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백만기의 컨버세이션]붕어 문신을 한 고양이…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4일 0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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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써먹는 크리에이티브 기술 ①빙의법


숯불 위에서 빨갛게 익어가는 조개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생전 차가운 물에서만 놀던 이 조개들이 불이란 걸 처음 만났을 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가스 불 위에서 꽁치는 또 무슨 생각을 했을까.

광고 크리에이티브의 기본 중 하나는 다른 누군가가 되어보는 것이다. 필자는 광고 아이디어를 낼 때 광고 제작자로서의 영혼을 살짝 내려놓고 그 브랜드의 타깃이 되는 사람, 혹은 브랜드와 관련 있는 인물, 때론 그 제품 자체의 속성을 몇 일간 빌려오는 소위 '빙의 체험'을 하곤 한다.

▶붕어빵, 누가 가장 좋아할까?

참붕어빵이라는 신규브랜드의 경쟁프리젠테이션 OT를 받았을 때다.

겨울철에만 맛볼 수 있던 대표적인 길거리표 간식 붕어빵을 4계절 내내 맛볼 수 있도록 태어났다는 깜찍한 모양의 제품이었다. 필자는 주로 프리젠테이션 OT를 받은 날 깊이 집중해서 그날 바로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결정짓는 편이다.

'참붕어빵… 붕어빵… 붕어… 생선… 고양이… 그래 고양이!!!'

메인모델이 될 고양이 빙의 작업에 착수했다. 최면을 걸어본다.

'그래 난 7살짜리 고양이야. 엄마 고양이도 있었으면 좋겠고 아빠 고양이, 누나 고양이도 있었으면 좋겠어. 붕어빵을 너무 좋아하니까 엄마한테 계속 붕어빵을 사달라고 졸라야지~ 이름은 붕어빵을 사랑하는 고양이 '붕고'가 좋겠다. 얼굴은 어떻게 생기면 좋을까? 그러고 보니 고양이 캐릭터가 많긴 해. 헬로키티, 도라야몽, 가필드, 장화신은 고양이…. 걔들이랑 차별된 캐릭터를 가진 고양이가 되어야 할텐데. 그래 이마에 붕어모양의 얼룩을 넣어보자. 좋아좋아 점점 귀여워지고 있어.'

'근데 가만… 난 고양이니까 말을 못하잖아.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한담? CM송을 만들어야겠다. 고양이가 참붕어빵을 먹으면서 생각할만한 마음 속 이야기로 가사를 써야겠어. 머리 한입~ 꼬리 한입~ 속이 알차 감동했죠~ 붕어빵에 무슨 일이 생긴거야~ 한 마리론 아쉬워~ 오리온 참붕어빵!!'

완성된 가사에 어울릴만한 쉬우면서 유쾌한 느낌의 곡을 의뢰했다. (이 CM송은 나중에 송창식 씨가 불러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스로 7살 먹은 고양이 입장이 되고 보니 아이디어는 TV광고로 끝나지 않았다. 고양이 디자인 상자와 절취선에 고양이 손이 들어간 낱개포장 아이디어 등 상품 포장 패키지에도 영감은 이어졌다.

그 결과 광고주는 시원하게 우리 손을 들어주었고 처음 아이디어 그대로 TV광고가 제작되었다. 여느 과자광고처럼 맛있게 먹는 장면 하나 없었는데도 광고를 본 사람들 대부분은 '너무 먹고 싶다'고 안달했다. 아이들과 주부들은 광고에서 본 아이 고양이, 엄마 고양이와 감정이입이 되면서 자연스레 브랜드 선호도로 이어져 이례적인 월 매출을 기록했다.

그만큼 고양이 빙의는 한마디로 대성공이었다.

참붕어빵의 고양이 빙의 아이디어는 TV광고를 중심으로 지면, 온라인, 판매대, 고양이 탈을 쓴 프로모션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으로도 연결되었고 이미 '참붕어빵=고양이'는 브랜드자산으로 자리잡았다.

런칭 편은 물론 향후 나오게 될 후속편에서도 고양이는 계속 등장할 예정이고 수출될 때도 동일하게 이용될 거라 하니 더욱 보람이 크다.

▶현대, 삼성보다 사랑받는 초코파이, 소비자 공감을 끌어낸 방법은…

또 하나의 빙의 케이스는 초코파이 글로벌캠페인 광고다.

경쟁 프리젠테이션 OT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초코파이는 해외에서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만큼 아니 오히려 더 많이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제품이라도 기업 입장의 자랑은 소비자에게 공감을 받지 못하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가능성이 많기에 필히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이번엔 아예 초코파이로 빙의해보자. 비록 먹는 과자에 불과하지만 초코파이는 '情'이라는 캐릭터를 가진 인성을 지닌 브랜드니까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오리온 입장이 아니라 초코파이 입장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소비자의 마음이 거부감 없이 열릴 것이다.'

그날 밤 초코색의 둥근 '그 분'이 내 가슴으로 들어왔다. 그 분이 시키는 대로 카피를 써내려갔다. 실제로 초코파이가 되어서 이야기를 풀다 보니 같은 이야기도 훨씬 부드럽고 감동적으로 나오게 되었고 필자는 이미 초코파이가 되어서 영하 40도의 러시아와 영상 40도의 베트남을 넘나들며 지구촌 곳곳의 사람들과 정을 맺고 있었다. 그렇게 '파이로드를 따라 지구와 정을 맺다' 캠페인이 완성되었고 그 중에서 '지구의 오지와 정을 맺다' '지구의 아버지와 정을 맺다' '지구의 문화와 정을 맺다' 3편이 방송 되었다.

한 기독교인은 자신의 블로그에 초코파이 광고 카피를 쓴 사람이 분명 기독교인일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선교사 버전의 '지구의 오지와 정을 맺다' 패러디를 올렸다.

'나는 영하 40도의 추위가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높은 낭떠러지가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열대의 태양이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유일하게 두려운 것은 나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가지 못하는 일입니다. 단 한사람이라도 더 행복할 수 있다면 더 험한 길도 두렵지 않은 나는 선교사입니다. 부르심을 따라 지구와 정을 맺다!'는 내용이었다.

또 다른 블로그에서는 군인 버전의 패러디를 내놓았다. 초코파이와의 각별한 추억을 가진 현역 출신들이 백배 공감할 내용이다. 앞에는 똑같은 카피로 추위와 더위, 험한 환경 속에서의 두려움을 묘사했고 뒤는 수해현장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담았다. 엔딩은 '나는 사나이입니다'로 끝난다. 군인으로 100% 빙의한 이 블로거는 분명 현역 출신임에 틀림없으리라.

필자는 콧수염까지 기른 아저씨지만 때론 질풍노도의 사춘기 소년으로, 때론 감수성 예민한 여인으로,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사람들로 변하며 초코파이의 경우처럼 제품의 영혼을 받아들이는 것도 즐기는 편이다.

마치 연기자가 극 중에서 맡은 역할에 100% 몰입하게 되면 그 캐릭터의 모습이 말투 하나 걸음걸이 하나에도 자연스럽게 나와 스스로도 만족하게 되고 시청자들에게도 큰 호평을 받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연기자 하지원씨는 어느 다큐프로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필자의 기억으로는 다음과 같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을 찍을 때는 정말 길라임 같다는 소리를 들었고, 영화 해운대를 찍을 때는 설경구 씨가 그렇게 애타게 부르던 연희가 되었죠. 사람들은 내게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물어보는데 난 오히려 궁금해요. 다른 배우들은 정말 이 정도 노력도 안하고 연기를 한다는 건가.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정말 천재들이에요.'

개인적으로 볼 때 그녀는 맡은 역할마다 극 중의 그녀로, 시크릿가든에선 남자인 김주원(현빈)으로까지 완벽하게 빙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이 빙의의 기술을 이미 마스터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당신이 간절히 빙의하고 싶은 대상은 누구?

빙의는 광고인과 연기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에서도 이런 빙의가 필요할 때가 있다.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는 카리스마 넘치는 스티브 잡스를 불러들이고, 사랑하는 그녀를 쳐다볼 때는 쿨하고 섹시한 차승원을 부르고, 뭔가를 정말 원할 때는 영화 '슈렉'에 나오는 촉촉한 눈동자의 장화신은 고양이를 끌어들이고,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감미로운 라이브의 제왕 이승철을 받아들이고…

하지만 일상에서 빙의는 쉽지 않다. 완벽한 자기최면과 함께 엄청난 순간 집중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다. 어설픈 빙의는 흉내에 그칠 수밖에 없고 보는 사람의 감동을 이끌어낼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필자는 광고를 만드는 동안은 꿈 속에서도 빙의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것은 또한 얼마나 간절한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 간절함이 절절할수록 빙의하고자 하는 대상과의 싱크로율도 당연히 높아지게 마련이다.

이제 일상에서 써먹어보자. 요즘 당신이 간절히 빙의하고 싶은 대상은 누구인가?

백만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marc@oyste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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