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6]눈 기다리는 악어처럼 살고… 채식주의자 악어를 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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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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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희곡

김경주 씨
김경주 씨
지난 10년 동안 내가 바꾼 것은 에쎄 순, 말버러 레드, 러키스트라이크, 살렘, 더 원이다.

바꾸지 않은 것이 있다면 롱코트, 엉덩이 근육, 리버풀, 아스널, 피터 아츠 등이 있다. 내겐 숲에 숨겨 놓은 우주복도 없다. 연방에서 내 뇌파를 조사하러 온 적도 없다. 감정노동이나 급강하 훈련도 받아 보았지만 죽어도 하고 싶지 않은 것 딱 한 가지가 있다면 뒤로 하는 거다. 아플 것 같다.

원고 독촉을 받을 때 내 일 아니려니 생각하고 잘 잔다는 작가들의 말에는 매력이 있다. 나는 골치 아픈 일은 일단 자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번 자면 내가 쓰레기라고 생각될 때까지 잔다. 나 역시 당신들처럼 끼어들기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

지금 나는 식은 호떡 속의 차가운 꿀처럼 달콤하다. 호떡 속의 꿀은 꿀이 호떡 속에 끼어들기를 한 것인가? 꿀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세상은 호떡이 된 것인가? 이쪽에서 볼 때 독도는 소유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다. 시와 극이 내게 그런 것 같다. 돌아보면 물장구치는 것도 내겐 일이었다. 지금껏 그랬듯이 눈을 기다리는 악어처럼 살 것이고 채식주의자가 된 악어를 쓸 것이다.

내 헬스장 로커 번호는 321번이고 비밀번호는 1358이다.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 세상도 잊지 않을 테니까. 우주복은 언제나 집에 있다. 이래저래 고마운 사람들이 좀 있다. 심사위원 선생님들, 소규모 낭독 모임 펭귄라임클럽, STUDIO PENGUIN RHYME. 티양, 소울, 류이, 리안, 한민국, 이현우, 염한규, jake levein, YIRI CAFE, 하림. 양양. 무중력타이핑 멤버들. 그리고 몇 개의 내 아름다운 탁아소들.

△1976년 광주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극창작과(대본 및 작사 전공) 전문사

김철리 씨(왼쪽)와 배삼식 씨.
김철리 씨(왼쪽)와 배삼식 씨.
▼부서진 삶 복원 스토리 탄탄… 극 구조도 명료▼

[심사평]희곡

올해도 응모작을 통해 다양한 목소리를 만날 수 있었다. 아쉽게도 그 가운데 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며 독창이란 기실 모방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가 제 눈과 손으로 직접 톺아보고 더듬으며 대상과 만나는 순간, 그 순간에 움직인 마음의 흔적은 유일하다. 형식적 기교나 잔재주가 아닌 진정한 뜻의 독창성은 이러한 흔적의 유무에 있다. 실제의 삶에 다가서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관념의 놀이에만 빠지거나 희곡을 희곡으로만 배워서 쓰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네 작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인간의 기분’과 ‘창’은 우화의 형식을 지닌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하고자 하는 말이 분명해서 좋은데,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분명해서 도식과 상투에 머문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 또한 우화적 세계로서 갖추어야 할 논리와 개연성을 아직 단단히 세우지 못했다. ‘마파람에 돌아오다’는 글쓰기가 탄탄하며 인물들의 성격과 상태를 잘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렇다 할 극적 사건이 없어 이야기가 시작에서 멈춘 듯해 아쉽다.

‘태엽’은 시계수리공의 일과 삶을 통해 부서진 삶을 복원하고자 하는 갈망을 사실적이면서도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야기가 비교적 탄탄하며 극의 구조 또한 명료하면서도 단조롭지 않다. 인물들의 성격이 다소 정적이고 평면적인 점, 지나친 감상이 리얼리티를 떨어뜨리는 점 등은 아쉬웠으나 진중하게 대상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와 시선이 앞날을 기대하게 한다는 데에 심사위원들은 의견을 모았다.

김철리 연출가·배삼식 극작가
#동아일보 신춘문예#희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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