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영화]인간 탐욕에 대한 메시지…영화 ‘혹성탈출-진화의 시작’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3일 14시 07분


●영원히 반복될만한 SF고전의 귀환
●가장 모범적인 형식의 '프리퀼'…재미와 감동

영화 혹성탈출. 침팬치의 연기가 너무도 자연스럽고 감동적이다.
영화 혹성탈출. 침팬치의 연기가 너무도 자연스럽고 감동적이다.
어린 시절 TV에서 보았던 찰턴 해스턴 주연의 원작 '혹성탈출'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우주 조종사가 불시착하여 도착한 행성에서 인간들은 유인원들에게 노예처럼 부려지고 있었고, 인간들이 천신만고 끝에 탈출하여 가까스로 도착한 해변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즉 그들이 불시착했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곳은 미래의 지구였던 것이죠.

인간들이 무사히 탈출하기만을 전전긍긍하며 영화를 보았던 필자는 이 장면에서 트라우마로 기억될 정도의 절망감을 맛보았습니다. 아, 더 이상 갈 곳도 희망도 없음을 깨달았을 때의 그 완전한 무기력함이라니요. 할리우드 영화 역사상 최고의 반전 중 하나로 기억될 정도로 1968년 원작은 전 세계적으로 충격을 던져 주었습니다.

새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은 바로 이 '혹성탈출'의 이전 시점으로 돌아가 그 시작이 어떠했는지 보여줍니다. 전작, 즉 프리퀄(prequel)입니다.

신약개발 연구소에 일하는 윌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한 약품 개발에 몰두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뇌 세포가 스스로 손상된 부분을 재생할 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신약을 개발합니다. 여러 마리의 침팬지에게 이 약품의 임상 실험을 하는데, 그 와중에 사고가 일어나고 실험용 침팬치들은 모두 안락사가 됩니다. 하지만 그 중 가장 뛰어난 지능을 보였던 침팬치에게 새끼가 있었다는 것이 뒤늦게 밝혀지고, 차마 어린 새끼를 안락사 시키지 못한 윌은 그 새끼를 몰래 집에 데려갑니다. 이 새끼가 바로 이후 혁명을 이끌어 갈 '시저'입니다…시저의 지능은 날로 발전합니다. 때로는 인간을 능가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지능이 높아질수록 함께 발전하는 것이 있습니다. '감정'입니다.

영화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은 1969년작 '혹성탈출' 그 이후의 이야기다.
영화 '혹성탈출-진화의 시작'은 1969년작 '혹성탈출' 그 이후의 이야기다.

■ 진화의 중심에는 '지능'보다 '감정'

필자 역시 진화의 중심에 바로 이 '감정'있다는 데 동감합니다. 감정이 약하다면 욕심도 사랑도 분노도 없을 것이고, 결국 어떠한 방향으로 나가게 되는 동기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능은 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윌의 집에서 평온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던 시저는 어느 날 함께 생활하던 윌의 아버지가 이웃에게 모욕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분노를 느낀 시저는 그 이웃에게 폭력을 휘두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저의 인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강제로 영장류 보호시설에 갇히게 되면서 가장 따뜻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가장 잔인할 수도 있는 인간의 양면성을 뼈저리게 경험하게 되니까요. 분명 같은 종족이지만 낯설기만 한 침팬지들에 둘러싸인 채 잔인한 인간의 학대를 견뎌가며, 시저는 인간의 사춘기와 같은 혼란과 고뇌의 시간을 보냅니다.

사실 저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울림이 컸던 부분은 바로 이 장면이었습니다.

분노에 휩싸여 주먹질을 하던 시저는 할아버지의 외침에 분노를 삭이고 할아버지에게 돌아갑니다. 그 때 보여준 시저의 눈빛에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진한 슬픔과 두려움이 녹아있었습니다. 어느새 시저는 그저 머리 좋은 침팬지가 아닌, 눈빛으로 많은 것을 말하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겁니다.

이 시점부터 시저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그 무게 중심을 옮겨 갑니다. '시저는 침팬지인가 아닌가' 에서 '인간인가 아닌가'로요.

물론 시저는 CG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컴퓨터가 만들어낸 창작물은 아닙니다. 실제 배우가 몸에 센서를 부착하고 연기를 한 후, 이 위에 CG 작업을 하는 모션 캡처 방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시저 역을 맡아 연기한 배우는 앤디 서키스라는 사람입니다.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역을 맡았던 배우라고 말씀드리면 이해가 더 쉬우시겠지요?

골룸에 이어 시저까지 연기를 맡으면서 모션 캡처 전문배우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이 앤디 서키스의 연기는 실로 대단합니다. 유인원의 몸동작을 섬세하게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눈빛 하나 만으로도 분노, 슬픔, 기쁨 등 복잡한 여러 감정을 완벽에 가깝게 보여줍니다.

정말 경탄을 금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만일 내년 오스카 상 남우주연상을 이 분이 수상하지 못한다면, 저는 오스카 홈페이지에 항의 글이라도 올릴 예정입니다.

또한 이번 프리퀄에는 한 가지 미묘한 변화가 눈에 띕니다. 이 영화는 이전 시리즈와는 조금 다른 메시지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원작을 포함해 이전 혹성탈출 시리즈들은 대부분 지능이 높아진 침팬지들과 인간 사이의 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전쟁의 바탕에는 인간의 탐욕이 깔려있지만요.

하지만 이 프리퀄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들을 바라봅니다. 시저를 포함한 침팬지들의 봉기는 '공격'이라기보다는 '도망'에 가깝습니다.

그들이 동물원을 탈출하고 금문교에서 인간들과 벌이는 대결은 결국 삼나무 숲으로 도망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간들은 침팬지들을 모조리 죽이려 하지만 침팬지들은 자기 방어가 아닌 살상은 하지 않습니다. 이는 리더인 시저가 사람을 죽이려는 무리에게 단호하게 외치는 장면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동물 진화의 시작은 '감정'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동물 진화의 시작은 '감정'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 인간의 멸망을 초래한 것은 침팬지의 역습이 아니다

NO!

인간과 대적할 때면 으레 동물적 본성이 튀어나와 잔인하게 돌변할 것이라 예측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지점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멸망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 이유는 엔딩크레딧이 끝난 후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에 나옵니다. 너무도 강력한 장면이라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하여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만, 결국 인간은 침팬지의 공격 이전에 스스로 초래한 재앙으로 인해 화를 입게 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침팬지의 공격으로 '멸망'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욕심으로 인해 먼저 '자멸'하게 되는 것이죠.

인류의 종말을 다룬 영화는 이전에도 많이 있었지만, 이처럼 인간 탐욕의 부메랑에 대한 메시지가 직접적인 영화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얼마 전 구제역으로 수많은 돼지들을 살처분하고, 그 돼지들의 사체로 지하수가 오염이 되고, 장마로 인해 오염이 확산되어 결국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게 되는 악순환을 고스란히 지켜본 우리로서는, 결코 영화 속 이야기로 가볍게 넘길 수 없는 메시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는 이처럼 진지한 메시지와 감정의 깊이가 있습니다. CG는 화려하기보다 섬세하고, 추격신은 스펙터클하기보다 처절합니다. 스토리는 인간과 침팬지가 어떻게 대적하게 되었는지 보여주기 보다는, 한 침팬지의 내적 성장과 감정의 변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여 저는 이 영화를 할리우드 SF블록버스터가 아닌, 감동이 있는 명작의 완벽한 프리퀄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만물의 영장!"

영화를 보고 나오며 이 말을 떠올렸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 사람이 으뜸이라는 인간의 믿음. 과연 이 믿음이 인간의 탐욕과 오만마저도 정당화하는 가리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정주현 영화평론가 janice.jh.ch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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