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정열 발산의 기회를 주는 직장… 오직 이 길밖에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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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단지 그들에게 팀장으로서 그들의 정열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만 주었고 모든 일은 그들이 다 한 것입니다.” ―오직 이 길밖에 없다(구자경·행림출판·1992년) 》

LG전자가 세탁기 산업에서 세계 1등으로 올라선 데에는 1990년 ‘인공지능 세탁기’를 빼놓을 수 없다. 세계 최초로 ‘빨랫감의 성질이나 양에 따라 스스로 작동하는’ 방식을 구현했다.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적절한 작동방식을 찾는 최첨단 세탁기 제품의 시초인 셈이다.

이 세탁기의 기획은 1989년 LG전자(당시 금성사)가 국내 시장 1위를 빼앗긴 위기 상황에서 시작됐다. 당시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을 이끌었던 구자경 회장(현 명예회장)은 ‘기존의 모든 방식을 부정하고 새롭게 출발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선두 자리 회복을 위한 ‘F프로젝트팀’이라는 신제품 개발팀을 새로 구성했다.

이때 팀장을 맡은 이가 현재 LG전자의 H&A사업본부장(사장)인 조성진 기정(技正)이다. 기정은 당시 그가 맡던 직책을 말한다. 구 회장은 과장급인 조 기정에게 인력과 비용 운용에 대한 전권을 맡기고, 설계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에서 선발된 의욕적인 젊은 사원으로 팀을 꾸려줬다.

인상 깊은 대목은 프로젝트 성공 후 조 기정의 보고 내용이다.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은 무질서였습니다. 어떤 날은 사무실 구석에서 코를 골며 잠만 자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떤 날은 견본을 만든다며 며칠씩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고민과 정열의 흔적이 가득 묻어 있었고, 기발하고도 참신한 아이디어가 참 많았습니다.”

최근 한국 경제의 주축인 대기업들이 실적 부진과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쓰는 방법 중 하나가 기존의 체계에서 벗어난 조직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내기 위한 ‘사내 벤처’ 같은 것들이다. LG전자 세탁기 사업을 되살린 F프로젝트는 여기 꼭 들어맞는 사례다. 1970년부터 1995년 구본무 현 회장에게 물려주기까지 25년간 LG그룹을 이끈 구 명예회장의 자서전 ‘오직 이 길밖에 없다’에는 이외에도 현재 한국 기업들이 봉착한 위기 상황이 그대로 투영되는 사례들과 해답들이 가득하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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