 우선이라는 반론도 적지 않다. 이 연구위원은 “해외에선 로보 어드바이저의 알고리즘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추세”라며 “고객 투자 성향에 따라 적절하게 투자했는지, 어떤 논리에 따라 자산을 분산했는지 의사결정 과정을 평가할 수 있도록 하고, 금융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장치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로보 어드바이저#ai#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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