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원택]경제민주화, 복지 사라진 대통령 신년회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0일 03시 00분


코멘트

우리 사회 갈라놓는 경제 양극화 심각한데 “4만달러 시대로 도약”
대통령의 180도 바뀐 선언 ‘복지 확대’ 공약 실천 의지
현상유지 원하는 관료논리에 설득당한 것은 아닌가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대통령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렸고 표정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렇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뭔가 공허했다. 며칠 전 신년 기자회견 때 박근혜 대통령을 보면서 받은 느낌이다. 신년 구상에서 박 대통령이 가장 중점을 둔 분야는 역시 경제였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로의 도약을 강조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결연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신년 구상의 내용은 그다지 절실하게 와 닿지 않았다. 대통령의 연설과 응답의 내용 속에서 관료의 냄새가 났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연상시키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말했지만, 연간 계획을 정해 놓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국가가 사회적 자원을 총동원해서 끌고 가는 일은 민간 부문이 취약하고 사회가 단순했던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오늘날처럼 사회적 이해관계가 다양해지고 민간 영역의 영향력이 확대된 시대에 관료 주도의 경제계획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바람직한 일인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또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이야기했지만 이 수치에 감동을 느끼거나 희망을 갖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수십 년 전 우리가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을 때는 모두가 자기 일처럼 기뻐했지만 몇 해 전 무역 1조 달러를 이뤘을 때 그 기록에 감동했던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수출 증대가 국민 개인의 소득 증가나 고용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국민소득이 4만 달러가 된다고 해도 대다수의 사람은 경제적 양극화로 인해 자기가 그 혜택의 수혜자가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4만 달러 시대가 우리가 가야 하는 미래의 꿈이라고 해도 과거 국민소득 1000달러의 목표처럼 국민들 사이에 이에 대한 강한 희망의 공감대를 이뤄내지는 못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가 시대적 과제를 누가 더 잘 해결해 낼 수 있는지 선택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의 관심을 끈 시대적 과제는 경제민주화와 복지였다. 그만큼 경제적 양극화는 이미 우리 사회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 맞춰 대선 기간에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강조했다. 심지어 ‘아버지의 꿈은 복지국가’였다는 말까지 했다. 이처럼 복지를 강조한 박근혜 후보의 공약은 많은 국민에게 상당한 기대감을 주었고 실제로 대선 승리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이번 신년사에서는 한 단어도 언급되지 않은 채 아예 사라져 버렸고, 관료 주도의 경제성장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신뢰와 약속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고려해 볼 때 불과 1년 만에 복지정책에 대한 입장이 180도 달라진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사실 복지는 속성상 풀어내기가 쉽지 않은 이슈다. 복지 확대는 기존의 이해관계와 분배 구조의 변화를 초래하는 일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으며, 종종 격렬한 정치적 논란과 사회적 갈등으로 이어지기 쉽다. 따라서 복지 확대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주변의 만류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관철하고자 하는 강한 정치적 의지가 필요한 것이다.

이번 신년사를 들으면서 복지 공약 실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는 현상유지를 선호하는 관료적 논리에 설득당한 것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이처럼 중요한 이슈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타협을 이루기 위해 박 대통령이 정치력을 발휘하려고 하기보다 순종적이고 효율적인 관료집단에 의존하는, 상대적으로 편안하고 쉬운 통치방식으로 선회한 듯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선거 때 공약을 해 놓고 왜 지키지 않느냐고 시비를 걸려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경제적 양극화는 한국 사회에서 너무도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젊은 세대는 희망을 찾지 못하고 가난한 이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좀 더 성장하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뤄내기 위해서라도 사회적 양극화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정치지도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결국 시대적 요구에 얼마나 제대로 응답하려고 애썼느냐 하는 데 달려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박 대통령이 시대적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의 무거움을 다시금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kangwt@ssu.ac.kr
#복지#경제민주화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