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 정상회담]안보 ‘립서비스’는 아낌없이… 국익 앞에선 한치 양보없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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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TPP 협상서 지갑 안 열자 美 “농산물-車시장 개방” 압박

24일 미일 정상회담 직후 NHK방송을 통해 생중계된 공동 기자회견은 국익 앞에 양보 없는 미일 동맹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보여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일본에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 대한 미국의 방어 의무를 언급하고 아베 신조 총리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 등 안보 노력을 평가했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숙원사업이며 납북 피해자 문제의 상징인 요코타 메구미(橫田惠) 씨 부모를 10분간 만나 “정치인이 아니라 두 딸을 가진 부모 입장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돈이 안 드는 ‘립 서비스’는 아낌없이 베푼 것이다.

일본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에서 ‘지갑’을 열 차례였지만 기대했던 답례가 지연됐다. 아베 총리가 기자회견 내내 오바마 대통령을 “바라크(버락)”라고 부르며 친밀감을 연출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전날과 달리 아베 총리를 한 번도 “신조”라고 부르지 않았고 “아베 총리”라며 공식적으로 대했다.

양국 정상 간 이상 기류는 전날 초밥집 만찬에서부터 감지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베 내각 지지율은 60%지만 나는 45%다. 그쪽이 정치적 기반이 강하니 양보해 달라”고 먼저 말을 꺼냈다.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한 발언이었다. 그러자 아베 총리는 동석한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를 바라보며 “일본에서는 대사가 더 인기가 있다”며 딴청을 피웠다. AFP통신은 “아베 총리는 이날 주방장이 하나씩 만들어주는 초밥을 다 먹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절반만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대화 분위기가 꽤 딱딱했다”는 초밥집 주방장의 말도 전했다.

미국은 일본에 돼지고기 관세 인하와 미국 차에 대한 안전 및 환경기준 예외 적용을 요구하고 있으나 일본은 주권 문제라며 협상 타결을 늦췄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 시장은 농산품과 자동차 분야 개방에서 미국에 비해 제한돼 있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마이클 프로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아마리 아키라(甘利明) 일본 경제재생담당상은 이날 정상회담 뒤 2시간 동안 각료 회담을 가졌으나 협상을 매듭짓지 못하고 실무협상팀에 바통을 넘겼다. TV아사히는 미국 정부 관계자의 입에서 “TPP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공동성명에서 센카쿠 부분을 빼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아베 총리가 섣불리 TPP 협상을 타결하면 국내 정치적 역풍이 예상돼 코너에 몰린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이미 TPP에서 대폭적인 양보를 결정해놓고 국내 정치적인 반발을 감안해 마지막까지 버티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이 25일 오전 일본을 떠나기 전까지는 협상이 타결되고 공동성명이 발표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날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은 안 된다”는 인식을 내비치면서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의 센카쿠 방어 의무를 언급한 것은 러시아의 크림 반도 편입과 같은 사태가 아시아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 조치로 보인다. 미국의 ‘안보 우산’에 대한 일본의 불신을 차단하고 동아시아 미군 재편과 관련해 동맹국 일본의 부담 증가를 기대하는 의도도 깔려 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이 문제로 사태가 계속 커지는 것은 옳지 않으며 일본과 중국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중국 달래기도 잊지 않았다. 특히 그는 센카쿠 열도 영유권에 대해 “확정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일본의 시정(행정)권은 인정하되 영유권에는 중립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에 대해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미일 안보조약이 제3자를 거론하지 않아야 하고 중국의 영토주권을 훼손해서도 안 된다”며 미일 안보조약이 냉전 시기의 산물이라며 반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은) 국제무대에서 최근 수십 년간 무책임한 행위자였다”고 비난한 뒤 “북한의 진로를 바꾸기 위해 일본 한국 중국 등과 협력해 앞으로도 보다 많은 압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태영 한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독도는 한미 상호방위조약상 한국의 행정 지배 아래 있는 영토에 포함된다는 것이 우리(한국) 입장”이라고 말했다. 독도 문제로 한국과 외국 군대가 무력 충돌하면 미국이 한국 편에서 자동 개입한다는 뜻이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조숭호기자
#미일 정상회담#TPP 협상#오바마#아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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