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장윤정]진화하는 P2P시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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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경제부 기자
장윤정 경제부 기자
금융권에 출입하면서 금융회사 임직원을 많이 만나지만 그날의 만남은 신선했다. 9년간 다니던 우리은행을 뛰쳐나와 같은 우리은행 출신 이효진 대표가 창업한 P2P(Peer-to-Peer) 기업 ‘8퍼센트’에 합류한 창립멤버 김세영 팀장의 이야기다.

높은 연봉의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신생 핀테크 업체를 선택한 그녀에게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녀는 은행이 좋은 직장임에는 분명하지만 뭔가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선보이고 싶은 ‘갈증’이 적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대형 시중은행으로서는 리스크 관리가 가장 중요했고 대출해줄 수 있는 개인, 기업이 제한돼 있고 제공하는 금리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김 팀장은 “피곤하지만 은행에 있을 때보다 재밌다”고 말했다.

이 대표, 김 팀장을 비롯해 삼성카드에서 일하던 사람, 포스텍 수학과 졸업생 등 경력이 다양한 15명이 그렇게 뭉쳐 2014년 12월에 대출서비스를 시작했다.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든 개인들에게는 연 8%대의 중금리 대출을, 투자처를 찾지 못해 고민하는 투자자들에게는 연 8%의 수익을 안겨 주겠다는 목표를 담아 회사명을 ‘8퍼센트’로 지었다.

서민대출에 집중하던 여타 P2P업체들과 달리 이들은 법인대출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뚫었다. 수제맥주숍 ‘더부스’에 6월 2억5000만 원을 대출하는 데 성공하더니 자동차 공유업체 ‘쏘카’에는 13억 원의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다. 요즘은 투자자가 돈을 예치해두면 일정 신용등급 이상의 안정적인 투자처에 자동으로 분산 투자가 이뤄지는 시스템 등을 계획하고 있다.

며칠 야근을 했다는데도 목소리에 생기가 가득하던 김 팀장을 만난 후부터 P2P 금융기업들에 눈길이 많이 갔다. 이 업계에는 요새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빅데이터 분석과 심리학 이론을 결합한 심리측정 기반 신용평가 시스템을 개발한 ‘어니스트펀드’, 원금 보장형 상품을 도입해 화제를 모은 ‘빌리’ 등 참신한 P2P기업이 여럿 등장하고 있다. 1세대 P2P업체들이 대부업체보다 낮은 금리로 서민들에게 돈 빌려주는 일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이들 2세대는 핀테크를 토대로 자산관리 영역 등으로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P2P기업 창업이 잇따르고 있지만 P2P대출에 대한 법적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애물이다. P2P대출과 관련해 법에 별도로 정해진 바가 없다 보니 P2P업체들은 대부업체로 등록해 활동하고 있다. 투자자들에 대한 보호 제도도 미비한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연내에 P2P대출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를 열 계획이지만 아직까지는 “P2P대출을 어떻게 볼 것인지 숙고해야 한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바라는 소비자의 욕구와 핀테크 업체들의 사업모델은 숨 가쁘게 변화하고 있다. 섣불리 취급할 문제는 아니라 해도 이런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으려면 당국도 더 유연해지고 빨라져야 한다.

장윤정 경제부 기자 yun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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