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식당 착한 이야기]대구 달성군 ‘가창칼국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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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두배로 늘어났는데 수익은 그대로… 허허허

‘가창칼국수’ 배석교 김월자 씨 부부가 정성 가득한 칼국수 면을 만들고 있다. 잔잔한 미소가 그들의 사람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달성=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가창칼국수’ 배석교 김월자 씨 부부가 정성 가득한 칼국수 면을 만들고 있다. 잔잔한 미소가 그들의 사람 사랑을 느끼게 해준다. 달성=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식당 간판 페인트칠은 군데군데 벗겨져 있다. 건물 외벽도 얼룩져 있다. 도로변에 세워두지 않으면 주차는 엄두도 못 낸다. 식당 밖의 좁은 화장실은 어둠침침하고 남녀 구별도 안 돼 있다.

“맛이 아무리 좋고 좋은 재료를 쓴다 해도 이런 곳을 ‘착한식당’으로 정해?”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면 그렇지.” 식당 안에는 테이블이 6개. 안쪽 방은 개조해 8개의 테이블을 들여놓았다. 시골 식당이 그렇듯 신문지는 방 한쪽 구석에 쌓여 있고, 정갈한 구석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물은 셀프란다.

대구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가창칼국수를 찾은 것은 주말인 16일 오후 4시경이었다. 점심치곤 너무 늦고, 저녁치고는 이른 시간임에도 손님 6명이 뚝배기에 담긴 칼국수를 개인 접시에 덜어 먹고 있었다.

“계세요!” 주방 쪽을 향해 목청을 높였다. 칼국수를 먹으러 간 손님이 아니라 취재 목적의 기자 본능으로 서슴없이 주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고…. 기자는 모든 생각이 달라졌다. ‘아하 이제야 알겠네.’ 지난해 6월 27일 방영된 채널A ‘이영돈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착한식당’으로 선정된 가창칼국수의 비밀이 하나둘 벗겨졌다.

한식 양식 중식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딴 기자로서 오만을 부리고 싶었던 걸까. 주방 안 소쿠리에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겨울배추가 눈에 띄었다. 노란 놈으로 하나를 집어 입안에 넣고 씹어봤다.

‘앗!’ 겨우내 노지에서 자란 봄동, 강원도 고랭지 배추도 먹어봤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아무 양념 없이 씹어도 아삭아삭한 식감과 씹을수록 고소해지는 맛. 야채과자라고나 할까. 눈은 반사적으로 주방에 있던 배석교 씨와 부인 김월자 씨를 향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배추예요?” 식당 근처에 있는 밭에서 직접 키운 배추란다. 농약은 물론이고 화학 비료조차 쓰지 않은 것이라고. “술을 담그고 남은 밀기울을 쓰면 병해충 예방과 거름 역할을 합니다. 오늘 아침에 따온 거예요.”

배추야 그렇다 치자. 반찬 통에 듬뿍 담긴 된장에 버무린 고추를 젓가락으로 집었다. 분명 집 된장이었다. 된장 맛 뒤에 씹히는 고추는 매운맛보다는 감칠맛에 가까웠다. 고추는 원래 병해충에 약한데 그걸 이겨낸 놈만 골라 썼단다. 이 집 주 메뉴가 우리밀로 만든 칼국수지만 밑반찬의 출생 비밀에 관한 얘기도 흥미진진했다.

이 식당 자리엔 원래 약방이 있었다. 결혼 전 월자 씨네 소유로 임대를 줬는데, 약방이 문을 닫고 나가자 빈 공간으로 남게 됐다. 대구에서 전문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조그만 회사에서 경리로, 양품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던 월자 씨는 칼국수집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엄마, 우리 빈 가게에 식당이나 한번 해볼까. 칼국수 어때?” 19년 전 일이다. 주말과 휴일이면 서울 부산 울산, 충북 청주 등 전국에서 수백 명의 식객들이 찾는 ‘가창칼국수’는 이렇게 시작됐다.

월자 씨는 친정어머니 배분도 씨와 함께 처음엔 일반(수입) 밀가루로 장사를 시작했다(남편 석교 씨는 나중에 합류했다). 하지만 식당이 대구 시내에서 30분 거리인 변두리에 위치한 데다 대구∼청도 외곽도로가 개설되면서 객들의 발길이 뜸해졌다.

“특이하지 않고는 버텨낼 자신이 없었어요. 그때 우리밀이 생각났지요. 600평 밭도 있겠다, ‘우리밀이 건강에 좋다’는 캠페인도 한창이어서 덥석 시작했습니다.”

식당의 또 다른 이름은 ‘가창 할매 칼국수’인데 여기서 할매란 배분도 씨다. 그는 2011년 12월 17일 몹시 춥던 날 칼국수에 넣을 겨울배추를 캐러 문을 나서자마자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러고 20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74세였다.

대구에서 춘천으로 이사 간 손님이 보내온 엽서. 이사하면서 겪은 소소한 일상과 함께 한동안 칼국수를 먹으러 못 갈 것 같다는 아쉬움이 담겨 있다. 달성=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대구에서 춘천으로 이사 간 손님이 보내온 엽서. 이사하면서 겪은 소소한 일상과 함께 한동안 칼국수를 먹으러 못 갈 것 같다는 아쉬움이 담겨 있다. 달성=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지난해 6월 채널A에 ‘착한식당’으로 소개된 전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하루는 낯선 손님 서너 명이 찾아와 칼국수를 주문하더니 이것저것 물어봤어요. 질문 내용이 꽤 전문가 같아 보였고 무슨 의도를 갖고 하는 것 같았어요.” 요리연구가, 대학 식품영양학과 교수, 호텔조리학과 교수, 맛 칼럼니스트 등으로 구성된 착한식당 검증단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월자 씨는 있는 그대로만 말했다. 100% 직접 재배한 우리밀만 사용한다는 것, 변성전분이나 유화제, 산미료를 넣지 않고 소금과 콩가루만 사용한다는 것, 졸깃하게 하려고 손으로 수백 차례 치대면서 반죽한다는 것, 밀은 필요할 때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통밀을 전통 방식으로 제분한다는 것, 호박과 감자 배추 고추 등 음식재료는 가급적 직접 재배한다는 것. 멸치는 경남 통영에 있는 단골집에서만 구입한다는 것….

“다음 날 똑같은 손님(검증단)들이 또 왔는데 전날에 보지 못했던 카메라를 들고 왔더라고요.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어요.” 검증단 회의에서 ‘착한식당’으로 선정될 만한 집이라고 결정된 뒤 월자 씨의 모자이크는 벗겨졌다.

월자 씨는 ‘착한식당’으로 선정된 후 동아일보의 후속 취재 요청에 손사래를 치며 거부했다. “장사가 잘되는 것도 좋지만 몸이 견뎌낼 수 있어야지요.”

지난해 6월 방송이 나간 후 지금까지 8개월 동안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는 것이다.

“방영된 직후 불과 20분 만에 전화가 걸려 왔어요. 밤 12시가 넘은 시간이었죠. ‘내일 가면 먹을 수 있느냐’는 거였어요. 그러고 전화가 대여섯 통 더 걸려 왔죠.”

다음 날 오전 10시경 식당 문을 연 순간 믿기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식당 앞 왕복 2차로 양쪽으로 차량이 빼곡하게 주차돼 있었고 100여 명이 줄을 길게 서 있던 것이다.

“다른 지상파 맛 프로그램에도 한 번 방송되면 손님이 좀 늘어난다는 얘긴 들었어도 이 정도라는 얘기는 듣지 못했어요.” 월자 씨 부부는 물론이고 중학교에 다니는 막내딸 선영 양(16)도 가세해 손님을 맞았지만 100여 명은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아주 더운 8월경이었어요. 20대 후반 여성이 기다리다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간 적이 있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임신부였어요. 이후 ‘임신부 우대’라는 간판도 내걸게 됐죠.”

충북 청주에서 자전거를 타고 온 30대 동호인, 미국에서 방송을 보고 찾아온 교포, 편지를 보내온 손님들도 기억이 생생하다.

한번은 한 가족 4명이 기다리다 재료가 떨어져 못 먹게 되자 어머니는 “아들이 자폐아인데 꼭 먹어보고 싶다 한다”며 애원해 순번이 앞쪽이던 손님에게 양해를 구한 적도 있다고 했다.

방영 이후 가창칼국수는 많은 게 바뀌었다. 방송 이전에는 수육과 농주(農酒)도 함께 판매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하지만 밀려오는 손님들이 칼국수만을 찾는 바람에 수익이 높은 메뉴는 포기해야 했다. 석교 씨는 “손님은 분명 두 배가량 늘었는데 수익은 그대로”라고 했다.

주방과 식당을 오가며 취재하기를 3시간째. 월자 씨 부부가 반갑게 맞는 단골손님이 찾았다. 대구의 골프컨트리클럽 회장인 윤모 씨 부부였다. 위암 수술을 2차례나 한 윤 씨는 14년째 이곳 단골이다. 그는 “칼국수를 워낙 좋아하지만 우리밀이 아니면 여지없이 두드러기가 나고 몸에 이상이 온다”고 했다. 그는 “단골집이 ‘착한식당’으로 선정된 후 손님이 가득 차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아 채널A가 원망스럽다. 단골손님을 되돌려보내는 집은 착한식당이 아니다”라며 웃었다.

월자 씨 부부 사이에는 3남매가 있다. 대구 혜화여고를 졸업한 후 서울대 의대에 다니다 2011년 미국 캘리포니아대 의대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큰딸 민경 씨, 한국항공대 4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 민수 씨, 그리고 막내딸 선영 양이다.

방영 직후 미국에 있는 큰딸에게서 오는 전화도 부쩍 늘었다. 손님이 많아 고생하는 부모 걱정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 때 공부 핑계로 엄마 아빠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도 곁들인다고 한다.

“이번 설 명절에도 고향에 온 사람들이 문을 열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설 당일인 10일을 제외하고 문을 열었다가 큰딸한테 혼났습니다.” 다소 피곤해 보였던 석교 씨는 딸 이야기가 나오자 금방 환해졌다.

밀가루를 반죽하는 장면을 촬영할 시간이 됐다.

“방송에 나가기 전에는 하루 100명 정도의 손님이 찾아와 직접 반죽했어요. 하지만 방송 이후에는 손님이 배 이상 늘어 솔직히 손으로 반죽할 수 없어요. 어깨가 끊어질 것만 같아요.”

그 대신 손 반죽과 비슷한 질감이 나도록 특별 제작된 반죽기를 들여놨다. 반죽하면서 형성되는 탄력 있고 쫀득하게 만드는 글루텐이 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반죽하는 모습을 찍으면 그건 거짓이잖아요. 하지만 납작하게 압착해 숙성시킨 밀가루는 직접 칼로 썰고 있으니 차라리 그걸 촬영하든가.”

두 사람은 “유명 프로그램에서 ‘착한식당’으로 선정됐으니 이제는 식객들에게 발목이 잡힌 셈”이라며 “날씨가 풀리면 식당 내부 인테리어도 하고 주방과 화장실도 고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달성=이기진 기자(한식양식중식 조리기능사)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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