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스케치]음식배달도 ‘강남 스타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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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안만들고 배달만 하는 업체들 “강남이 노다지였네”

배달전문업체 ‘띵동’의 배달원(오른쪽)이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식당에서 고객이 주문한 음식을 건네받고 있다.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음식 배달 전문 서비스 덕에 많은 사람들이 자체 배달원이 없는 유명 맛집 음식을 집에서도 편안히 주문해 먹을 수 있게 됐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배달전문업체 ‘띵동’의 배달원(오른쪽)이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식당에서 고객이 주문한 음식을 건네받고 있다.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음식 배달 전문 서비스 덕에 많은 사람들이 자체 배달원이 없는 유명 맛집 음식을 집에서도 편안히 주문해 먹을 수 있게 됐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배달의 기수’라고 하더군요. 멋지지 않은가요? 앗, 배달 들어왔네. 보리밥 정식 16인분이군요.”

지난해 12월 17일 오전 11시 반,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사무실. 대기 중이던 배달원이 식당 이름을 확인한 후 쏜살같이 오토바이에 오른다. 그가 향한 곳은 자기 회사의 주방이 아닌, 근처에 있는 ‘사월에보리밥’ 압구정점. 주문 내용은 이 회사에 전화 주문이 들어온 직 후 바로 보리밥집에 전달된 상태다. 보리밥 16인분은 푸드플라이를 통해 이날 이 식당에 접수된 10번째 음식 주문이었다.

푸드플라이는 음식을 만들지 않고 배달만 대행해주는 업체다. ‘옷, 책 할 것 없이 뭐든 다 배달되는 배달의 천국 한국에서 피자나 짜장면 이 외의 음식 배달은 왜 잘 안될까’ 하는 의문을 품은 이들이 힘을 합쳐 문을 열었다. 생소하다고 장사가 잘 안될 것 같다는 지레짐작은 하지 말자. 현재 서울 강남권(강남구와 서초구)을 중심으로 음식배달 전문 업체 다수가 활발히 활동 중이니까. 장사도 잘된다. 강남에는 직원이나 업주가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 사진 스튜디오와 약국, 성형외과 병원 등이 밀집해 있고 1인 가구도 많다. ‘음식 배달 생태계’가 자리 잡기에 최적의 환경인 셈이다.

배달도 ‘강남 스타일’

2011년 8월 문을 연 푸드플라이는 강남권을 중심으로 하던 사업을 지난해 5월 강 건너 성동구 일대로 확대했다. 이 회사가 자리를 잡자 올 초부터 강남 지역에서는 음식 배달 서비스 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기 시작했다. 3월에는 ‘띵동’이, 9월에는 ‘부탁해’가 가세했다. 식료품, 애완동물 사료, 생리대 등 자질구레한 생필품을 고객 대신 구입해 주거나 은행, 동사무소의 행정 업무를 대행해 주던 기존의 심부름업체들도 음식 배달을 서비스 리스트에 추가하고 나섰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약 9년간 심부름 대행 사업을 해 온 ‘해주세요’는 맛집 소개 사이트 ‘메뉴판닷컴’과 제휴해 6월부터 온라인 음식 배달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배달 및 영업 노하우가 있는 심부름업체들까지 이 사업에 뛰어들면서 강남의 음식 배달 사업은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다. 이들 업체는 음식 배달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음식 배달 비중이 업체별로 70∼90%에 육박하자 관련 인프라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음식 배달 업체들이 주로 강남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것은 상권과 인구구조 때문이다. 강남권은 배달 음식 수요가 많은 1인 가구 비중이 높다. 지난달 초 발표된 안전행정부 주민등록통계에 따르면 전국에서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곳은 서울 강남구 역삼1동(1만3345가구)으로 전체 가구의 64%가 1인 가구다. 이 지역에는 1인 가구가 주로 거주하는 고시원과 오피스텔이 많다.

또 ‘2013년 강남구 사회조사’에 따르면 강남지역의 1인 가구 중에는 가처분소득과 소비성향이 상대적으로 높은 여성(66.5%)과 30대(30.1%)가 상당수다. 이런 인구구조의 특성이 배달 생태계 조성에 좋은 바탕이 됐다는 분석이다.

임은선 푸드플라이 대표(29)는 사업을 시작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업주나 직원이 오래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 약국, 스튜디오, 병원 등 각종 서비스업과 자영업 종이 많아 이 지역 음식점 매출에서 테이크아웃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더라고요. 그런데 배달망을 갖춘 식당은 별로 많지 않아 성공 가능성이 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띵동이 3월 본사를 강남구 논현동으로 옮긴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생활편의 대행서비스’를 내세우는 이 회사는 원래 서울 강북의 동대문과 종로, 성동구 일부 지역을 주무대로 음식 배달 및 민원 처리 서비스를 대행했다. 윤문진 띵동 대표(34)는 “원래 동대문시장 상인들을 겨냥해 사업을 시작했지만 상가들이 밀집된 동대문시장 인근에는 이미 동네 음식점들의 자체 배달망이 잘 갖춰져 있었다”며 “주택가에는 1인 가구보다 가족 중심 거주자가 많아 음식 배달 수요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도로가 바둑판처럼 짜여 길 찾기가 쉽고, 동네별 ‘먹자골목’에 맛집들이 몰려 있어 음식 배달이 쉬운 것도 음식 배달 서비스가 강남에서 성업 중인 배경으로 꼽힌다.

‘젊은 사장’의 힘

고객 주문이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오토바이에 오른 ‘푸드플라이’ 배달원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고객 주문이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오토바이에 오른 ‘푸드플라이’ 배달원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여러 업체들이 배달만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데에는 음식점과의 제휴와 정보기술(IT) 기반의 서비스가 큰 도움이 됐다. 배달 대행 업체들은 고객들에게 배달료(음식 가격, 배달 거리, 음식점 제휴 여부에 따라 회당 평균 2000∼1만원)를 받거나, 고객에게 무료로 배달을 해주는 대신 식당으로부터 수수료(음식값의 10∼15%)를 받아 수익을 낸다. 제휴업체가 많을수록 공짜 배달이 많아진다.

음식점들은 자체 배달 인력을 고용하는 비용을 아낄 수 있는 데다 배달업체 사이트를 통해 온라인 홍보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배달업체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메뉴를 살펴보고 음식을 주문한다.

이른바 ‘인터넷 먹방’(음식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개인 방송)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맛집 정보 교환, 소셜커머스 사이트에서의 외식 메뉴 결정이 젊은층 사이에 폭넓게 확산돼 있는 것도 음식 배달 서비스가 연착륙하는데 큰 힘이 됐다.

‘부탁해’는 아예 IT서비스 업체를 표방하고 있다. 음식점과 배달 직원을 실시간으로 연결해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사업에 적용했고 현재 미국 일본 등으로의 수출도 추진 중이다. 이 회사의 유정범 대표(33)는 “구글맵과 연동해 현재 배달원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했다. 이 회사는 배달 인력을 아웃소싱하는 것도 특징이다.

다른 업체들과 달리 이 회사에는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소프트웨어 개발과 마케팅, 영업 담당 직원밖에 없다. 기술이 기반이 되는 사업모델의 특성상 음식배달 업체 대표 가운데는 청년 CEO가 많다. 푸드플라이의 임은선 대표는 포스텍 전자공학과 출신으로 딜로이트컨설팅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한 바 있다. 그는 “푸드플라이는 레스토랑을 온라인으로 옮긴 서비스”라며 “중국, 싱가포르 등에서 이미 인기가 높은 유사 업체들의 사례도 공부했다”고 말했다. 국내의 대표 소셜커머스 업체인 티켓몬스터의 공동창업자 신성윤 씨도 푸드플라이의 창업 멤버다. 부탁해의 유정범 대표 역시 유학생 출신으로 미국에서 컨설팅 회사를 다닌 이력이 있다. 그는 “병역특례로 한 산업체에서 근무할 때 강남의 오피스텔에 살았다”며 “심부름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다 여기에 음식 배달 아이디어를 접목하면 좋겠다 싶어 시작했다”고 말했다.

고객 증가에 경쟁 과열 양상도

음식 배달 서비스의 이용 고객 수는 빠르게 늘고 있다. 2012년 20억 원 규모였던 푸드플라이의 거래액은 지난해 50억 원에 육박했다. 사업 초기 한 대밖에 없었던 배달용 오토바이는 현재 28대로 늘었다.

고객들은 짜장면 등 중국음식과 일부 패스트푸드 등으로 한정된 배달 음식에서 벗어나 색다른 맛집 메뉴까지 섭렵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약국을 비울 수 없어 매일 배달 음식을 시켜먹는다는 약사 박다원 씨(27·강남구 논현동)는 “만날 먹던 것만 먹어 지루하던 차에 일부러 줄을 서서라도 사 먹는 유명 음식점 메뉴도 주문할 수 있어 좋았다”며 “교통비나 시간 절약 효과까지 있다”고 말했다.

배달 인력이나 차량에 투자할 형편은 안 되지만, 배달의 필요성은 절실하게 느끼던 음식점들의 반응도 좋은 편이다. ‘사월에보리밥’ 압구정점의 이은희 점장(34)은 “매출에서 주문배달이 차지하는 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는 데다 배달업체들이 스마트폰 앱 등을 통해 홍보를 해주기 때문에 투자 가치가 큰 것 같다”고 말했다.

배달 생태계가 확대되면서 경쟁 역시 치열해졌다. 최근에는 지리에 익숙하고 손이 빠른 전문 배달인력 빼가기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 배달원은 “매달 고정급으로 월급을 주는 대신, 건당으로 계산해 임금을 준다는 업체로 최근 이직했다”며 “경험이 많아 배달 속도가 빠른 내겐 훨씬 유리한 조건”이라고 말했다.

제휴 음식점 선점 경쟁은 보다 은밀하게 펼쳐 지고 있다. 음식점 사장들은 여러 업체와 제휴를 맺는 게 복잡하단 생각에 한 업체와만 거래하려고 한다.

하지만 배달업체 입장에서는 유명 맛집을 잡는 것이 매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 배달업체 대표는 “인기 음식점의 경우 수수료를 대폭 할인해서라도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경쟁이 가열되고 있지만 음식 배달 사업의 전망은 밝은 편이다. 윤문진 띵동 대표는 “점점 바빠지는 현대인들은 시간을 절약해주는 서비스에 기꺼이 지갑을 열려는 성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여준상 동국대 교수(경영학)는 “24시간을 압축적으로 사용하는 한국인의 성향, 1인 가구의 증가, 모바일을 통한 항시 온라인 접속 등의 요인이 결합하면서 음식 배달 사업은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김현진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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