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길 명품 길]<9>연극연출가 고선웅 씨의 남산 소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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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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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다른 매력… 동화같은 정류장까지

9일 오후 TV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탈바꿈한 서울 남산 소월길 보성여중고 버스정류장 앞에서 연극 연출가 고선웅 씨(왼쪽)가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과 이야기하고 있다. 이 버스정류장은 작가 김재영 씨의 작품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9일 오후 TV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탈바꿈한 서울 남산 소월길 보성여중고 버스정류장 앞에서 연극 연출가 고선웅 씨(왼쪽)가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과 이야기하고 있다. 이 버스정류장은 작가 김재영 씨의 작품이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서울 중구 남대문로 숭례문 오거리에서 그랜드하얏트호텔 앞까지 3.4km의 남산 소월길. 서울의 사계절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산책길이다. 봄이면 벚꽃, 여름에는 푸르름, 가을이면 단풍을 즐기는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소월길에 또 하나의 명소가 생겨났다. 바로 서울시가 지난해 조성한 ‘아트 버스셸터’다. TV 모양이나 개구리 2마리가 의자를 받치고 있는 모양의 독특한 버스정류장 5곳이 지나가는 시민들의 눈길을 끈다. 남산아트센터에서 20일까지 공연하는 ‘푸르른 날에’ 연출가 고선웅 씨(44)와 소월길을 걸었다.

○ 연극은 힘들고 지루한 걷기 같아

보성여중고 버스정류장에서 고 씨를 만난 9일은 그의 연극 제목처럼 푸르른 날이었다. 벚꽃이 지나간 자리에는 나뭇잎들이 서로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었다. 보성여중고 버스정류장에는 작가 김재영 씨가 TV를 형상화한 작품인 ‘휴식’이 설치됐다. 하굣길 버스를 기다리는 여학생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에선 마치 TV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고 씨는 “어릴 적 보던 브라운관 TV가 떠오른다. 온 동네에서 하나뿐인 TV를 모여 보면서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스토리에 대한 매력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고 씨가 2006년 창단한 극단 ‘플레이팩토리 마방진’ 소속 배우들의 훈련 과정 가운데 하나는 걷기다. 이번에 선발된 4기 신인배우 28명은 6주 동안 매일 10km씩 걷고 있다. 남산 소월길, 한강길, 둘레길 등 서울 곳곳을 매일 오전 9시에 장소를 정해 만난 뒤 3시간가량 걷는다.

“걷기는 힘들고 고단하고 지루하죠. 바로 연극배우라는 직업이 그래요. 무대에 오르는 순간은 잠깐이지만 준비하는 시간은 길어요. 배우로서 회의가 들 때 지금 이 시간이 나침반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어요.”

고 씨의 걷기 훈련은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1999년 4년 동안 잘 다니던 광고회사를 연극이 하고 싶어 그만뒀을 때, 지리산을 종주했다. 그리고 매일 시나리오를 쓰고 연극을 보는 일상을 반복했다.

○ 자연과 교감하는 작품이 정류장에


소월길에 설치된 버스정류장은 작품을 감상하는 재미와 함께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이 됐다. 맞은편 보성여중고 시청방향 정류장에는 새 생명으로 탄생하기 위해 나무에서 하늘로 날아가는 포자를 형상화한 ‘마뫼부해’(이중재 작품)가 있다. 마뫼는 남산의 옛말, 부해는 사람에게 이로운 균이라는 뜻이다. 각박한 도시의 삶이 보다 생명력 넘치기를 바라는 작가의 소망이 담겼다.

조금 더 올라가면 후암약수터 정류장. 이곳에 설치된 작품은 주동진 씨의 ‘남산의 생태’다. 토종개구리 두 마리가 의자를 받치고 있다. 후암약수터에서 발견된 토종개구리를 기념하고 남산의 생태가 살아나기를 기원하는 뜻이다.

김소월의 시 ‘가는 길’의 시어를 그대로 작품으로 만든 ‘쉼표 또 다른 여정’은 하얏트호텔 버스정류장이다.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이라는 애틋한 정서를 떨어지는 낙엽의 모습에 담았다. 일본 작가 스가타 고 씨와 김현근 씨의 공동 작품이다.

소월길 걷기가 끝나고 헤어지는 길. 뒤돌아 걷던 고 씨가 “인생이 곧 길 아닌가요”라고 물으며 손을 흔들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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