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권재현의 트랜스크리틱]Go vs 완득이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23일 17시 10분


재일교포 2.5세 고교생 스기하라의 성장통을 극화한 영화 \'Go\'. 주인공 스기하라 역의 쿠보즈카 요스케와 그를 좋아하는 사쿠라이 역의 시바사키 코우.
동아일보 자료사진
재일교포 2.5세 고교생 스기하라의 성장통을 극화한 영화 \'Go\'. 주인공 스기하라 역의 쿠보즈카 요스케와 그를 좋아하는 사쿠라이 역의 시바사키 코우. 동아일보 자료사진
일본영화 'Go'가 생각났습니다. 연극 'Hey, 완득이'(연출 김동수)를 보면서요. 두 작품은 공통점이 참 많습니다. 먼저 소설이 원작이라는 점. 'Go'는 재일교포 3세 작가인 김성일(일본명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완득이'는 제 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김려령 원작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고교생인 주인공도 닮았습니다. 'Go'의 주인공 스기하라는 재일교포 2.5세로 '일본 내 흑인'과 같은 차별을 받는 조센징의 정체성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고교생입니다. '완득이'의 주인공 도완득(이재영)은 안 그래도 동남아사람 같은 외모가 맘에 걸렸는데 자기를 낳고 사라진 어머니(김소희)가 베트남 사람인 것을 뒤늦게 알고 '쪽팔려' 하는 다문화가정의 고교생입니다. 둘 다 공부와 담쌓고 살면서 싸움 하나는 제법 합니다. 스기하라가 아버지로부터 배운 복싱을 제법 한다면 완득이는 킥복싱 선수가 됩니다.

주인공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의 캐릭터도 닮았습니다. 스기하라의 아버지는 권투선수출신으로 자칭 골수 마르크시스트에 민족주의 혁명가입니다. 당연히 조총련계입니다. 그는 아들이 공부를 하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지만 말썽을 부려 경찰서에 붙잡혀있다는 연락이 오면 전후사정을 들어볼 것도 없이 아들을 향해 주먹부터 날려 '옥수수' 몇 알을 뽑아놓는 사람입니다. 스기하라에게는 다른 아버지들과 너무 다른 자신의 아버지가 수수께끼와 같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그 아들의 장래를 위해 어느 날 훌쩍 국적을 북한에서 남한으로 바꾸면서 "하와이에 가보고 싶어서"라는 엉뚱한 변명을 둘러대는, 그런 사내입니다.

완득이 아버지는 다릅니다. 그는 난쟁이라고 놀림 받을 정도로 키가 작은 데다 카바레 댄서라는 직업 때문에 세상에 주눅 들어 사는 사람입니다. 스기하라 아버지와 달리 아들이 공부 잘해 대학가기를 바라는 평범한 소시민입니다. 완득이 아버지 배역으로 권범택 하덕성 이희연 씨 등이 번갈아 출연하는데 연출을 맡은 오척단신의 김동수 씨에게 딱 적역이란 생각이 드는 캐릭터입니다.

난쟁이 아빠, 베트남 엄마를 둔게 좀 쪽 팔리긴 해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고교생의 성장과정을 음악극으로 극화한 'Hey, 완득이'.
사진 제공 극단 김동수 컴퍼니
난쟁이 아빠, 베트남 엄마를 둔게 좀 쪽 팔리긴 해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고교생의 성장과정을 음악극으로 극화한 'Hey, 완득이'. 사진 제공 극단 김동수 컴퍼니
완득이에겐 대신 '똥주 선생(박일목)'이란 담임교사가 있습니다. 명색이 교사임에도 제자들이 다 조폭이 됐다고 스스로를 '조폭 스승'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틈 날 때마다 "공부하지 말라니까 왜 자꾸 열심히 공부하냐"며 반(班)성적이 오른 것을 나무라는 괴짜입니다.

걸쭉한 욕설이 특기인 똥주선생은 취미가 외톨이인 완득이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세상과 담을 쌓고 조용히 살려는 완득이를 자꾸 불러내서 "신체조건, 욱하는 성질, 주변환경, 어디 하나 조폭으로서 모자람이 없다. 낫 놓고 기역 자는 몰라도 낫으로 자를 줄은 아는 천부적 쌈꾼이 될 것이다. 잘 되면 나 잊지 마라"는 식의 칭찬 아닌 칭찬을 늘어놓습니다. 달동네 옥탑방에 사는 완득이를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시키고는 옆집에 산다는 이유로 그 제자의 햇반을 '삥 뜯는' 선생입니다.

완득이는 자신을 자꾸 귀찮게 하면서 온갖 생색은 다 내는 똥주선생이 싫습니다. 똥주선생에게 억지로 끌려서 나오는 교회에서는 "하나님 제발 똥주선생 좀 죽여주세요"라고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똥주 선생이 좋아집니다. 싫다는데도 친어머니를 만나게 해주고, 같은 반 급우로 공부 제일 잘하는 정윤하(강연경)가 완득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넌지시 흘리며 "운동 좀 그만하고 데이트 좀 해라"고 제자의 연애를 부추기고 누군가 완득이 아버지를 괴롭히면 완득이보다 먼저 나서 주먹을 휘두르다 유치장 신세를 집니다.

과묵한 완득이에게 자신의 온갖 고민을 털어놓다가 완득이를 좋아하게 된 모범생 윤하(강연경)
과묵한 완득이에게 자신의 온갖 고민을 털어놓다가 완득이를 좋아하게 된 모범생 윤하(강연경)
겉모습만 보면 교사로서 빵점이지만 속 깊기가 그만입니다. 매일 학원에서 선행 학습하느라 비몽사몽인 제자들에겐 "왜, 갑자기 서울대가 니들한테 막 손짓이라도 하던?"이라며 놀리지만 정작 공부랑 담쌓고 사는 완득이에게는 "서울대 애들이 머리는 좋은데 싸가지가 없으니까 제발 너는 서울대 가라"고 말합니다.

연극의 무대는 완득이의 내면공간으로서 교회와, 똥주선생이 수업시간에 수업은 안 가르치고 일장연설을 쏟아놓는 교실을 주요공간으로 설정합니다. 무대가 교실이 될 때 관객은 모두 똥주 선생의 제자가 됩니다. 완득이는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교육문제, 외국인차별문제에 대한 똥주 선생의 일갈은 정말 속 시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떤 때는 "너희를 잘못 가르친 내 잘못이 크다"면서 관객에게 몽둥이를 쥐어주고 자기를 때리라고 '생쇼'를 펼치며 관객을 즐겁게 해줍니다.

크리스마스 시즌 가족단위 공연이 넘쳐납니다. 초등학생 이하 어린이들과 함께 볼 만한 작품은 많지만 중고등학생 자녀와 함께 볼 만한 작품은 드뭅니다. 대학로 소극장 좌석이 조금 불편하긴 해도 공부에 지친 아이들 손잡고 똥주선생 한번 만나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예전에 '고교얄개' 시리즈 좀 읽으셨거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감명 깊게 보신 부모들이라면 연극을 보시며 그 때의 추억을 떠올려볼 만도 합니다. 완득이와 스기하라를 비교하면서 재일교포들이 받은 설움을 '코시안'들에게 물려주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성할 시간도 함께 가지면 금상첨화이겠습니다.

못 말리는 '똥주선생'이 완득이 아버지로부터 사교춤을 배우며 너스레를 떨고 있다.
못 말리는 '똥주선생'이 완득이 아버지로부터 사교춤을 배우며 너스레를 떨고 있다.
아, 'Go'와 '완득이'가 닮은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예쁘고 공부 잘하는 여학생이 외로운 늑대 같은 주인공들을 일방적으로 좋아해준다는 거. 요즘 여학생들이 정말 그럴지는 의문이지만 공부 못하고 싸움 잘하는 학생들이 왜 그렇게 인기가 많은 건지. 하지만 완득이는 스기하라에 비하면 싸움도 그리 잘하는 게 아닙니다. 킥복싱을 열심히 하지만 정작 진짜 시합에 올라가서는 3전전패의 초라한 성적만 올리니까요.^^

1만5000~2만5000 원. 서울 종로구 대학로 김동수플레이하우스에서 무기한 공연. 02-3675-4675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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