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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Narrative Report]다름이 모여 살가운 이웃이 되는, 마법의 쉼터

입력 2014-04-10 03:00업데이트 2014-04-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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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 여성들이 모여 학습을 하는 다문화센터 ‘다린’은 일요일에 가장 붐빈다. 6일 오전 서울 성북구 창경궁로에 위치한 다린에서 체스교실을 연 강사 박혁민 군(19·왼쪽에서 두 번째)과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체스 삼매경에 빠져 있다. 이주민들은 다린에서 박 군처럼 재능기부를 하는 봉사자들로부터 한국어, 영어, 금융, 체스, 음악 등을 배운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체스가 어느 나라에서 시작됐는지 아는 사람?”

“저요. 우리나라요!”

“우리나라면 좋겠지만 아니야. 정답을 찾고 싶으면 ‘우리는 체스왕’ 책을 펴서 지금 빨리 찾아볼까?”

일요일인 6일 오전 서울 성북구 창경궁로에 있는 하나은행 삼선동지점 3층은 아이들이 떠들고 웃는 소리로 가득했다. 이곳은 하나금융그룹이 2011년 6월 다문화가정을 위해 설립한 문화공간 ‘다린(多隣)’이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웃이 함께한다’는 뜻의 다린은 일요일에 가장 붐빈다. 주말에 문을 닫는 대부분의 다문화센터와 달리 다린은 매달 둘째, 넷째 주 월요일 이틀만 쉰다. 주말이야말로 결혼이주 여성들이 마음 편하게 아이를 데리고 올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날 다린에서는 체스교실이 열렸다. 앳된 얼굴의 체스 선생님은 고교 3학년인 박혁민 군. 나이는 어리지만 체스대회에서 여러 번 입상한 실력자다. 아이들이 체스 삼매경에 빠져 있는 동안 엄마들은 교실에서 한국어와 영어를 배웠다. 엄마들이 수업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아이 돌봄이’ 봉사를 자청하고 나선 건 박 군과 같은 고교생, 대학생이었다.

의정부시, 안산시 등 경기 지역에서 찾아오는 이주민이 적지 않다. 2012년 7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다린을 찾은 외국인은 29개국 9776명,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다린을 방문한 한국인도 6016명이나 된다.

○ 다린을 움직이는 힘, 자원봉사자

다린에서 상근자로 일하는 직원은 3명뿐이다. 모자란 손을 채워주는 든든한 조력자는 지역주민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자원봉사자들이다. 얼마 안 되는 교통비만을 받고 기꺼이 재능 기부에 나선 이들은 이주민들에게 한국어 영어 금융 체스 음악 댄스스포츠 등 다양한 재능을 나눠준다.

다린의 인기강좌인 어쿠스틱 기타교실을 맡고 있는 박현웅 씨(47)는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음악원에서 기타를 전공했다. 중학교와 대학에서 기타를 가르치면서 작곡가와 연주자로 활동하는 그는 지금까지 음반 15장을 냈다. 베테랑 기타리스트인 그가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다린에서 기타를 가르치는 이유는 궁핍했던 스페인 유학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기타를 배우고 싶어 무작정 스페인으로 갔는데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못해 식당에서 주문하기도 힘들었어요. 지쳤을 때 힘이 돼준 건 스페인 사람들. 항상 웃는 얼굴로 A부터 Z까지 도와주던 친구들 덕분에 7년간의 유학생활을 버틸 수 있었죠.”

그의 수업을 듣는 학생 10여 명의 국적과 연령은 각양각색이다. 20대부터 60대까지 있고, 인도네시아 일본 베트남 중국 등 태어난 곳도 다양하다. 남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걸 정말 싫어하는 그는 한국 노래를 모르는 수강생들 때문에 이 교실에서만큼은 직접 노래를 불러준다. 그는 “다른 수업보다 준비시간이 두세 배 걸리지만 ‘특별한’ 학생들이 기타를 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하나금융 직원들도 다린에서 금융교육 봉사를 하고 있다. 결혼이주 여성의 눈높이에 맞춘 수업은 엄마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을 키우는 엄마인 김리진 하나은행 금융소비자보호본부 차장(41)이 하는 강의는 쉬는 시간에 더욱 빛을 발한다. 살아있는 ‘장바구니 정보’가 오가기 때문이다. 김 씨는 언젠가 결혼이주 여성들이 한국 주부보다 생활비 평균 지출액이 크다는 조사결과를 신문에서 읽고 왜 그럴까 궁금했다. 이곳에서 그들과 수다를 떨다 보니 자연스레 이유를 알게 됐다.

“한국 엄마들은 각종 쿠폰을 활용하고 세일기간에 맞춰 백화점에 가잖아요. 이주 여성들은 아이 옷을 싸게 사려면 남대문시장을 가거나, 백화점을 가더라도 행사장이나 매대에서 사야 한다는 간단한 정보도 모르더라고요.”

○ 교육의 장이자 다친 마음도 치유하는 곳

2009년 한국인과 결혼해 캄보디아에서 이주한 티다 씨(26·여)는 아이가 생기지 않자 찾은 병원에서 결핵 때문에 아이를 못 가질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남편은 곧장 이혼을 요구했다.

홀로 남겨진 그에게 한국은 두려운 곳이었다. 그러나 우연히 소개받은 다린에서 만난 사람들은 무뚝뚝하고 차가웠던 전남편과 달랐다. 말 한마디를 건네도 따뜻하고 다정했다. 한국에 온 지 여러 해가 지나도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한국어를 배운 곳도 여기였다.

“전남편에 대한 미움이 한국을 향한 원망으로 바뀌려고 할 때 접한 곳이 다린이에요. 여기서 만난 선생님들과 자원봉사자의 따뜻한 위로가 큰 힘이 됐어요. 캄보디아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들 덕분에 용기를 얻어 한국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엄마, 오늘 다린 가는 날이야.” 경기 의정부시에 사는 최옥금 씨(41)는 일요일 아침마다 막내딸의 말에 잠을 깬다. 최 씨가 사는 곳에서 다린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지만 초등 1, 3학년 두 딸을 데리고 주말마다 이곳을 찾는다.

중국 지린(吉林) 성 출신인 최 씨는 한국인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1997년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밀린 전기요금을 내러 한국전력공사 지점을 찾았다가 겪었던 모욕은 아직도 생생하다. 중국동포 특유의 억양을 들은 창구의 젊은 여직원은 “중국이 그렇게 더럽다면서요”라고 놀리듯 말했다. 불쾌함은 오래 이어졌다.

“생활하다 보면 여전히 편견은 있다고 느끼지만 그래도 최근 몇 년 동안 다문화가정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은 상당히 성숙해졌어요.” 그가 이렇게 느끼게 된 건 상당부분 다린 덕분이다. 여기서 만난 또래 학부모는 “남들은 돈 주고 중국어 공부 시키는데 자기네 딸들은 한국어 중국어 다 되니 좋겠다”고 했다. 동네 이웃 가운데 친구도 많아졌다. 학교에서 오는 통신문을 읽다가 뜻을 잘 모를 때 언제든 달려가 마음 편하게 물어볼 수 있게 됐다.

그가 다린을 찾기 시작한 건 1년 전. 한국어와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서다. 틈틈이 시간을 쪼개 이웃아이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거나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중국어 통역봉사도 한다. “처음에 한국 와서는 내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듯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돼 참 행복해요.”

다린에는 결혼이주 남성들도 제법 많이 찾아온다. 중국 산둥(山東) 성에서 2006년 한국으로 건너와 한국 여성과 결혼한 안정남 씨(29)는 그중 한 명이다. 밤에는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일하고 낮에는 다린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는다.

처음에 그는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차별한다고 여겼지만 이젠 그런 마음을 버렸다. 자신보다 늦게 한국에 온 친구들에게도 “한국 사람들에게 서운해하지 말고 너부터 마음을 활짝 열어라”라고 조언한다고 했다. “한국 문화를 잘 몰라서 오해했던 부분이 많았어요. 나부터 마음을 열었더니 한국 사람들의 매력이 보였어요. 이제 한국은 두 번째 고향이에요. 국적이 중국인지, 한국인지가 뭐가 중요한가요.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과 일이 지금 여기 한국에 있는데.”

○ 공존의 가치를 배우는 곳

다린의 자원봉사자들은 한결같이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주지만 내가 배우는 게 더 많다”고 말했다. 윤현미 씨(41)는 생김새와 겉모습이 달라도 서로 어울려 지내는 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어 두 아이를 데리고 다린을 꾸준히 찾는다. 그는 “다문화가정 엄마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겸손함과 배려심, 긍정적인 마음가짐에 감탄한다”며 “그들과 더욱 가깝게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같은 마음을 다린의 신혜영 팀장도 느꼈다. 몇 년 전 반지하 단칸방에 살면서 아이 양육과 생활비에 쓰고 남은 돈을 고향 부모님께 보내는 결혼이주 여성 집을 방문했을 때 그 여성은 “힘들어 죽겠다”는 말 대신 “이렇게 지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며 환히 웃었다.

“당시에 ‘피곤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어요. 누가 봐도 생활이 고달픈데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생활하는 그가 존경스러웠고 제 삶에도 자극이 됐죠.”

이곳 사람들은 말한다. 다린에 발을 딛는 순간 국적도 연령도 의미가 없다고. 그저 ‘이웃’이라는 말이면 충분하다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곳, 차이를 이해하고 공존의 가치를 배우는 곳, 바로 다린이다.

신수정 기자 cryst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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