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에세이/마광수]뒤늦은 용서

동아일보 입력 2012-10-04 03:00수정 2014-08-2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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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요즘 중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왕따’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심하게 왕따를 당해 심지어 자살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왕왕 생기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성악설(性惡說)’이 맞는다는 것을 실감하곤 한다. 나도 왕따를 당해본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학계에서도 왕따고 문단에서도 왕따다. 내 소설 ‘즐거운 사라’가 야하다는 이유로 일어난 필화사건에 휘말린 이후부터 그것이 더 심해졌다. 세상은 성(性) 담론으로 넘쳐나는데, 제일 먼저 성이라는 화두를 꺼내놓았다는 이유로 내가 여태껏 왕따를 당하고 있는 걸 생각하면 정말 이 땅에서 살아가기가 싫어질 정도다.

그러나 필화사건을 겪기 전부터 내 마음 속에는, 한창 감수성이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에 학교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경험이 멍울처럼 맺혀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다.

고교때 동아리서 여학생에 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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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광고교를 졸업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 초부터 어느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같은 미션스쿨이라는 이유로 우리 학교의 자매학교처럼 되어 있던(두 학교가 자주 연합예배를 보았다) 정신여고 여학생들과 함께 이루어진 ‘초석회(礎石會)’라는 봉사동아리였다. 인원 구성은 2학년 선배가 1학년 신입생들 중에서 쓸 만하다고 생각되는 후배를 각각 10명씩 선발하였다. 그러고 매주 한번씩 모여 독서토론 등을 하다가, 방학 때가 되면 궁벽한 농촌마을로 봉사활동을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1, 2학년밖에 안 되는 어린 학생들이 뭘 안다고 농촌으로 가서 그곳 청소년이나 청년들을 지도(?)·계몽했나 싶어 참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는 우리나라가 아주 못사는 나라에 들 때여서, 농촌에 가면 고등학교를 다니거나 졸업한 젊은이가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건방진 시혜의식(施惠意識)을 느끼며 한껏 신명나고 보람 있게 농촌봉사활동을 했던 것이다.

당시엔 남녀공학 고등학교가 하나도 없을 때라서, 나의 동아리 활동은 더욱 신이 났다. 여자 구경을 못해보다가 처음으로 같은 또래의 여학생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다보니 신천지가 내 앞에 전개된 기분이었다. 특히 식사 당번일 때 여학생들과 식사를 준비할 때가 제일 재미있어서, 마치 내가 어느 여인이랑 신접살림을 하는 듯한 느낌마저 가졌다.

여학생들 중엔 특히 내가 ‘명월이’라고 별명을 붙여준 여자아이가 제일 예뻐 보였는데, 사랑의 고백을 해보진 못했지만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 처음으로 연정을 느껴본 여인이었다.

그런데 농촌봉사활동을 다녀온 직후에 내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일어났다. 동아리에 소속된 대광고교 1학년 친구들이 학교의 후미진 장소로 나오라고 나를 호출하더니, 당장 동아리를 떠나라는 게 아닌가. 자세한 이유를 대주지도 않았다. 내가 정말 꼴 보기 싫어져서 회원에서 제명한다는 것이었다. 같이 숙식하며 봉사활동을 해서 나는 동아리에 더욱 정이 들었는데 나를 왕따시킨다니 나는 충격에 못 이겨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친구들은 그런 나를 경멸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금세 자리를 떴다.

죽고 싶도록 분하고 억울하고 참담한 심정이었다. 몇 날 며칠 밤을 잠 못 이루며 고민했다. 동아리 멤버 중 제일 가까웠던 친구에게 길게 전화를 하며 하소연을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친구의 태도 역시 180도로 달라져 있었다. 그런 뒤에 내게 몰려온 것은 ‘한없는 분노’였다. 나는 그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건 그야말로 ‘묻지마 범죄 식(式) 테러’였던 것이다.

고교를 졸업한 후 최근까지도 나의 그런 분노는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동창회 모임이 있어도 나는 그들과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서 앉을 정도였다.

내가 그들을 용서하게 된 것은, 그때 동아리 회원이었던 정신여고 출신의 R가 얼마 전에 내가 근무하는 연세대 근처로 와서 전화를 걸어와 그녀를 만나게 되고서부터였다. R는 놀랍게도 그때 내가 사모했던 ‘명월이’를 동반하고 있었다. R는 서울대 국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서울의 H대학 국문학과 교수로 있었고, ‘명월이’는 전업주부였다. 그런데 명월이가 늙은 나이임에도 고운 미모를 갖고 있어서, 나는 사춘기 때 내가 여자 보는 안목이 상당했다는 걸 알고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왕따당했다는 원망 이젠 풀고싶어

마광수 연세대 교수·소설가
이런저런 얘기 끝에 R 교수는 나에게, 이젠 옛날에 왕따당한 한(恨)과 원망을 풀어버릴 나이가 되지 않았느냐고 내게 충고해주었다. 그러면서 그때 내가 주로 여자 회원들하고만 대화를 나눠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얘기했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속이 좁았던 내 마음가짐이 몹시 부끄러워졌고, 오히려 내가 남자친구들에게 괜히 우쭐대며 잘난체했던 것 같아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젠 그들을 용서하려고 한다. 나한테 무언가 성격적 결함이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어차피 서로 다 늙어가는 처지에, 먼 옛날의 한을 품어봤자 무엇하겠는가. 진짜로 그들을 용서한다. 그리고 나를 반성한다.

마광수 연세대 교수·소설가
#에세이#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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