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확성기 방송’ 급한불 껐지만… 체제유지 절박함 노출

조숭호기자 입력 2015-08-26 03:00수정 2016-01-11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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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대치에서 대화로/북한의 득실]취약성 드러낸 김정은의 대남전략 4일 목함지뢰 도발로 촉발된 남북 대치가 25일 새벽 극적인 남북 합의로 일단락됐다. 21일 동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무엇을 얻었을까. 김정은 집권 이후 남북이 대규모 군사 위기 상황으로 치달은 것은 2013년 상반기 전쟁 위협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 확성기 방송만으로도 김정은 손해

정부는 목함지뢰 폭발을 북한 소행으로 결론짓고 대응 조치로 10일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 확성기 방송은 2010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때도 실제 행동에 옮기지 못했다. 이번 사태를 통해 대북 심리전의 위력은 확인됐다. 일단 확성기 방송이 재개된 것만으로도 김정은에게는 ‘마이너스’가 된 셈이다. 25일 남북 합의로 확성기 방송은 중단됐을 뿐, 재개 가능성은 열어 놓았다. 방송 시설도 그대로 둘 예정이다. 방송을 재개하는 조건은 ‘비정상적인 사태’인데, 그 ‘사태’에 대한 판단도 한국 정부가 한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북 심리전을 담당했던 당국자는 “확성기 방송은 당시 재개를 검토했지만 작전에 들어갈 경우 남북 관계에 끼칠 파장이 너무 커서 단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확성기 방송의 최대 가청 거리는 휴전선 북방 20km 내외. 대부분 산악·군사지역이어서 민간인은 접할 기회가 없다. 하지만 북한군 가운데에서도 충성도가 높은 정예 국경 경비부대원들이 대북 방송을 통해 외부 소식에 노출되면 정권의 존립마저 위협받는다고 한다. 한 고위 탈북자는 “최전방에 배치된 북한 병사는 줄잡아 20만 명으로 6개월마다 교대 근무를 하기 때문에 파급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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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 준전시상태 선포로 역효과만

김정은은 20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긴급 소집해 전선지대에 ‘준전시상태’를 선포했다. 군인들에게는 완전무장을 명령했다. 이 조치가 위기감을 조성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안보 부처 관계자는 “이번 준전시상태 선포 이후 북한이 취한 조치는 유사시 북한군의 동원 방법과 전개 순서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해안포 개방, 화력 부대 전방 배치, 공기부양정 전개 등 일련의 절차들이 고스란히 포착된 것. 2013년 개성공단 사태 때도 북한은 “전쟁이 터질 경우 남조선에 있는 외국인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대피 계획을 세우라”고 위협했지만 결국 ‘북한은 못 믿을 집단’이라는 불신감만 키웠다.

북한은 20일 청와대 앞으로 보낸 전통문에서 “48시간 내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에 돌입한다”면서도 “관계 개선의 출구를 열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남북 협상에 오래 관여한 당국자는 “북한이 최후통첩을 하면서 ‘대화하자’고 제안한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며 “그만큼 북한이 대화에 절박했음을 스스로 노출했다”고 말했다. 이는 김일성, 김정일 시대에는 볼 수 없던 패턴이다. 북한이 남북 접촉 장소로 판문점 내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을 수용한 것도 이런 절박감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접촉 장소가 상대 지역이면 도청·감시의 우려 때문에 활동에 제약을 받는데도 그 불편을 감수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황병서, 北이 성과 거둔 것처럼 선전 남북 고위급 접촉에 북측 대표로 참석했던 황병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25일 협상을 타결 지은 뒤 평양에서 이번 접촉 경위와 타결 내용을 밝히고 있다. 황병서는 북한 내부를 대상으로 회담 경과를 설명하며 “남조선 당국이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 가지고”라며 북측이 성과를 거둔 것처럼 선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 내부 결속으로 단기 도움, 또 숙청 예고

북한 조선중앙TV는 25일 남북 접촉에 나왔던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을 등장시켜 “이번 합의는 북남 사이의 군사적 충돌을 막고 북남 관계를 개선하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투쟁 결과”라고 선전했다. 또 “남조선이 일방적으로 재개한 심리전 방송을 중지했고 그에 따라 우리는 준전시상태를 해제했다”고 주장하면서 “남측이 합의정신을 진지하게 대하고 북남관계 발전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혁명영도’ 선포 55주년이 되는 날(25일)을 계기로 대남 선전에 활용한 것이다. 북한 내부를 겨냥한 황병서의 발언은 단기적으로는 내부 체제 결속에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김정은의 권위가 실추되는 사례였음이 드러나면서 제2의 숙청 바람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고위 탈북자는 “10월 10일 당 창건 70주년을 앞두고 충성 경쟁을 하다가 ‘남한 군대에 타격을 주려고’ 일으킨 목함지뢰 사건이 예상 밖의 큰 파문을 일으킨 책임을 누군가는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도발 총책인 정찰총국(김영철 총국장)보다 ‘꼬리 자르기’ 식으로 목함지뢰 사건 발생 지역(경기 파주시) 관할 부대인 북한군 2군단 6사단 관계자들이 숙청 대상에 오를 가능성도 있다.

이번 도발은 이미 불편한 북-중 관계를 더 꼬이게 만들었다. 다음 달 3일 전승절에 참석하는 최룡해 당 비서를 대할 중국의 태도가 주목된다. 최룡해는 2013년 3차 핵실험 직후인 5월 특사 자격으로 방중했을 때도 중국으로부터 모욕을 당한 바 있다. 반면 한국은 이번 남북 대치를 한중 사이가 돈독해지는 기회로 활용했다. 외교부는 25일 “오늘 새벽 남북 합의가 이뤄지기 직전 그 내용을 미국 등 관련국에 사전 통보했으며 중국에도 알려줬다”고 밝혔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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