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거장’ 임권택 아들 권현상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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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30일 17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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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아들로 산다는 것…안방의 아버지 vs 카메라 앞 감독님

권현상(본명 임동재)은 데뷔 3년차 배우이자 ‘거장’ 임권택 감독의 차남이다. 2008년 ‘고사:피의 중간고사’로 데뷔해 ‘고사 두 번째 이야기’, 드라마 ‘혼’, ‘공부의 신’ 등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아왔다.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권현상(본명 임동재)은 데뷔 3년차 배우이자 ‘거장’ 임권택 감독의 차남이다. 2008년 ‘고사:피의 중간고사’로 데뷔해 ‘고사 두 번째 이야기’, 드라마 ‘혼’, ‘공부의 신’ 등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아왔다.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올해로 75세, 제작부 막내부터 시작한 영화 인생 55년, 101번째 영화…. 해외 유수의 영화제 시상식을 휩쓸더니, 어느덧 자신의 이름 석 자 앞에 자연스럽게 '거장'이라는 타이틀을 단 사람이 있다.

바로 한국 영화 역사의 산 증인 임권택 감독이다.

그리고 생소한 또 하나의 이름, 권 현 상(29·본명 임동재). 그는 데뷔 3년 차 배우이자 임권택 감독의 차남이다.

연기자를 꿈꿀 때부터 '아버지의 아들'임을 숨기고자 "나중엔 성까지 바꿨다"는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부친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이하 '달빛')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17일 개봉한 '달빛'은 시청 한지과 7급 공무원(박중훈)과 그의 아내(예지원), 다큐멘터리 감독(강수연)이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조선왕조실록 중 유일하게 남은 전주사고 보관본을 10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전통 한지로 복원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데뷔 초 본명 임동재로 활동할 당시 언론을 통해 임 감독의 아들임이 밝혀지기 직전, 황급히 개명했던 그가 왜 이런 결심을 하게 됐을까?

권현상은 "전작 영화 '고사2' 무대인사 때 김수로 선배님이 수많은 언론 앞에서 우리 부자의 관계를 터뜨렸다. 그 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며 알려질 대로 알려진 상황이 됐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후 '달빛' 출연은 "아버지의 연세를 고려했을 때, 앞으로 부자가 이렇게 의미 있는 작품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형의 제안을 받아들인 결과다. 게다가 "누를 덜 끼칠 수 있는 단역이기에 출연 결심이 섰다"고 덧붙였다.

▶'임권택 아들' 꼬리표 동네 놀이터부터 군대까지…

사실 권현상이 아버지 영화에 출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5살 때부터 아버지가 진두 진휘하는 촬영 현장을 누비며 작은 분량이지만 아역 엑스트라도 했다. 대배우 강수연도 그에게는 '선생님'이 아닌 '누나'로 친숙한 사이. 감독 아버지와 배우 출신 어머니는 "힘든 길"이라며 아들의 배우 지망을 시종 반대해 왔지만 권현상에게 연기는 집에서 입고 벗는 편한 옷가지처럼 생활의 한 부분이 됐다.

183cm의 훤칠한 키와 매끈한 외모의 그는 모친 채령 여사의 체격과 부친 임권택 감독의 작은 마스크를 쏙 빼닮은 모습. 2008년 '고사:피의 중간고사'로 데뷔해 '고사 두 번째 이야기', 드라마 '혼', '공부의 신' 등에 출연하며 연기 경력을 쌓아왔다.

집에서의 아버지와 촬영장에서 감독으로 마주한 아버지의 모습, '연기하는 너를 도와줄 수 없다'는 '거장' 아버지의 선언, 또한 아버지의 뺨을 때린 여배우 사연을 듣게 된 아들의 심정을 이하 일문일답으로 정리한다.

-유명 부모님을 둔 아들로의 삶은 어땠습니까?

"어릴 때부터 '임권택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달렸어요. 심지어 군대까지 따라다녔죠. 어느 순간 제게 노이로제처럼 다가왔어요. '나는 난데, 난 배우를 할 건데. 데뷔를 하면 더 강조될 텐데…'라는 스트레스가 큰 부담으로 느껴졌죠. 모든 것이 감사했지만, 벅찬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임권택 감독의 아들이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대중에게 알려졌나요?

"김수로 선배가 영화 '고사2' 무대 인사를 할 때 대중 앞에 알렸어요. 일부 알고 있는 기자들에게 사정해 겨우 막고 있었는데 공개석상에서 밝혀져 어쩔 수 없었죠. 김수로 선배님은 당황하는 저에게 '이렇게 된 거 열심히 그냥 해. 쿨 하게'라고 말씀하셨어요."

-성까지 바꾸며 개명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버지의 그늘을 완전히 피하고 싶었어요. 사전에 개명 사실을 아버지와 상의 했지만 성까지 바꿔 많이 놀라셨죠."

▶카메라 앞 감독 임권택 vs 안방 안 아버지 임권택
최근 아버지의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에 출연한 그는 “어릴 때부터 ‘임권택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있었다. 심지어 군대까지 따라다녔다”라며 “어느 순간 제게 노이로제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아버지의 영화에 출연한 것은 형의 제안 때문이었다.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최근 아버지의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에 출연한 그는 “어릴 때부터 ‘임권택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있었다. 심지어 군대까지 따라다녔다”라며 “어느 순간 제게 노이로제처럼 다가왔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아버지의 영화에 출연한 것은 형의 제안 때문이었다.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아버지가 '레디~ 고!'를 외치는 카메라 앞에 배우로 섰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요?

"배우들은 '연기가 말린다'라는 말을 쓰는데요. 아무 생각이 안 나고, 대사도 안 들리고 공황상태가 오더군요. 대선배님들도 많아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어요. 스태프들도 '감독 아들은 얼마나 연기를 잘하나 보자'라는 눈빛으로 저만 보는 것 같았죠. 아버지가 저에게 따로 연기 지도나 지적을 하신 부분은 없어요. 단지 역할 설명 정도만 들을 수 있었죠. 현장에서는 아버지 곁에 안갑니다. 호칭은 무조건 감독님이죠."

-집에서 아버지 임권택은 어떤 분인가요?

"어릴 땐 아버지에게 많이 맞고 자랐어요. 알몸으로 집 밖에 쫓겨난 적도 있죠. 사람과의 약속, 예의, 도리에 대해 엄격했던 아버지는 거짓말을 가장 싫어하셨어요. 아마 제가 고1까지 매를 드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는 배려와 사랑이 많으신 분이지만 그래도 어려워요. 연세가 높으셔서 어리광부리기는 좀 힘들죠. 특히 같은 길을 따라 걸으면서부터는 더요. 아버지와 집에선 대화가 많진 않아요. 워낙 바쁘셔서 말씀도 아껴서 하시는 편이에요. 어렸을 땐 엄하셨지만 지금은 부드러우세요."

-아버지가 "영화감독이지만 너를 도와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난 심정은?

"부담이 크던 저는 오히려 좋았어요. 하지만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들에게 그럴 필요 있나' 서운해 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버지 결정은 저도 바라던 바였고, 홀로서기의 원동력이 됐죠."

-이름 앞에 '거장'이라는 칭호가 붙는 아버지가 대단하게 느껴졌던 때를 기억하나요?

"제가 초등학생 때 '장군의 아들'을 촬영하실 때에요. 영화가 정말 잘됐고, 모두가 아버지를 인정하고 대접했죠. 제가 중학생 때 아버지는 '서편제'까지 흥행을 일구셨고, 범접할 수 없는 존재였죠. 더 대단한 것은 '하류인생'은 시나리오가 없었어요. 그날 찍고 그날 밤에 대본을 쓰셨죠. 순서대로 찍지 않았는데 신이 맞춰지더니 영화가 되더군요. 이번 영화 '달빛'도 완고 없이 그때그때 쓰고 찍으셨어요. 구체적인 콘티도 없이 영화를 만드시는 걸 보고 '천재' 혹은 '거장'이라는 단어를 저 또한 떠올렸습니다."

-아버지와 영화도 같이 보나요?

"아버지는 늘 책을 읽으세요. 사람들은 임권택 감독님 집에는 영사기가 있는 방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예상외로 영화는 거의 안보세요. 오히려 중학교부터 주말마다 영화관 투어를 다녔던 제가 더 많이 본 듯한 느낌이에요."

▶"쌍둥이처럼 닮은 형, 제 대신 촬영장 끌려갔죠."
권현상에게 임권택이란 어떤 존재일까. 그는“언젠가는 뛰어 넘어야 할 너무도 거대한 산이자 그림자”라고 말했다.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권현상에게 임권택이란 어떤 존재일까. 그는“언젠가는 뛰어 넘어야 할 너무도 거대한 산이자 그림자”라고 말했다.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 똑 닮은 형과, '달빛'에 2인 1역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영화 '고사2'와 '달빛' 촬영이 하루 겹쳤어요. 저는 양쪽에서 다 작은 역할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죠. 결국 어머니가 아버지께 말씀드렸고, '달빛' 하루 촬영 분은 집에서 자고 있던 형이 찍게 됐어요. 갑자기 머리를 깎이고 산골 촬영지로 들어가야 했던 형의 억울한 눈빛을 잊을 수 없네요. 형에게 많이 혼났어요. 2살 위인 형은 저와 얼굴이 똑같고 키가 더 커요. 하지만 연기에 관심이 없죠."

-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한 이유는?

"어려서부터 영화를 정말 좋아했어요. 영화를 많이 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5~6살부터 아버지가 일하는 현장을 놀러 다녔고, 아버지 영화 '티켓', '장군의 아들' 아역 엑스트라로 출연한 적도 있어요. 아버지는 아들을 배우 시킬 생각은 전혀 안하셨지만 제가 대학을 연극영화과로 진학하면서 부모님이 마지못해 승낙하셨죠."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인 '달빛' 출연료 얼마나 받았나요?

"차비만 받았어요. 정말 차비 딱 그 정도요. 회사에선 금전적인 것만 따진다면 손해였어요. 기름값도 안나왔으니까요. 하지만 임권택 감독 영화에 돈을 주고도 출연하기 힘든데, 좋은 경험이자 영광이라며 회사도 적극 권했어요."

"아버지 뺨 때린 여배우 얘기 듣고 나도 깜짝"

-MBC 예능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임권택 감독이 과거 자신의 뺨을 때린 여배우가 있다고 고백했어요.

"저도 방송을 보고 놀랐어요. 부모님께 그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거든요. 저도 아버지의 뺨을 때린 그 분이 궁금해요. 아버지께 집에서 여쭤봐야겠어요."

-지금 첫 주연으로 독립영화를 찍고 있다고 들었어요.

"가제는 '학생영화'에요. 저예산 장편영화로 한 대학교 영화과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줄거리에요. 이론은 완벽한데 정작 실제 영화를 한편도 찍어 본적 없는 허당 남학생 역을 맡아 갑작스레 졸업영화를 찍으며 겪는 우여곡절을 연기해요. 모든 신에 제가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완벽한 주연이라 행복하지만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요. 대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만약 아버지와 또 영화를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제가 배우로서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 있고, 좋은 영화를 찍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출 때 참여한다면 영광일 것 같아요. 하지만 턱없이 부족한 지금은 아니죠. 부지런히 능력을 갖춰 함께 할 수 있는 때가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 권현상에게 아버지 임권택이란?

-그럼 마지막으로 '권현상에게 임권택이란'?

"유명하고 능력 있으신 감독님이기 전에 제겐 아버지죠. 하지만 언젠가는 뛰어 넘어야 할 너무도 거대한 산이자 그림자라고 할까요.(웃음)"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원래 제 모습대로 좋은 배우가 되려 노력중이고 다양한 경험으로 대중의 곁에 오래 남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의 성함에 흠집 내지 않는 것도 목표중 하나에요. 아버지도 그런 아들의 부담을 아실 거예요."

동아닷컴 이유나 기자 lyn@donga.com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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