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드림]“밥집 대신 집밥… 외국인 관광객에 통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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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서 大賞, 사운드오브트립의 집밥 공유 플랫폼 ‘애니스푼’

스타트업 사운드오브트립은 외국인 관광객이 현지 가정의 집밥을 먹어볼 수 있도록 관광객과 호스트 가정을 연결하는 ‘애니스푼’을 열었다. 이 창업 아이템으로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도 수상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사운드오브트립의 이정우(29) 최예슬(26) 이수현 씨(24) 곽재희 대표(29) 사근 씨(27·중국인).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스타트업 사운드오브트립은 외국인 관광객이 현지 가정의 집밥을 먹어볼 수 있도록 관광객과 호스트 가정을 연결하는 ‘애니스푼’을 열었다. 이 창업 아이템으로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서 대상도 수상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사운드오브트립의 이정우(29) 최예슬(26) 이수현 씨(24) 곽재희 대표(29) 사근 씨(27·중국인).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의 ‘집밥’을 먹어볼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시작은 곽재희 사운드오브트립 대표(29)가 툭 뱉은 말이었다. 회사를 먹여 살릴 아이템이 필요했다. 곽 대표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지난해 7월 회사를 설립했다. 중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공항 환대 행사 등을 하며 10개월에 1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러나 이것저것 경비를 제하면 수익은 마이너스였다.

제대로 된 사업 아이템이 절실했다. 직원들은 매일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그러던 중 곽 대표의 말에 다들 “대박”을 외쳤다. 외국인 관광객과 호스트 가정을 연결해주는 플랫폼만 만들면 성공할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 4월 아산나눔재단이 주최하는 제3회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에 지원했다. 청년 창업활동을 지원한다기에 지원금이나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집밥 공유 플랫폼 ‘애니스푼’을 창업하는 아이디어로 400여 팀을 뚫고 지난달 28일 이 대회 결선에서 대상을 차지한 사운드오브트립의 이야기이다.

○ “단순 쇼핑객 보다 유학생이 적합”

창업경진대회는 결선에 진출한 팀에 6월부터 9주간 아이템을 실제 사업으로 운영해보게 했다. 300만 원이 지원됐고 팀별로 벤처 기업가가 밀착해 멘토링을 실시했다.

“이 플랫폼을 누가 이용할 것 같아요? 그냥 만들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그 가정부터 검증하세요.”

사운드오브트립의 멘토가 된 이동형 싸이월드 창업자(현 나우프로필 대표)가 지적했다. 바로 플랫폼을 만들어 호스트를 모집하고 외국인에게 홍보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사운드오브트립은 고민에 빠졌다.

한국인의 집밥을 누가 원할까? 쇼핑이 주목적인 유커(游客·중국인 관광객)는 아닌 것 같았다. 외국인 유학생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어학당 학생이나 교환학생으로 비교적 짧은 기간(6개월∼1년) 머물기 때문에 한국 문화를 배우는 데 적극적인데 집밥을 먹어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사운드오브트립은 외국인 유학생 30명을 ‘집밥 체험단’으로 모집해 호스트 가정을 찾았다. 호스트 가정은 온라인으로 지원받아 검증을 거친 뒤였다. 9곳이 외국어(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로 소통이 잘되는지, 정말 외국인과 문화를 공유하고 싶어 하는지, 혹시 돈만 벌려는 건 아닌지, 집은 청결한지 등의 심사기준을 통과했다.

관광객들은 원하는 언어와 음식 종류를 골라 결제하고 해당 가정에서 집밥을 즐길 수 있다. 애니스푼(www.anispoon.com) 화면 캡처
관광객들은 원하는 언어와 음식 종류를 골라 결제하고 해당 가정에서 집밥을 즐길 수 있다. 애니스푼(www.anispoon.com) 화면 캡처
○ 집밥 경험 외국인들 만족도 높아

“묵밥은 처음 보죠? 한국에서 여름에 시원하게 많이 먹는 거예요. 부침개는 한국식 피자, 이건 많이 봤죠?”

이민영 씨(34·여)가 자신의 집을 찾은 홍콩과 대만 유학생 3명에게 영어로 말했다. 서로 어색해할 거라는 우려와 달리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갔다. 이 씨의 남편은 유학생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중국어로 어떻게 발음하는지 물었다. 세 살짜리 딸을 둔 부부는 홍콩과 대만에서의 영어 교육법도 궁금해했다. 유학생들은 이 씨 부부가 대학생 때 무엇을 하며 놀았는지 물었다. 웃고 떠드는 동안 2시간 반이 훌쩍 흘렀다.

다른 호스트 가정에서도 만남이 밥에서 끝나는 경우는 없었다. 어떤 가정은 외국인들에게 한복 입는 법을 가르쳐주거나 가야금 연주를 들려줬고 함께 서촌을 산책하기도 했다.

외국인들의 만족도는 높았다. “최대 4만 원도 지불할 수 있다”는 반응도 나왔다. 사운드오브트립은 집밥 공유 플랫폼이 외국인과 호스트 가정이 문화를 교류하는 장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사운드오브트립은 지난달 24일 ‘애니스푼’(www.anispoon.com)을 영어와 중국어 일본어 버전으로 열었다. 외국인 관광객은 호스트 가정이 올려둔 정보(음식 종류, 함께할 수 있는 체험, 가능한 언어 등)를 보고 날짜를 골라 예약한 뒤 결제하면 된다. 가격은 호스트 가정이 정하는데 현재는 1인당 18∼29달러 수준이다. 사운드오브트립은 여기서 중개 수수료 16.7%를 가져간다.

○ 대상 수상한 날 첫 고객 유치

아산나눔재단은 사운드오브트립에 대상 상금 2000만 원을 수여했다. 이 사업에 정주영 엔젤투자기금(1000억 원 규모)으로 투자할지도 검토할 예정이다. 아산나눔재단은 2011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서거 10주기를 맞아 정몽준 전 의원과 현대중공업 등이 설립한 재단이다.

대상을 수상한 날 사운드오브트립에 기쁜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애니스푼에서 첫 결제가 이뤄진 것. 일본인 3명이 5일 한국인 가정에 닭볶음탕을 먹으러 가는 상품을 선택했다. 직원들은 첫 고객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하고 있다.

사운드오브트립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역을 여행하는 모든 관광객이 현지 집밥을 먹을 수 있도록 사업을 확대할 생각이다. 곽 대표는 “지금은 우리가 호스트를 일일이 검증하지만 사용자가 많아지면 후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걸러질 것”이라며 “외국에 지사를 만들거나 군소 여행업체들과 손잡고 사업을 확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정주영 창업경진대회#집밥#애니스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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