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3.5m쌓인 천연설 위에 스키를 얹고··· 더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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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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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스키 100주년 기획<하>아오모리 현 핫코다 산

여덟개의 화산연봉으로 이뤄진 핫코다(八甲·해발 1585m)산은 아오모리의 상징이자 일본스키 100년 역사가 잉태된 곳. 이곳 태생의 스키가이드 하마베 노부히코 씨가 산악스키로 도조코스의 해발 1100m 설면에서 다운힐하고 있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여덟개의 화산연봉으로 이뤄진 핫코다(八甲·해발 1585m)산은 아오모리의 상징이자 일본스키 100년 역사가 잉태된 곳. 이곳 태생의 스키가이드 하마베 노부히코 씨가 산악스키로 도조코스의 해발 1100m 설면에서 다운힐하고 있다. 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지난 주말 규슈 남단 가고시마 시내. 겨울나무 앙상한 가지에 분홍과 순백의 매화가 탐스러운 봉우리를 팡팡 터뜨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남국 정취 속에서도 TV 화면은 하얀 눈 세상을 펼쳐보였다. ‘기타(북) 알프스’라고 불리는 나가노 현 설산의 온천스키마을 노자와였다. 그리고 화면 아래엔 이런 자막이 떴다. ‘일본스키 발상 100주년.’ 그렇다. 올해는 일본에서 스키가 시작된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1911년 1월 12일 니가타 현 다카다(현 조에쓰 시)의 육군 제13사단 연병장. 장교 12명이 일렬로 눈밭에 스키를 든 채 한 덩치 큰 외국인 앞에 도열했다. 그 외국인은 데오도르 에들러 폰 레르히 소령(1869∼1945).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청일 러일 두 전쟁을 모두 승리로 이끈 제국주의 일본의 저력을 확인하기 위해 파견한 군관이다. 그가 일본 장교에게 내린 첫 명령은 ‘메트르 스키’(프랑스어로 ‘스키를 신으라’). 일본스키 역사는 100년 전 이렇게 시작됐다.

가고시마에 도착하기 앞서 아오모리 현에 나흘간 머물렀다. ‘일본스키 발상 100주년’ 관련 취재 때문이었다. 아오모리와 일본스키 100년. 그건 운명처럼 깊은 관계가 있다. 하지만 조에쓰 시내 스키발상기념관에는 작게 취급됐다. ’지역 편향주의‘라고나 할지. 니가타는 스키가 시작된 곳. 눈에 보이는 건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반면 그 계기는 아오모리가 제공했다. 그래서 일본스키 발상의 모태라 할 수 있다.

○ 혼슈 최북단의 눈 고장 아오모리 현


아오모리는 혼슈 최북단 현. 쓰가루 해협을 사이에 두고 하코다테(홋카이도)와 마주한다. 홋카이도는 눈 고장이다. 이웃한 아오모리도 강설량이 엄청나다. 현내 스키장도 아홉 개나 됐다. 나쿠아 시라카미, 오아니, 모야힐스 등…. 그러나 어떤 곳도 핫코다 산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500개가 넘는 일본 내 스키장과 견줘도 그렇다. 곤돌라, 리프트 모두 하나뿐인 빈약한 시설임에도….

그 이유는 간단하다. 적설량 최고 10m의 깊은 눈과 건조한 파우더스노, 6개의 백컨트리(Back country·‘오프 피스트’라고 불리는 코스 밖 심설지대) 스키투어 루트 덕분이다. 한때 일본에는 스키장이 1200개나 됐다. 그런데 그중 가이드 따라 안전하게 백컨트리 스키를 즐길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 여기 핫코다뿐이었다. 여기만 스키가이드가 지금도 존재(4개 팀 24명)하고 스키투어(백컨트리로 스키장 밖 심설의 산을 스키로 이동하는 것)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여기뿐이다.

그 많은 스키장 가운데 여기에만 가이드가 있고 이곳에서만 스키투어가 가능한 이유. 그게 궁금해 지난 10여 년간 묻고 추적했다. 그리고 그 정답을 이번 취재 중에 스스로 찾았다. 놀랍게도 답은 일본스키 100년 역사를 펼쳐 보일 문고리와 같았다. 거기서 일본스키가 잉태되고 그래서 지금의 핫코다 산이 된 것이라는 말이다. 과연 그게 뭘지 역사여행을 떠나보자.

레르히의 첫 스키강습이 있기 9년 전인 1902년 1월. 핫코다 산에서는 참변이 벌어진다. 설산 행군에 나선 육군 제8사단 보병5연대가 심설혹한의 산중에서 조난당해 장병 210명 중 199명이 숨진 사고다. 살아남은 11명도 동상으로 양손 양발을 모두 절단했다. 당시 행군은 러일전쟁에 대비한 훈련이었다. 러시아해군이 쓰가루 해협으로 침공해 아오모리 해안열차 운행이 끊길 경우 동해와 태평양으로 병력을 전개할 루트 탐사 및 개척이 목적이었다. 하지만 의욕만 앞설 뿐 대비는 빈약해 참사는 예고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 소식은 유럽에까지 전해졌다. 노르웨이 국왕 호콘7세도 들었다. 1909년의 일. “우리나라에서 겨울에 쓰는 스키가 있었다면 그런 조난은 면치 않았겠냐.”면서 위로표시로 메이지 일왕에게 스키 2대를 선물한다. 일본에 스키란 이기(利器)가 최초로 알려진 사건이다. 이후 그 스키가 100년 스키역사에 어떻게 접목됐는지 알려진 건 없다. 노르웨이스키는 평지이동용 장비로 레르히 소령이 사용한 릴리엔펠트 식 알파인스키(산기슭의 사면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것)와는 전혀 다르다.

추정컨대 설상이든 설산이든 산중 이동에 유용한 것만은 분명히 알게 됐다. 덕분에 관심을 두었겠고 얼마 후엔 신종 알파인스키의 존재까지 알았을 수 있다. 왜냐하면 20세기 새 밀레니엄의 첫 10년간 알파인스키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과 독일제국이 관심을 기울인 군사장비여서다. 당시 일본은 오스트리아와 독일에 대사관을 두고 무관까지 파견해 유럽의 군사정세, 무기와 장비 등을 속속들이 연구하고 있었다. 레르히 소령 방문 시 스키를 가져와 가르쳐달라고 부탁해 일본스키 100년 역사를 연 나가오카 가이시 중장(당시 13사단장)의 탁견도 역시 독일대사관에 무관으로 근무한 특별한 경력에서 비롯됐다.

○ 주효 숲 설산의 오프피스트에서 즐기는 핫코다 산 백컨트리 스키

스토브열차(갈탄난로로 난방하는 옛 관광열차)가 달리는 쓰가루 평야를 뒤로 하고 자동차는 핫코다 산을 향했다. 한라산을 닮은 설산 핫코다의 산중턱 중산간도로에 오를 즘.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 정상아래 주효(樹氷·나뭇가지에 덕지덕지 붙은 눈이 얼어붙어 거대한 눈덩이로 변한 모습의 나무. 모양이 기괴해 ‘스노몬스터’라고 불림)숲은 동편으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때 차를 세운 곳이 가야노 고원의 전망 좋은 개활지. 파란 하늘 아래 석양에 분홍빛으로 물든 핫코다 설산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 장면을 보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내일도 이렇게 쾌청한 날을 달라고.

다음 날 아침. 하늘은 잿빛이었다. 핫코다 산으로 안내할 스키가이드 하마베 노부히코 씨(스카유 온천료칸 가이드계장)가 나를 안심시킨다. “정오쯤에는 갤 겁니다. 핫코다 산에서는 날씨변덕이 심해서요.”. 스마트폰으로 찾은 지역기상도 ‘쾌청’이었다.

그래도 조바심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네 번째 방문인데도 아직 파란 하늘 아래 핫코다 산의 명물인 주효를 촬영한 적이 없어서다. 15년이나 기다렸으니 안달할 수밖에. 오전 9시 스카유 여관의 투숙객을 태운 관광버스가 핫코다 산 로프웨이(우리의 케이블카)역을 향해 출발했다.

15분 후. 차에서 내려 로프웨이로 갈아탔다. 정상까지는 8분. 101명을 태우는 거대한 곤돌라에는 스키어와 보더, 관광객, 설피트레킹여행자 등 다양했다. 외국인은 나와 한국인 보더 5명, 미국인, 러시아인 10명쯤. 나머지는 일본인인데 모두 60대 이상이었다. 하늘은 여전히 잿빛. 어제 오지 않은 게 후회됐지만 대안은 없었다. 하늘에 맡길 수밖에.

핫코다 산 정상에서 로프웨이 역으로 이어지는 트레일은 단 2개. 포레스트 코스를 택했다. 내려가다 보니 주효가 좀 작아보였다. 하마베 씨 말로는 유난히 추운 날씨가 원인이다. 핫코다 산은 도와다하치만다이국립공원지역. 그래서 스키트레일은 개발을 최소화했다. 포레스트코스를 달리다 보면 그런 의도가 충분히 전달된다. 총연장 5km의 트레일은 숲과, 나무사이로 이어지며 좁기도 좁다. 바닥도 울퉁불퉁하다. 그런 자연의 터프함이 포레스트코스의 매력이다.

하코다산 중턱에 건립된 설중행군조난추모비. 행군차림으로 아오모리 시를 응시한다.
하코다산 중턱에 건립된 설중행군조난추모비. 행군차림으로 아오모리 시를 응시한다.
로프웨이로 다시 정상 역에 올랐다. 날씨가 갤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점심식사를 마친 후에도 그대로다. 오후 2시 15분. 가이드가 하산을 결정했다. 도중에 개기를 기대해보자고 했다. 이번에는 백컨트리의 오프 피스트(off piste)인 도조(銅像)코스(3.5km). 안개로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주효 숲 설산으로 그와 나는 빨려 들어갔다. 거대한 주효가 숲을 이룬 곳. ‘괴물’형상은 가까이 갈수록 더욱 기괴했다. 그 주효 숲의 설산에서 즐기는 딥스노 스키잉. 놀라지 마시라. 그날까지 적설량은 355cm. 원도 없이 파우더 스키잉(자연 그대로 눈이 쌓인 곳에서 타는 스키)을 즐겼다. 비록 파란 하늘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주효 숲 장관을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어도.

○ 스키 100년 역사 잉태한 하코다 산

도조루트의 끝은 해발 700m의 중산간도로다. 내려오니 주차장 앞인데 ‘도조차야(茶屋)’라는 휴게소 식당도 보였다. 그런데 건물 반이 눈에 덮였다. 4m에 육박한 강설에 겨울에는 문을 닫는다고 한다. 가이드 전화를 받은 스카유온천 차량이 데리러 왔다. 료칸까지는 자동차로 15분 거리다.

이튿날 다시 이곳에 왔다. ‘동상’을 찾아서다. 동상주인공은 ‘고토’분대장. 109년 전 설중 행군 중 참사한 보병 제5연대 199명 중 한 명이다. 그는 수색대에 발견된 최초 조난자로 조난사실을 가장 먼저 알려주었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동상까지는 약 350m. 그러나 무릎까지 빠지는 눈 때문에 20여 분이나 걸렸다. 동상은 긴 트렌치코트에 배낭을 메고 총을 든 당시 행군차림이었다. 그의 시선은 자신이 출발한 아오모리 시를 향했다. 두 시 방향으로는 죽기 전 지난 다시로 평야가 펼쳐졌다. 참사를 부른 계곡도 근방이다.

이 행군과 스키. 아무 관련이 없다. 참사는 패권전쟁과 제국주의가 부른 비극일 뿐이다. 하지만 핫코다 산의 겨울눈이 배경이 됐고 거기서 일본스키 100년 역사는 잉태됐다. 핫코다 산이 없었다면 일본스키 100년 역사는 없었을지 모른다.

○ 핫코다 산의 랜드마크인 스카유온천과 료칸

핫코다 산 스카유온천의 대욕장 ‘센닌부로’ 안내판. ‘혼욕(混浴)’이란 글씨가 이채롭다.
핫코다 산 스카유온천의 대욕장 ‘센닌부로’ 안내판. ‘혼욕(混浴)’이란 글씨가 이채롭다.
핫코다 산과 스카유온천은 한 묶음이다.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서로가 서로의 랜드마크다. 주소(핫코다 산 1번지)가 그걸 잘 말해준다. 위치는 서쪽 산중턱 해발 900m. 주변에 시설이라고는 자동차로 15분 거리의 로프웨이 역과 온천 료칸 두세 개뿐. 그래서 해만 지면 핫코다 산중의 침묵에 휩싸인 고즈넉함이 돋보인다. 핫코다 산을 찾는 일본인들은 가장 먼저 스카유온천 료칸에 묵기를 희망한다. 료칸 측은 ‘가이드’부(部)까지 두고 사시사철 등산, 설피트레킹, 스키, 사진촬영 등을 안내(유료)한다.

스카유온천은 고색창연하다. 110년 전 메이지시대에 지어 퇴색한 옛 목조건물 때문인데 객실도, 온천탕도 같다. ‘센닌부로(千人風呂)’라는 대욕장은 스카유의 상징. 보기 드문 목조 탕으로 바닥, 욕조까지 모두 소나무다. 국민보양온천 제1호(1954년 지정)이며 남녀혼욕 탕이다. 오전과 오후 한 시간(8∼9시)만 여성전용. 물론 남탕, 여탕도 따로 있다.

여기서 혼욕을 체험하게 됐다. 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탕 안 반대편에서 장년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 높고 넓은 욕장엔 남녀 출입구가 따로 있고 그 사이에 가림판을 설치했다. 실내는 어둡고 수증기가 짙어 2∼3m만 떨어져도 남녀 구별이 어렵다. 대형 욕조는 공용이지만 한가운데 ‘남녀’라고 쓴 팻말을 두었다. 가상의 하프라인인 셈이다.

’혼욕‘에 대한 스카유온천의 고집은 열정적이다. 전통 입욕문화이므로 지키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혼욕이 ’훔쳐보기‘에 악용되는 현실도 도외시하지 않는다. 2006년 발족해 회원을 늘려가는 ‘혼욕 지키기 협회’가 그것. 대욕장 입구에 3개 항의 행동강령을 붙여두었다. 남녀 스스로 호기심으로 바라보지 말자, 서로 존중하는 자세를 지켜나가자는 내용.

스카유의 온천수는 ‘아주’ 특별하다. 살균력이 강한 산성에 유황성분이다. 물 빛깔도 우유처럼 뿌옇다. 코나 눈에 튀지 않도록 주의한다. 닿으면 따갑고 눈을 못 뜰 정도다. 얼굴도 가급적 물을 대지 말도록. 온천욕 후에는 반드시 일반 물로 헹궈낸다. 피부가 약할 경우 발진 가려움 등 부작용도 있을 수 있다. 고혈압과 류머티즘, 위궤양, 아토피피부염에 효험.

○ 여행정보

◇아오모리 ▽항공로=인천공항에서 주 4회 운항(월수목일·2시간 20분 소요) ▽여행정보 △A- Story tells: www.aomori.or.kr △북동북3현·홋카이도 서울사무소: www.beautifuljapan.or.kr △aptinet: kr.aptinet.jp △온천: 무려 145개의 온천지에다 용출량에서도 전국 4위를 차지한 온천천국. 고마키온천과 같은 대형은 물론이고 전기 대신 램프를 켜는 아오니온천처럼 작은 온천도 많다 △벚꽃: ‘사과도시’ 히로사키 성에서 벚꽃이 만발하는 시기는 4월 중순∼5월 초. 전국에서 250만 명이 찾는 명소 △핫코다 산 스키: 12월부터 이듬해 5월 중순까지. 로프웨이 5회권(4900엔) 이용 △핫코다 도와다 골드라인 걷기: 국도 103호선(아오모리∼도와다 호수)의 핫코다 산 중산간지대 통과구간에 형성되는 설벽으로 높이 9m의 눈회랑 도로(9km)를 걷는 이벤트. 3월 하순 예정

아오모리 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일본 스키역사 100년의 모태, 아오모리 현 하코다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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