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영웅 백선엽 “NLL은 휴전때 그은 평화선, 北도 인정… 목숨걸고 지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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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정전 60주년… 6·25영웅 백선엽 장군에 듣는다

내년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을 앞두고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는 백선엽 장군.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내년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을 앞두고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는 백선엽 장군.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새 정부가 출범하는 내년은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된다. 온 국토를 전쟁의 참화에 빠뜨린 포성은 오래전에 그쳤지만 남과 북으로 갈린 한반도의 냉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정전 60년’은 지금 대한민국에 어떤 화두를 던지고 있는가.

백선엽 예비역 육군 대장(92)은 23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가진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평화를 위해 전쟁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6·25전쟁 발발부터 휴전에 이르기까지 1128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국군을 지휘하며 생사를 건 격전을 치렀다. 유엔군이 주도한 휴전회담의 초대 한국군 대표로서 수많은 전우를 앗아간 적군과의 협상 테이블에 앉기도 했다.

노병은 “시대가 부여한 내 역할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며 “오늘날의 평화와 번영이 숱한 영웅의 희생의 대가임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전 60주년을 맞는 소감은….

“감개무량하다. 6·25전쟁을 처음부터 끝까지 치렀고 휴전회담의 초대 한국군 대표로 참석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직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전장에서 부하들과 싸웠던 게 엊그제 같은데….”
▼ “오늘의 대한민국은 숱한 희생 대가… 6·25 잊혀진 전쟁돼선 안돼” ▼

맥아더 사령관과 만남 회고하며… 백선엽 장군이 6·25전쟁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최고사령관과 
대화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가리키고 있다. 1951년 2월 맥아더 사령관이 수원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모습이다. 이때 백 장군이 
맥아더 사령관에게 말한 ‘우리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는 이후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표현이 됐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맥아더 사령관과 만남 회고하며… 백선엽 장군이 6·25전쟁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 최고사령관과 대화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을 가리키고 있다. 1951년 2월 맥아더 사령관이 수원비행장에 도착했을 때 모습이다. 이때 백 장군이 맥아더 사령관에게 말한 ‘우리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는 이후 한미동맹을 상징하는 표현이 됐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정전체제가 이렇게 오래갈 것이라고 예상했나.

“당시 많은 사람은 휴전이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봤지만 난 생각이 달랐다. 1군단장 시절 휴전회담의 한국군 대표로 참석하며 북한이 한반도의 공산화 야욕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의 최종 목표는 바뀌지 않았다.”

―이승만 대통령이 반대하는 휴전협상에 한국군 대표로 참석하기가 곤란했을 텐데….

“회담 이틀 전 이 대통령이 내게 ‘휴전은 절대반대다’라고 해서 대표를 사양하려 했다. 결국 이 대통령이 ‘미국과 협조하기 위해선 가라’고 해서 1951년 7월 10일 개성 동북쪽 선죽교 인근 내봉장이라는 한옥에서 열린 첫 휴전회담에 참석했다.”

―정전협정이 체결되지 않았으면 북진통일이 가능했을까.

“(북진통일은) 정치적 문제로 봐야 한다. 우리가 원했더라도 미국의 협조 없이 우리의 힘만으론 불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미국은 빨리 휴전을 하길 원했기 때문에 우리로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6·25전쟁이 갈수록 ‘잊혀진 전쟁’이 되고 있다.

“지휘관으로 기꺼이 나라를 위해 산화한 많은 장병의 희생을 목격했다. 당시 우리는 총 한 자루 만들 수 없는 빈곤국이었지만 스탈린의 군사원조를 받아 중무장한 공산군의 남침을 사력을 다해 막아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거저 이뤄진 게 아니다.”

―6·25전쟁 중 가장 위태로웠던 순간은….

“낙동강전선까지 남하한 공산군 3개 사단과 격전을 치른 다부동전투였다. 죽을힘을 다해 공산군과 싸웠다. 부하들에게 ‘더 도망가면 바다에 빠져죽을 수밖에 없다’고 독려했다. 하루에 700여 명씩 사상자가 났지만 결국 낙동강방어선을 지키고 적을 무찔렀다. 미국도 사력을 다해 싸우는 우릴 보고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다.”

―북한의 김정은 체제 1년을 어떻게 보나.

“3대로 이어진 현 세습체제가 더 위험하다고 본다. 지금의 북한 지도부는 윗대의 고심과 고통을 잘 모르기 때문에 예측하기 힘들고 도발할 위험성도 높다. 북한은 언제나 남한의 종북세력을 부추기고 이와 연계해 도발책동을 벌였다. 절대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

―북한이 이달 12일 장거리 로켓을 기습적으로 발사했다.

“북한의 목표는 핵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반드시 개발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그 위험성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지금 미국이나 일본이 우리보다 더 심각하게 대응하지 않은가.”

―일각에선 북한의 주장대로 ‘실용위성’이라면 문제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유치한 생각이다. 북한의 속셈과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 그런 얘긴 못할 것이다. 종북세력이 하는 말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천안함 폭침도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게 말이 되나.”

이 대목에서 백 장군은 할 말을 잃은 듯 한참이나 허공을 응시하다 노기 띤 얼굴로 목소리를 높여 “기분 나쁘다. 말이 안 되잖은가. (북한이) 세상이 다 아는 거짓말을 하는데…”라고 덧붙였다.

―내년은 한미동맹 60주년이기도 하다.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강력한 한미동맹 덕분에 북한의 도발 야욕을 꺾고, 초근목피의 빈곤국에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한미동맹은 사활적 국익이 걸린 문제다.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원활한 협조관계를 위해서도 공고한 한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차기 정부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한미연합사령부 해체를 재연기하거나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1953년 (육군)참모총장 시절 워싱턴에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에게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간곡히 요청했다. 한미 동맹의 첫 단추를 끼운 셈이다. 전작권 전환과 연합사 해체 문제는 한미 양국 지도자들의 정치적 판단에 맡길 문제다. 다만 한미연합사는 강력한 대북억제력을 발휘한 한미동맹의 요체인 만큼 해체하더라도 상응한 조직을 만드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

―지난달 김광진 민주통합당 의원이 장군을 ‘민족반역자’라고 비난해 논란이 일었다.

“허허, 아무것도 아닌 일개 시민인데 무슨 얘길 하겠나. 이미 오래전에 회고록 등을 통해 밝힌 대로다. 난 독립군을 본 적도 없다. 내가 무슨 친일을 했나. 전혀 사실이 아니다. 그런 것 얘기하지 말자. 사람이 차원이 높아야지….”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의혹으로 논란이 불거졌는데….

“NLL은 휴전 당시 월등한 해군력으로 동·서해를 점령했던 유엔군이 북한과의 군사충돌을 막기 위해 그은 ‘평화선’이다. 북한도 그 취지를 인정했다. 또 1, 2차 연평해전에서 우리 장병들이 목숨 바쳐 사수했다, 영토선 개념으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

―남북 충돌의 불씨인 NLL을 대신할 새 해상경계선을 만들고, 공동어로구역을 설정하자는 주장도 있다.

“어리석은 생각이다. NLL을 없애고 새 해상경계선과 공동어로구역을 만들면 북한이 도발을 중단할까. 북한이 서북도서와 NLL에서 저지른 도발 의도와 목적을 보더라도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지 깨달아야 한다. 북한을 믿어선 안 된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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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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