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미스터K’ 이명세-JK필름 공방…‘문제는 따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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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2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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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스터K’ 출연자들. 사진제공|JK필름
영화 ‘미스터K’ 출연자들. 사진제공|JK필름

한동안 한국영화계를 뜨겁게 달궜던 이명세-JK필름 간 공방이 어느 정도 일단락된 듯하다.

오마이뉴스 5월5일자 기사 ‘‘영화 하차 논란’ 이명세 감독, “괴물이 되기 싫다”’에 따르면, 3일 JK필름 측에 이어 이명세 감독 측도 7일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결국 대응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명세 감독은 오마이스타와의 통화에서 “원래는 아는 기자 분들을 불러서 (기자회견을) 할 생각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대응을 한다는 게 내가 괴물이 돼 가는 느낌”이라며 “추후에 입장을 정리해서 말씀을 드리겠다. 하나님은 다 아실 것”이라고 밝혔다. 또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말할 수 있을 때, 그때 뵙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단순히 입만 다문다고 만사가 아니다. 영화 ‘미스터K’ 저작권 문제가 아직 남았다. 이명세 감독은 지난 4월24일 ‘미스터K’ 저작권을 본인 이름으로 등록했다. JK필름 측은 이에 엄연히 불법행위란 입장이지만, 이 감독 측은 오마이스타와의 통화에서 “원안과 각색 부분은 윤제균 감독과 공동으로 명의를 갖고 각본은 박수진 작가가 갖는 걸로 처음부터 얘기가 된 상황”이라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이명세-JK필름 간 공방전은 ‘수면 위’로만 종결됐을 뿐 ‘수면 아래’에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란 얘기다.

▶제대로 된 계약서 한 장 없이 모조리 ‘말말말’

어찌됐건 이명세 감독 측이 입장 표명을 포기함에 따라, 현재로선 JK필름 측 진행설명이 정설로 남은 상황이다. 이를 돌아보자.

▲2009년, JK필름 ‘미스터K’ 기획 ▲2010년 7월, 박수진 작가 시나리오 초고 완료 ▲2010년, 이명세 감독 연출 계약 ▲2012년 3월, 크랭크인. 태국서 6회차 촬영(3/12~17) ▲3/29, 국내 촬영 시작 ▲4/4, 제작사 현장 편집본 확인. 재점검 차원의 감독과의 대화 시도(9회차 촬영시점) ▲4/5~6, 사전 예약된 촬영장 회차 진행(11회차 촬영) ▲4/6, 재점검 위한 촬영중단 요청(대규모 예산 집행되는 지방 촬영 전 방향성 합의 필요) ▲4/8, 이명세 감독과 JK필름 첫 만남(방향성 합의 안 됨) ▲4/16, 이명세 감독과 JK필름 두 번째 만남(공동연출 제안→비현실적 판단 거절) ▲4/21, ‘미스터K’ 조감독 통해 이명세 감독 하차 의사 전달받음 ▲4/25, 이명세 감독 ‘미스터K’ 저작권 불법 등록 사실 확인 ▲4/26 이명세 감독과 JK필름 세 번째 만남(스태프 문제 협의) ▲5/3 JK필름 공식 기자회견.

의아해지는 부분이 있을 법 하다. ‘대화 시도’ ‘합의’ ‘만남’ ‘제안’ ‘협의’…왜 이런 단어가 나와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JK필름 측 기자회견 내용은 이보다 더하다. “생각했다” “기대했다” “약속과 신뢰” “믿었다”…상식적 계약관계에선 나올 수 없는, 아니 나올 필요조차 없는 단어들이다.

결국 명확한 계약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이런 단어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어딜 봐도 모조리 다 말, 말, 말, 말뿐이다. 심지어 현재로서 가장 민감한 지점인 저작권 부분만 해도 이 감독 측은 계속 “얘기가 된 상황이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모든 것이 구두로만 진행됐을 뿐, 그 한계와 역할을 명확히 지정한 문서쪼가리 한 장 제대로 없었다는 방증이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은 비단 ‘미스터K’뿐만의 일은 아니다. 한국영화산업 관행 자체가 대저 이런 식이다. 그야말로 주먹구구다. 제대로 된 섬세한 계약서란 건 아예 존재하질 않는다.

▶체계적이고 명확한 계약은 안정된 산업 환경 구축에 필수적

이런 상황까지 벌어진 마당에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울 수 있지만, 할리우드의 경우는 이와 크게 다르다.

계약서 한 장 한 장에 감독은 물론 스태프 전원의 역할허용범위와 그 한계가 명확히 적혀있다. 계약을 위반하면 바로 교체될 수 있다는 내용도 물론 들어가 있다. 제작진행에 고의적으로 차질을 빚게 한 스태프에 대해선 계약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이 청구된다. 말로 해결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스태프를 고용할 시 보험사로부터 보험이 떨어지지 않으면 더 이상 제작이 진행되지도 않는다. 마약복용 전과로 투자자들로부터 불신을 얻었던 배우 마틴 로렌스 경우가 그랬다. 건강에 이상이 있거나 연로한 스태프를 기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건강악화로 쓰러졌을 시 바로 대체시킬 ‘대행’을 미리 구해놓아야만 제작에 들어갈 수 있다. 감독 로버트 앨트먼이 80세 노구로 ‘프레리 홈 컴패니언’을 연출하던 때 폴 토머스 앤더슨이 ‘대행’으로 대기하고 있었던 상황이 대표적이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단순하다. 안정된 산업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다. 안정성이 기반이 돼야만 투자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사고가 터져 나오는 산업,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산업에 돈이 모일 리 없다. 애초 대중문화산업 투자 자체가 상당부분 도박성을 전제해야 하는 조건인데, 여기에 제작진행부터 도박에 가까워진다면 더 할 말조차 없어진다. 투자하는 사람이 오히려 제정신이 아니다.

돈이 모이지 않는 곳엔 산업도 없고, 당연히 콘텐츠도 없다. 드문드문 들어오는 눈 먼 돈으로 없는 산업기반 내에서 얼기설기 한두 편 만들어봤자 시장가능성이 따로 생길 리 없다. 그렇게 안정되지 못한, 안정될 수 없는 산업은 자연스럽게 사양산업의 길로 알아서 걸어 들어가게 된다. 이런 건 계산도 아니라 그저 상식이다.

▶모든 영화는 ‘감독’이 ‘주인’이 돼야 하나

그런 점에서 이번 이명세-JK필름 간 공방을 놓고 진정 던져져야 할 화두는 ‘자본과 창작자 간 싸움’ 따위 유치한 수준에 머무를 수 없다. 명확한 계약을 필두로 한 산업의 체계화·조직화·근대화로 초점이 모아질 필요가 있다. 감독이 무슨 교주도 아니고, “믿습니다” 한 마디 내뱉고 무작정 맡겨버리는 관행, 감독은 감독 나름대로 엄연한 상업영화 투자자금을 예술영화 지원자금처럼 인식하며 언론플레이하는 분위기는 상식적 산업 환경에서 있을 수조차 없는 일이다.

물론 반론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산업이건 뭐건 영화란 기본적으로 예술적 감수성을 토대로 하는 문화상품이다. 그런데 그 감수성을 각종 문서와 조항들로 제한해놓으면 영화는 그저 공산품 이상의 것이 못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돌발적 영감을 제어시키면 문화상품으로서의 매력도 함께 잃어 오히려 시장 가능성이 떨어져버리는 게 아니냐는 것.

일정부분 맞는 얘기다. 그러나 그 예술적 감수성, 감성산업 주체로서의 영감과 판단이 반드시 감독이란 직책에만 부여돼야 할 이유는 없다. 또 그렇게 돼서도 곤란하다. 영화는 한두 가지로 압축되는 것이 아닌, 지극히 다양한 목적과 방향성에 따라 만들어지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딱히 돈 벌어오라 요구하지 않는 정부 지원자금 3000만 원짜리 독립영화는 좋건 싫건 감독 혼자 북 치고 장구 칠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상업적 이윤을 목적으로 한 투자자가 존재하는 대형영화들은 그와 경우가 크게 다르다. 체계가 잡혀있는 산업일수록 돈을 내놓은 투자사와 현장을 책임지는 감독 사이 조율을 맡는 제작자·제작사에 주체적 역할과 권한이 부여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보다 많은 제작비가 투여될수록 투자사 권한도 더 커지는 게 상례다. 감독은 그야말로 계약서 내에서만 역할해주면 그만인 경우들도 버젓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스터K’에서 이명세 감독의 기대역할도 많건 적건 그 정도였다고 보는 게 옳다. 이미 짜여있는 틀 안에서 나름의 영상센스와 유머감각만 발휘해주면 되는 정도였다.

아마도 만연해있는 작가주의 비평풍토 탓에 감독에 절대적 권한이 가있는 구조가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듯한데, 비평하기에 흥미롭다고 산업 구조 전체가 그에 적응해야 한다는 건 사실 얼토당토않은 얘기다. 신발에 맞춰 발을 잘라야 한다는 식 논리에 가깝다. 영화는 애초 그런 식으로 탄생되지도 않았고, 엄밀히 말해 그런 식으로 진행돼왔다고 보기도 어렵다. 특정 타깃층을 노리고 제작되는 일부 영화들에나 적용될 논리를 무턱대고 아무 데나 찔러 넣어선 곤란하단 얘기다. 폴란드 영화감독 크쥐쉬토프 키에슬롭스키의 변처럼, 영화는 오직 “예술적 기능을 할 때도 있을 뿐”이다.

자본의 의사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라고 다 졸작인가

물론 이런 식의 입장에도 당연히 반론은 존재한다. 이번 이명세-JK필름 간 공방과정에서도 얼핏 제시된 바 있는데, 이른바 ‘전문가’ 논리다. 영화의 전문가 자리는 영화제작과정에서 감독에 부여되는 게 당연한데, 비전문가인 투자사 등이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건 오히려 영화 망치는 지름길이란 얘기다. 한마디로, 상업영화가 됐건 예술영화가 됐건 영화제작은 철저히 작가의 비전이 중심이 돼야지 자본의 의사에 휘둘려선 안 된다는 것.

그런데 대체 이명세 감독이 무엇의 전문가인지 알 길이 없다. 설마 작가적 비전과 개성에 전문가란 희한한 단어를 붙였을 리는 만무하고, 남는 건 상업적 효과를 낼 줄 아는 전문가 정도인데, 이 감독은 참 여기에 안 맞는 감독이다. 적어도 대형영화 한 편을 이윤 남길 정도로 성공시켜 본 건 총 8편의 연출작 중 ‘인정사정 볼것없다’ 한 편뿐이고, 그나마 지난 두 편의 영화 ‘형사’와 ‘M’은 처참할 정도로 실패했다.

말 나온 김에, 자본의 의사에 의해 완성된 영화라고 해서 ‘잘해봤자 돈 버는 기계, 못하면 돈도 못 번 쓰레기’가 빤하다는 논리도 다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일단 제작·배급사 RKO픽쳐스 간부 잭 모스가 50여분을 들어내고 해피엔딩으로 재촬영해 이어붙인 오손 웰즈의 1942년 작 ‘위대한 앰버슨가’ 사례부터 들고 싶다.

애초 웰즈가 만들려했던 ‘위대한 앰버슨가’가 과연 어느 만큼 위대했을는지는 물론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 볼 수 있는 RKO픽쳐스 버전으로도, ‘위대한 앰버슨가’는 10년마다 행해지는 영국 사이트 앤 사운드지 역대 최고영화 선정에서 두 차례나 10위권 내에 선정됐다. 모르긴 몰라도, ‘보는 쪽’ 입장에선 그보다 더 바랄 수는 없는 일일 듯싶다.

내친 김에 로버트 에반스 얘기도 한 번 꺼낼 볼만 하다. 처음 대형영화를 연출해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편집이 불가능할 만큼 개판으로 찍어놓은 러쉬들을 혼자 편집실에서 밤새워가며 이어 붙인, 거기다 120분짜리 영화로 만들려했던 코폴라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기 판단으로 175분짜리 최종본을 완성시킨 인물이다.

에반스는 당시 파라마운트 스튜디오 총수였으니, JK필름과 기획자 윤제균 감독까지 자본에 끌려 다니는 듯 묘사한 이명세 식 기준으론 영락없는 ‘자본의 꼭두각시’였다. 게다가 그는 연출 따윈 해본 적도 없고, 짧게 조역급 배우 경험 정도나 있는 의류 사업가 출신이었다. 어찌됐건 그는 그때 밤새도록 편집실에만 붙어있느라 가정에 소홀해져 아내인 알리 맥그로우를 스티브 맥퀸에 빼앗겨버리기까지 했다.

그가 당시 아내와 맞바꿔가며 완성시킨 영화는 바로 ‘대부’였고, 예술가가 만들었건 자본의 꼭두각시가 만들었건, 혹은 둘이 절묘하게 타협해 만들어냈건, ‘대부’는 지금 봐도 참 대단한 영화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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