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속 급한 돈 쓸일 많은데… 정치싸움에 서민 등 터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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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 울리는 국회]일몰 앞둔 대부업法… 고금리 규제근거 사라질 위기

“칼자루가 대부업체로 넘어가는 셈입니다. 고금리 대출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밖에는 정부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대부업 최고 금리를 제한하는 내용의 대부업법이 올해 말로 실효(失效)될 위기에 처하자 정부의 한 당국자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정부는 29일 예정에 없던 자료를 내고 대부업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지연될 경우를 대비해 서민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대응 방안을 수립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 내용은 고금리 대출을 하는 업체에 대해 금융당국이 행정지도를 한다는 것뿐이고, 규제당국이 펼 수 있는 강제력 있는 조치는 포함되지 못했다. 법안 통과의 지체로 규제의 근거가 사라지면서 정부가 대부업체에 고금리 대출을 하지 말아 달라고 ‘읍소’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 정부의 ‘칼자루’가 대부업체로 이동

문제는 이런 와중에 경기 침체로 서민들의 대부업체 이용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대부업 금리 규제가 없어지면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의 피해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29일 정부가 발표한 ‘2015년도 상반기 대부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총 대부잔액은 12조3401억 원으로 작년 말보다 1조1809억 원(10.6%) 급증했다. 2010년 말 대비 62%나 부풀어 오른 것이다. 대부업체 이용자 수 역시 6월 말 현재 261만4000명으로 6개월 동안 12만1000명이나 늘었다. 이용자들은 대부업체에 손을 벌려 빌린 돈을 생활비(63.3%), 사업자금(14.2%) 등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대부업체들은 고객들에 대해 신용등급과 관계없이 무차별적인 ‘고금리 장사’에 나서고 있다. 대부업체들의 평균 대출금리는 2015년 6월 말 기준 28.2%에 달한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대부업법 효력이 사라지면 공급자인 대부업체 측이 주도권을 쥐는 셈”이라며 “일시적으로 충격과 혼란은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규제 권한이 사라지는 금융당국은 일단 차선책으로 행정지도에 나서 고금리 대출을 최대한 억제할 계획이다. 또 내년 1월 초에는 금리 수준이 높은 대부업체들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지기 때문에 아무리 고리(高利)의 대출을 한다고 해도 직접 제재할 방법은 없다. 금융위 관계자는 “적발하더라도 시정을 요청하는 것 외에 제재할 수단이 없어진 게 사실”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 민생·경제법안 줄줄이 대기

이 밖에도 국회의 경제 법안 처리 지연으로 우려되는 피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신용회복위원회, 미소금융중앙재단, 신용보증재단의 햇살론 등 서민금융 기능을 통합하는 내용의 서민금융진흥원 설립 법안도 국회 정무위원회에 발이 묶인 상태다.

인터넷전문은행의 추가 인가를 위해서는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은행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이번 국회에서는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은행법 개정이 미뤄지면 중금리 대출 상품 등 서민금융 혜택을 줄 수 있는 인터넷은행의 본격적인 영업 경쟁이 연기될 수 있다.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관측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도 국회에서 먼지만 쌓여가고 있다.

정부는 2월 임시국회에서 최대한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법안 처리 속도를 높일 수 있을지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국회 관계자는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법안일수록 야당이 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며 “2월 임시국회에서도 빠른 법안 처리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회가 경제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선거에만 몰두하면서 꼭 통과시켜야 할 법안들마저 내팽개치고 있다”며 “경제에 꼭 필요한 것을 논의조차 하지 않은 채 정치논리에 함몰돼 있다”고 비판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해마다 연말이면 국회 법안 통과가 진통을 겪긴 했지만 올해는 선거구 획정 문제 등과 맞물려 유난히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며 “서로 ‘협상카드’를 잃어버릴까 봐 정작 개별 법안에 대해 논의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윤정 yunjung@donga.com·홍수영·김준일 기자
#국회#대부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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