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이문원의 쇼비즈워치]‘강호동 프로덕션’이 왜 문제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5일 14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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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KBS가 '해피선데이-1박2일'의 6개월 뒤 종영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MC 강호동의 하차 의사가 전해진지 10여일 만이다. 그만큼 '1박2일'에서 강호동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1박2일' 나영석PD는 매일경제 스타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완전한 폐지라기 보단 '시즌1'의 막이 내린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며 "기존의 멤버들과 함께한 '시즌1'은 6개월 후 막을 내리지만 새로운 형태와 멤버로 '시즌2'를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정해진 바 없어 기존 멤버 일부가 같이 '시즌2'에 합류할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로든 '1박2일'이 완전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물론, 강호동에 대한 대중과 미디어의 시각은 여전히 싸늘한 편이다. 고정 시청층을 확고부동하게 유지하던 프로그램이 강호동 한 명의 결정에 따라 일단락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형식보다 라인업이 우선시되는 리얼 버라이어티 특성상 '시즌2'는 이미 '1박2일이 아니다'라는 의견들이 지배적이다. 그러면서 그간 떠돌던 강호동의 종편 이적설과 SBS 이적설 등이 다시 돌았고, '돈을 위해 팬들이 즐기던 프로그램을 버렸다'는 비판이 계속됐다.

● 갑자기 사라진 '강호동 프로덕션' 가능성 주장


여기서 강호동 하차의사가 처음 전해졌을 당시 기사를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스포츠동아 8월13일자 기사 '[강호동 쇼크 끝이 아니다] 강호동 'SBS 거액 영입설'도 있다'는 항간에서 떠도는 종편 이적설과 SBS 이적설을 차례로 제시한 뒤 또 다른 가능성도 동시에 제시했다.

기사는 "12일부터는 강호동이 직접 예능 프로그램 전문 외주 제작사를 설립해 제작에도 나선다는 관측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면서 "오프라 윈프리와 같은 해외 유명 방송인들이 자신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직접 제작하는 것처럼 강호동도 본인이 중심이 된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는 것.

이른바 '강호동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특정 종편 채널과 계약해 지속적으로 방송한다는 상당히 진전된 소문까지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외주제작사 설립 설은 희한하게도 위 기사가 나간 시점 이후로는 딱히 거론되고 있질 않다. 물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주요한 것은, 국민 MC의 신생 종편 행 자체를 문제 삼고자 하는 일부 언론들의 '선택과 집중'형 비판 자세 탓으로 볼 수 있다.

인기 프로그램 종영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발과 분노를 그대로 신생 종편으로 옮기고자 한 의도가 몇몇 언론기사에서 확연히 드러나 있었다. 나머지는 이들 논조를 복사+붙여쓰기 한 인터넷 연예언론들의 확대재생산에 불과했다.

그런데 사실 이 같은 외주제작사 설립 설이야말로 강호동과 '1박2일' 간 문제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될 만한 이슈였다. 외주제작사 설립만 이전부터 이뤄져 있었으면 지금과 같은 갈등 상황은 전혀 벌어질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씩 풀어보자.

● '강호동 프로덕션' 상황 내에선 '1박2일' 사태 없었다


일반 시청자들 입장에선 강호동이 돈 때문에 방송사를 옮긴다는 점도, 그 방송사가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이 주축이 된 신생 종편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모두 중요하질 않다.

시청자들은 단순히 현 체제의 '1박2일'이 아직 수명이 다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종영돼버린다는데 반발심을 느꼈던 것이다. 같은 프로그램이 이어지기만 한다면, 신생 종편에서 이어받건 SBS에서 이어받건 시청자들 입장에선 리모콘으로 채널만 돌리면 될 일이다.

애초 시청자들이 KBS라는 방송사에 남달리 애착을 느껴 그쪽 채널만 유지하고 싶어 한 건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능프로그램 중심이 되는 인기MC가 독립해 외주제작사를 차린다면 상황이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적어도 '1박2일'과 같은 사태는 막을 수 있다.

위 기사에서 제시된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자면, 이른바 '강호동 프로덕션'이 특정 프로그램을 기획했을 시 향후 7개로 늘어날 종편들과 계약 체결 장이 마련될 것이다. 그러면 그 중 가장 넉넉한 조건을 제시한 종편과 편성 계약을 맺으면 된다. 물론 분기 또는 연별 계약이다.

계약기간이 만료된 후 프로그램 인기도 등을 바탕으로 출연료 등을 올리고자 한다면, 다시 해당 프로그램을 이른바 자유계약 시장에 던져놓으면 된다.

해당 프로그램이 아쉬우면 이전 방송사에서 가격을 높여 계약을 연장하면 되고, 아니면 해당 프로그램을 어떻게든 갖고 싶어 하는 여타 종편사와 계약, 방송사와 채널만 옮겨 같은 프로그램이 이어지도록 하면 된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는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리모콘으로 채널만 이동시키면 된다. 프로그램 출연진 및 외주제작사 측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고, 향후 KBS, MBC, SBS 등 기존 종편 권력과 싸워나가야 할 신생 종편들 입장에선 오히려 시장침투를 위한 좋은 무기가 된다.

불이익을 받는 건 프로그램 콘셉트 자체에 대한 권리와 편성 향방의 열쇠를 쥐고 외주제작사들 및 연예인들, 시청자들을 쥐고 흔들었던 기존 종편 권력뿐이다. 3사 독점체제에서 '쉬운 장사'를 해오던 패턴이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 외주제작사 천국 미국에선 시청자들이 불이익 받는 경우 없다

당장 '1박2일'만 해도 '강호동 프로덕션'이 기획·제작한 것이었다면 아무 문제도 안 됐다. 프로그램 콘셉트와 출연진에 대한 권리를 '강호동 프로덕션'이 확실히 지키고 있었다면 더 그랬다. 신생 종편이든 SBS든 방송사만 옮기면 됐다. 6개월 뒤 종영이니 '시즌2' 기획이니 하는 얘기들이 나올 이유가 없었다.

위 기사에서도 언급됐듯, 미국과 같은 대중문화 선진국, 외주제작사들의 천국에선 유명MC나 배우들이 자기 프로덕션을 차려 방송사와 계약을 맺고 활동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오프라 윈프리는 물론 '도전! 슈퍼모델'을 진행하는 슈퍼모델 타이라 뱅크스 등도 해당 프로그램을 자기 프로덕션에서 제작하고 있다.

이렇듯 톱스타들 또는 강력한 외주제작사가 프로그램을 이끄는 경우 여러 가지 자유로운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1984년부터 1993년까지 방영되며 큰 인기를 모은 시트콤 '치어스' 예가 있다.

'치어스'는 시트콤으로서 대단한 반향을 일으킨 프로그램이었지만, 시즌이 지속될수록 제작사인 파라마운트 텔레비전 측과 방송사인 NBC 간 갈등이 심화됐다. 그러자 파라마운트 텔레비전 측에선 '치어스' 주요 등장인물이었던 프레이저 크레인 박사를 중심으로 스핀오프식 시트콤 '프레이저'를 기획하면서 방송사를 CBS로 옮겨버렸다.

'치어스'의 콘셉트와 출연진 등에 아무런 권한이 없었던 NBC는 될성부른 프로그램을 하나 놓쳐버린 셈이 됐고, '프레이저'는 1993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10시즌이나 연장되는 대성공을 거둬 CBS의 효자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인기 토크쇼 호스트 데이비드 레터맨 사례도 있다. 레터맨은 1982년부터 NBC에서 '레이트 나이트 위드 데이비드 레터맨' 쇼를 제작·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다 1992년 '더 투나잇 쇼'의 주인인 자니 카슨이 사퇴 의사를 밝히자 레터맨은 카슨의 자리를 이을 인물로 지목됐고, 레터맨도 그에 호응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NBC 측은 보다 젊은 제이 레노를 그 후임으로 앉혔다.

그러자 레터맨은 프로그램 출연진과 콘셉트를 그대로 들고 나가 CBS와 계약, 1993년부턴 CBS에서 '레이트 쇼 위드 데이비드 레터맨'을 진행 중이다.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은 NBC에서 CBS로 '채널만 돌리면' 똑같은 쇼를 볼 수 있게 됐다.

시청자들도, 거액의 이적료를 받은 레터맨도, 인기 프로그램을 영입한 CBS 측도 모두 불이익을 당한 것이 없고, 오직 NBC만 물을 먹은 셈이다.


● 소비자 중심으로 사고해보면 틀릴 일이 없다

제20기와 21기 KBS시청자위원을 역임한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방송분야에 있어 "모든 것을 소비자 중심으로 사고해보면 틀리는 일이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강호동 사태와 관련해서도 물론 같은 식의 사고가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같은 대중문화 선진국이 일찌감치 프로그램 생명과 직결되는 유명MC, 연예인들의 외주제작사 설립 체계를 완비하고, 그에 프로그램에 대한 전폭적 권한을 부여한 것은 산업 흐름에 있어 온전히 순방향이었음이 입증되고 있다.

향후 미디어는 이 같은 부분에 초점을 맞춰볼 필요가 있다. 신생 종편 등장과 맞물려, 무엇이 진정으로 방송 소비자들을 위한 방향일까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강호동 프로덕션' '유재석 프로덕션' 혹은 이들이 연대한 거대 프로덕션의 탄생을 발판으로 방송 소비자들의 이익이 증대한다면, 적어도 이는 '틀린 방향'이 될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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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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