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명인열전]“유배는 감금 아닌 힐링… 이왈종-이효리처럼 ‘셀프 유배인’ 늘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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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양진건 제주대 교수

제주 유배문화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양진건 제주대 교수가 조선시대 제주에 지대한 영향을 준 다섯 명을 모신 제단인 오현단에서 유배문화를 설명하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 유배문화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양진건 제주대 교수가 조선시대 제주에 지대한 영향을 준 다섯 명을 모신 제단인 오현단에서 유배문화를 설명하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유배인은 불행했지만 제주는 행복했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양진건 제주대 교육학과 교수(60)는 중국 송나라의 대표 시인인 소동파(蘇東坡)의 하이난(海南)섬 유배생활을 놓고 ‘동파는 불행했지만 하이난은 행복했다’는 말을 인용해 유배문화가 제주에 끼친 영향을 표현했다. 제주에 갇힌 유배인들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지만 제주사람들은 유배인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문물과 학문을 익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제주 유배문화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양 교수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유배와 스토리텔링을 접목한 인물이다. 20일 오후 제주시 ‘오현단’에서 양 교수를 만났다. 오현단은 조선시대 제주의 문화와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다섯 명을 모신 제단이다. 다섯 명은 제주에 파견된 관리였던 청음 김상헌, 규암 송인수와 유배를 온 충암 김정, 동계 정온, 우암 송시열 등이다.

○ 유배의 섬 제주도


한반도의 많은 섬 가운데 제주도는 멀고 크고 궁벽했기 때문에 정치적 추방이나 격리를 위한 최적의 유배지였다. 조선왕조 500년 동안 300∼500명(추정)을 감금하고 유폐시켰던 섬이다. 이런 유배인과 제주사람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관계를 맺으면서 형성된 독특한 문화양식이 제주 유배문화라고 할 수 있다. 유배는 전 세계적으로 역사가 꽤 오래됐다. 중국에서는 기원전(BC) 1600년부터 BC 1100년까지 번성했던 은나라에서 유배형 기록이 있다.

서양에서는 BC 487년경 고대 그리스에서 위험인물을 비밀투표로 추방했던 도편추방제가 시행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는 삼국사기에 유배 기록이 처음 나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유배가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15, 16세기에는 벼슬아치 네 명 가운데 한 명꼴로 유배를 당했는데 이름난 벼슬아치치고 유배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당쟁이 격화되면서 유배 장소는 한양과 더 멀어졌고 돌아오기 힘든 곳으로 정적을 내몰았습니다. 결국에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절해고도인 제주도로 유배를 보내는 일이 일상이 됐습니다.”

제주에 유배된 대표적인 인물에는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제주에서 생을 마감한 광해군, 성호 이익, 면암 최익현, 승려 보우, 천주교도 정난주 등 당대의 이름난 사상가나 종교인 등이 있다. 이들 가운데 추사는 제주 유배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제주 유배 8년 3개월 동안 모진 고난을 겪었지만 그 속에서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그렸고 추사체를 완성했다. 그가 표현했듯이 ‘벼루 10개의 밑창을 냈다’고 할 정도로 서예와 학문에 매달리게 한 것이 유배였다.

유배인들에게 주목할 점은 교육활동이다. 추사를 비롯해 여러 유배인들은 제주사람들에게 ‘책을 읽히고 가르치는’ 활동을 했다. 갇혀 지내던 제주사람들이 세상에 눈을 뜨는 통로였던 셈이다.

“유배문화의 가장 큰 가치는 문학적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주 유배인들이 남긴 한시나 가사, 서간, 기행문 등의 양과 질은 독자적인 ‘제주 유배문학’으로 표현해도 모자람이 없습니다.”

양 교수는 “추사체나 전각, 세한도 등 제주 유배문화의 예술적 가치를 간과해서는 안 되고 스토리텔링, 문화콘텐츠 등 유배문화를 활용한 문화산업적 활용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 유배문화를 관광콘텐츠로

해외에서는 유배문화나 유적을 활용한 관광산업이 한창이다. 세인트헬레나섬은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황제가 6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 곳이다. 마니아들은 관련 다큐멘터리와 드라마를 만들면서 세인트헬레나 커피를 세계 3대 커피의 하나로 만들었다. 파트모스섬은 예수의 제자인 성 요한이 유배돼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을 집필한 곳으로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양 교수는 2009년 제주대 사회교육대학원에 스토리텔링학과를 개설하고 스토리텔링연구개발센터도 만들었다. 이를 통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유배문화와 관광콘텐츠 접목을 시도했다. 도보 여행길인 제주 유배길을 조성했고 유배영화제, 유배음악회, 유배꽃차 전시회 등을 개최했다. ‘광해, 빛의 바다로 가다’는 타이틀의 음악 창작극을 발표하고 추사 유배지 생생체험 프로그램, 추사밥상 등을 선보였다. 양 교수는 ‘제주유배문화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 사업’으로 2012년 대통령상을, 2012년부터 2년 연속 제주대 최우수 교수상을 받았다. 2014년에는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등 성과를 인정받았다.

양 교수가 유배문화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제주대 국어교육학 교수를 지낸 부친 영향이 컸다.

“아버지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제주와 관련된 한시 등의 작품을 수집하고 제주에 유배를 온 사대부의 기록을 모으셨어요. 돌아가시고 난 뒤 자료를 기증하기 위해 정리하다가 ‘내가 직접 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수집 자료를 토대로 한 ‘제주 유배인의 독서활동 연구’로 제1회 한국교육사학회 학술상을 받았다. 유배문화 연구에 깊이를 더해 가던 2001년 6월 양 교수는 교내 주차장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동료 교수의 운전 미숙으로 3차례나 들이받혔다. 얼굴을 제외하고 온몸이 부서질 정도의 큰 부상을 입었다. 마치 물속으로 슬며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생과 사의 갈림길이었다. 여러 차례 수술과 재활 끝에 걸을 수 있을 정도까지 회복됐지만 한쪽 다리는 지금도 불편하다.

몸이 온전하지 못하자 외부 출입을 꺼리며 스스로 ‘유배’를 시켰다. 독서만이 유일한 낙이었다. 마치 제주 유배인이 그랬던 것처럼 책에 빠져들었고 그 속에서 탈출구를 찾았다. 당시 고충석 제주대 총장이 입학처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양 교수의 평소 지론이었던 제주대 사범대와 제주교육대 통합의 책임이 주어진 것도 세상에 나올 수 있는 요인이었다.

“강제적 유배는 조선시대에 끝났지만 화가 이왈종, 가수 장필순, 이효리처럼 스스로 제주에 들어오는 ‘자발적 유배인’, ‘셀프 유배인’이 늘고 있습니다. 문화이주, 귀농, 귀촌 등 다양한 문화를 ‘새로운 제주 유배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배가 과거처럼 폐쇄, 감금, 고독의 의미가 아니라 힐링, 휴식, 창조라는 새로운 생명적 화두를 얻게 된 것입니다. 제주도민과 이주민의 상생협력에 대한 지혜도 유배문화 관점에서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수년 전 제주시 애월읍 어음리에 아담한 작업실을 마련한 양 교수는 주말이면 이곳에서 독서와 집필을 하고 있다. 어음리를 유배인의 정신과 전통을 이을 수 있는 ‘책 마을’로 조성하고 저자 특강이나 책 플리마켓, 책 영화제, 마을창고를 활용한 헌책방 등 프로그램을 선보일 계획이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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