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사태 새삼 관심…전두환 노태우 ‘신군부’가 일으킨 군사반란사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2일 0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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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서거)사건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전두환합동수사본부장. 동아일보DB
박정희(서거)사건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전두환합동수사본부장. 동아일보DB
12·12사태

12월 12일을 맞아 인터넷에서 12·12사태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12·12사태는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을 말한다.

10·26사건이 일어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된 뒤 합동수사본부장을 맡고 있던 보안사령관 전두환과 육군참모총장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간에는 사건수사와 군 인사문제를 놓고 갈등이 있었다.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군부 내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정승화가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10·26사건 수사에 소극적이고 비협조적임을 내세워 정승화를 강제 연행하기로 계획하고 실천에 옮겼다.

계획에 따라 12일 저녁 허삼수·우경윤 등 보안사 수사관과 수도경비사령부 33헌병대 병력 50명은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에 난입하여 경비원들에게 총격을 가하여 제압한 후 정승화를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 연행하였다.

총장의 연행에 저항할지도 모르는 특전사령관 정병주, 수경사령관 장태완, 육군본부 헌병감 김진기는 보안사 비서실장 허화평에게 유인되어 연희동 요정의 연회에 초대되었다. 연회 도중 총장의 연행사실이 전해지자 정병주·장태완 등의 육군장성들이 대응태세를 갖추려 하였으나, 이미 전두환이 박희도와 장기오에게 지시하여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령하게 함으로써 육군지휘부를 무력화시킨 후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진전은 당시 대통령 최규하의 재가 없이 이루어졌다. 사후 승인을 받기 위하여 신군부세력은 최규하 전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신군부세력은 국방장관 노재현을 체포하여 대통령을 설득했고, 결국 최규하는 13일 새벽 정승화의 연행을 재가했다.

12·12사태의 주도세력인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이 끝난 후, 들어선 김영삼 정부는 12·12사태를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사진=박정희(서거)사건수사결과를 발표하는 전두환합동수사본부장. 동아DB

<동아닷컴>
#12·12사태#전두환#노태우#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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