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공산당 당대회 96년 역사
1956년 8차부터 베이징 개최
1977년부터 5년마다 열려… 8875만 당원 대표 2287명 참가
18일 중국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개막하는 중국 공산당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는 당원 약 8875만 명을 대표한 지역 및 단체 대표 2287명이 참가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2기의 막을 열 예정이다. 중국 공산당은 현재 당원 수 기준으로 세계 최대 정당이다.
이번 당 대회에서는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에 시 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총리 이외에 새로 진입할 5명의 명단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당의 주요 정책 노선이 채택되는 등 당 대회는 중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이벤트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차 당 대회는 1921년 7월 23일 상하이(上海)의 프랑스 조계지 내 건물에서 당원 57명을 대표한 13명이 참가한 가운데 비밀리에 열렸다. 중간에 회의 장소가 발각돼 일부가 체포된 뒤 나머지는 도주해 저장(浙江)성 자싱(嘉興)의 난후(南湖) 호수 중간에 배를 띄워 놓고 회의를 마쳤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은 후난(湖南)성 창사(長沙)소조 대표로 참가했다.
이후 당 대회는 군벌 정부의 탄압과 장제스(蔣介石) 국민당 정부와의 갈등 등으로 상하이(1, 2, 4차 개최) 이외에 광저우(廣州·3차), 우한(武漢·5차) 등에서도 개최됐다. 1928년 6월 6차 당 대회는 국민당 정부의 단속 등을 피해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렸다. 항일 전쟁과 국민당 군대와의 전투 등으로 7차 당 대회는 6차 이후 17년 만인 1945년 4월에야 개최됐다. 장소도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의 산골인 양자링(楊家(령,영))이었다.
1949년 10월 1일 신(新)중국 성립 이전에는 한 차례도 베이징에서 열지 못했으나 1956년 9월 8차 대회 이후부터는 줄곧 베이징에서 열렸다. 문화대혁명(1966∼1976년)의 혼란 때문에 불규칙하게 열리던 당 대회는 1977년 8월 제11차 대회 이후부터 5년마다 규칙적으로 열리고 있다.
마오 전 주석은 1935년 1월 15∼17일 구이저우(貴州)성 쭌이(遵義)에서 열린 정치국 확대회의(일명 쭌이 회의)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랐다. 이를 계기로 중국 공산당의 주도권을 장악해 나갔다. 마오 전 주석이 1949년 10월 집권 후 1976년 사망하기 전까지 당 주석을 맡고 있을 때 정치국 상무위원은 최고 의사결정기능을 사실상 상실하고 마오의 1인 지배체제하에 있었다. 19차 당 대회에서 시 주석이 당 주석 직함을 받을 경우 마오 시대로 회귀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