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허기 채워주는 라면의 쓸쓸함… ‘한 젓가락의 위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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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세상은 짜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浮薄)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라면을 끓이며(김훈·문학동네·2015년) 》

나는 라면을 잘 먹지 않는다. 일부러 피한다고 얘기하는 게 맞겠다. 늦은 밤 야근을 하고 집에 돌아오거나 술을 한잔하고 괜히 허기가 질 때면 뜨끈한 라면 국물에 미끈거리는 밀가루 가락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하지만 호들갑스럽게 라면을 끓이고 한 젓가락 넘기는 순간, 쓸쓸함이 몰려온다. 계란이며 떡, 만두 등 호사로운 건더기를 추가로 넣고 끓여도 부박하기는 마찬가지다.

라면은 한국인에게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한국인은 1년에 라면 36억 개를 먹는다고 한다. 라면은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를 밑돌던 배고픈 시절에 탄생했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라면은 낱개로 포장돼 한 개, 두 개, 낱개로 거래된다. 어머니가 하루 종일 냄비 앞을 오가며 푹 고아낸 곰탕이나 오래 묵힌 장아찌, 장에 깃든 시간의 작용과 기다림, 환상이 라면에는 없다. 이 늦은 시간에도 수없이 많은 누군가가 라면을 삼키고 있을 거란 위안만이 쓸쓸하게 존재한다.

오랜 시간 라면을 끓이며 라면을 생각해온 작가는 책에서 남다른 조리법을 소개한다. 포장지에 적힌 조리법보다 물을 한 컵 정도 넉넉하게 냄비에 붓고, 분말수프는 3분의 2만 넣는다. 검지만 한 대파 10뿌리 정도를 하얀 밑동만 잘라 세로로 쪼개놓고 라면이 2분쯤 끓었을 때 넣는다. 그 다음에는 미리 깨서 흰자와 노른자를 섞어놓은 달걀을 넣고 젓가락으로 젓는다. 라면을 끓이는 시간은 센 불로 3분을 넘기지 않는다.

오늘은 작가의 조리법대로 라면을 끓여 ‘다들 이렇게 먹고 사는구나’ 하는 쓸쓸한 삶의 위안을 한 젓가락 들이켜 볼 셈이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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