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 떠밀려 김영란法 뚝딱… 서비스法은 4년째 발목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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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 성적표]졸속-뒷북 입법 되풀이

‘세월호 특별법,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 설치법, 송파 세 모녀법, 마우나리조트법….’

19대 국회에서도 사건이 터진 뒤에야 대책을 내놓는 ‘뒷북 입법’과 ‘졸속 입법’ 등 고질적인 병폐가 고스란히 답습됐다. 오랜 준비 끝에 법안을 내놓기보다는 사후적 수습에 급급했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부실 입법이 반복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19대 국회의 임기는 7개월이 남은 상태. 의원들은 산적한 법안을 쌓아둔 채 내년 총선 준비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 표(票)퓰리즘 입법 악습 되풀이

2012년 나주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고종석 사건’이 터지자 여야는 급하게 아동·여성 성폭력특별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관련법을 개정했다.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를 확대하고 성폭력 범죄에서 친고죄 조항을 삭제한 것이다. 앞서 2009년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영이 양을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 등 성폭행 사건이 끊이지 않았지만 예방은 못한 채 처벌만 강화했다.

올 1월 인천 어린이집 폭행사건이 터지자 여야는 2월 국회에서 어린이집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표결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어린이집연합회 등 유관단체의 표를 의식한 일부 의원들이 기권하거나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다. 이 법은 두 달 뒤인 4월 국회 본회의에서 겨우 통과됐다.

졸속 입법도 도마에 올랐다. 대표적 법안은 올해 3월 국회에서 통과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공무원, 공직 유관단체와 공기업 임직원, 사립학교·학교법인 이사장과 교직원, 언론사 임직원 및 그 배우자의 금품 수수와 부정 청탁을 엄격히 금지하는 내용을 법제화했다. 내년 9월부터 시행되도록 유예 기간을 뒀다. 그러나 시행 전부터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또 화환 등 화훼류 5만 원 이상, 과일·한우세트 10만 원 이상 등을 받을 때 처벌하게 한 시행령을 두고도 농수축산물, 화훼업계 등의 항의가 잇따라 시행령 개정이 지연되는 혼선을 빚고 있다.

일명 ‘전두환 추징법’도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법은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은닉 재산을 몰수해야 한다는 거센 여론에 따라 2013년 6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올해 1월 서울고법은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 적법 절차의 원칙에 반하고 국민의 재산권과 법관의 양형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 먼지 뒤집어쓴 ‘서비스산업법’

대표적인 경제활성화법 중 하나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4년 가까이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2011년 12월 18대 국회 때 제출됐지만 논의 없이 폐지됐고 19대 국회에서도 여전히 계류 중이어서 먼지만 뒤집어쓴 상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의료 민영화로 가는 수순이니 보건의료 부분은 제외하고 논의하자”고 수정 제안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관광진흥법도 ‘학교 앞 관광호텔은 안 된다’는 야당의 반대에 부닥쳐 진전이 없다.

당장 정부와 여당은 박근혜 정부의 4대 개혁(노동 공공 교육 금융) 중 노동개혁에 화력을 집중하며 5대 법안을 내놨지만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최근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불거지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분위기다.

지난해 11월 새누리당은 5년 이상 연속으로 당기순손실이 발생한 부실 공공기관을 퇴출시킬 수 있는 내용의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내놨다. 하지만 이 역시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발에 가로막혔다.

○ ‘생색내기용’ 경제, 안전 관련법 많아


바른사회시민회의의 ‘19대 국회 분야별 가결 법안’ 자료에 따르면 19대 국회는 △경제 99개 △안전 35개 △복지 15개 △농어촌 등 각종 지원 13개 등 법안을 통과시켰다. 경기 침체로 인한 경제활성화법안과 2012년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가 주요 화두로 떠올라 관련 법안이 쏟아진 것이다.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국민 안전에 대한 관심이 급증해 각종 안전 관련법이 가결됐다. 우여곡절 끝에 올해 5월 국회는 박근혜 정부가 주도한 공무원연금법을 처리했지만 미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이 모법(母法)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주장에서 시작된 국회법 개정안은 여권의 내홍을 촉발해 국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일명 ‘택시법’을 놓고 정치권이 포퓰리즘적 입법을 추진해 혼선만 부추겼다. 여야가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대중교통 수단에 택시를 포함시키는 공약을 내놓은 탓이다. 이 때문에 버스업계와 택시업계가 번갈아 ‘운행 중단’을 선언하면서 시민들은 혼란을 겪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19대 국회의 의정활동은 역대 최악”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특히 비례대표 의원의 경우 여당은 ‘대통령 말 잘 듣는 의원’, 야당은 ‘투쟁만 하는 의원’을 뽑아 놓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진 것”이라며 “공천을 제대로 하고 인센티브를 주는 등 실질적인 의정활동 경쟁이 이뤄지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국회#19대국회#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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